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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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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기사를 의심하라 조선일보의 관점 뒤집기, 무지하거나 뻔뻔하거나… 언론의 관점이 항상 일관하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하나의 언론이 특정한 사안은 물론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도 관점을 뒤집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물론 관점의 변경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관점이 잘못됐으면 바로잡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심각한 건, 언론이 무지하거나 아니면 뻔뻔한 탓에 관점이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0월11일치 스포츠 면에는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삼성-롯데 2차전에서 일부 롯데팬들이 삼성 투수 눈을 향해 레이저 포인터를 쏘며 투구를 방해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관중들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었다. ‘대다수 롯데 팬들은 레이저 발사 용의자를 향해 “집에 가”를 외치며 성숙한 관전 문화를 보였다.’ 이보다 몇..
사라지지 않는 마약, 테러리즘! 불평등 환경 위에서 자라는 독버섯… 지구촌 전체가 증오할 테러는 없는가 9·11 테러 직후, 377호에 썼던 테러리즘 관련 기사입니다. 요즘 ‘용산 도심테러’ ‘국회 테러’ 등 정치권력과 조중동에 의한 테러리즘 언어 오남용이 심각한 지경이어서 옛 글을 다시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테러리즘 언어 오남용은 그 자체로 테러리즘입니다. 2001년 9월11일 오전 7시30분 미국 보스턴 로건공항. 위조여권과 흉기를 소지한 한 아랍인이 로스앤젤레스(LA)행 항공기에 오른다. 항공기가 이륙하자 그는 흉기를 꺼내들고 ‘동지’ 몇 사람과 함께 항공기를 납치한다. 조종간을 잡은 그의 눈에 곧 자유의 여신상과 맨해튼의 마천루가 들어온다. 그저 높다고만 느껴지던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괴물처럼 거대하게 다가온다. 조종실 앞유리 너..
‘난쏘공’, 그 운명적 스테디셀러 세입자를 끝없이 희생시키는 언론의 기우뚱한 객관식 문제 용산참사가 터진 지 한 달이 넘도록 책임 공방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철거민 세입자들의 방화냐, 경찰특공대의 진압작전이냐가 쟁점이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같은 차원에 놓고 선택을 요구할 수 있는 물음의 구조가 아니었다. 설령 철거민 세입자들이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났다고 해도 경찰의 무리한 강경진압과 인명구조 외면의 책임이 사라지기는커녕 줄어들지도 않는다. 언론은 흔히 선택형 물음을 통해 의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물음의 구조가 잘못된 경우가 적지 않고, 그런 물음일수록 주관적 의도가 내포돼 있기 십상이다. ‘박대박’ 코너를 떠올려 보라. “무분별한 성형과 장기 매매를 일삼는 이 인어,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1번을, 아니다, 지금은 칠판을..
고교등급제, 계급과 교육의 불순한 야합 [분석] 한국사회에서 고교등급제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 한겨레에서 일할 때 고교등급제와 관련해 썼던 글입니다. 고교등급제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기에, 옛글을 찾아 띄워 봅니다. 당시 한겨레는 탐사보도를 통해 대학들이 음성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고교등급제 실태를 폭로했습니다. 그 문제가 검찰 수사까지 이어진 터라, 고교등급제에 대한 대학당국의 불온한 욕망이 꺾일 것이라 기대했었습니다. 순진했던 거죠. 저들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교육모리배들입니다. 연세·이화·고려대 등 3개 대학이 고교등급제를 시행해왔다는 교육부 실태조사가 발표된 뒤, 한국사회가 ’고교 등급제’ 후폭풍에 휩싸여 있다. 고교등급제를 둘러싼 논의가 확산되면서 고교등급제는 일부 대학의 문제를 넘어, 지역간- 사회계층간 갈등양상으로 옮아가고 ..
미네르바 구속을 보는 글로벌 스탠더드 [미디어 바로보기] 아고라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은 한국사회의 ‘표현의 자유’에 관한 인지도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하는 지표적 사건이다. 한국 내부에서의 치열한 논쟁도 논쟁이지만,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드물게도 이 사건에 대한 관점의 대치선은 한국 내부뿐 아니라 한국 주류와 국제 주류 사이에서 선명하게 그어지고 있다. 는 “한국정부, 금융관련 ‘예언자’를 체포하다” 기사에서 “한국정부는 세계금융위기에 의해 아시아에서 가장 힘든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에 대해 점차 민감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 제목이나 본문보다 더 두드러진 건 기사분류다. 로이터의 이 기사 분류 항목은 ‘Oddly enough’였다. 의역하면 ‘황당 뉴스’, 즉 ‘사람이 개를 문 사건’쯤 될..
안상태 기자는 그나마 솔직하다 객관주의 신화 속에 감춘 1인칭 주어는 ‘사익 은폐’의 주술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이 글은 제1523호(2009-01-05) ‘미디어 바로보기’에 발표한 글임을 밝힙니다. 방송 기자가 리포트를 하면서 “나는”으로 시작하는 주어를 쓸 수 있는 상황은 개그 설정(‘개콘’ 안상태 기자의 “나안~ 뿐이고”) 때뿐이다. 저널리즘 문법에서는 1인칭 또는 2인칭 주어가 금지돼 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저널리즘의 ‘객관주의’가 규범화된 결과다. 지난해 12월26일 SBS 에는 이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단신이 보도됐다. “SBS는 ‘현재 일부 노조원이 파업에 가담하고 있지만 대다수가 정상적으로 방송에 임하고 있어서 모든 방송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습니..
‘미네르바’를 다루는 주류언론의 4가지 방식 지지-폄하-비난-호기심 자극 등 제각각…이면엔 ‘두려움’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이 글은 제1519호(2008. 12. 1) ‘미디어 바로보기’에 발표한 글임을 밝힙니다. 신문·방송 같은 주류 언론이 누리꾼들의 의제를 다뤄온 방식은 (그럴싸하게 보면) 메타적이다. ‘개똥녀’ 사건을 상기해보자. 주류 언론 기자가 문제의 지하철에 타고 있었다면 젊은 여성의 무개념을 취재해 보도했을까? 아예 무시했거나, 기껏 가십성 단신으로 다뤘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이버 논쟁에 직접 뛰어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류 언론이 다룬 건 개똥녀를 두고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진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그래서 스포츠 중계하듯 보도했다. 지금 대한민국 최강의 누리꾼은 이론의 여지없이 ‘미네르바’다. 주류..
최진실 죽음의 정치적 재활용법 [미디어 바로보기] 한국방송대학보 제1513호(2008-10-13) 이 직전 글에서 나는 “언론이 연예인 추문을 들추더라도 사적 부분만 낭자할 뿐, 정작 추문을 둘러싼 정치경제학적 배후, 권력구조를 건드리지는 않는다”고 썼다. 그 뒤 최진실 씨가 자살했다. 그리고, 난 내 발언을 수정(정확하게는 보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언론은 연예인에 관해 특정한 목적과 의도에 따라 정치경제학적 배후와 구조를 ‘연출’하기도 한다”고. 어쨌든 최진실 씨의 죽음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정치적’ 이슈다. 상업성으로 무장한 ‘조문 저널리즘’이 한바탕 휩쓸고 간 뒤, ‘사이버 모욕’을 둘러싼 정치적 조문 저널리즘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정부여당이 이른바 ‘최진실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이 법의 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