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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난쏘공’, 그 운명적 스테디셀러

세입자를 끝없이 희생시키는 언론의 기우뚱한 객관식 문제 
 
 
용산참사가 터진 지 한 달이 넘도록 책임 공방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철거민 세입자들의 방화냐, 경찰특공대의 진압작전이냐가 쟁점이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같은 차원에 놓고 선택을 요구할 수 있는 물음의 구조가 아니었다. 설령 철거민 세입자들이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났다고 해도 경찰의 무리한 강경진압과 인명구조 외면의 책임이 사라지기는커녕 줄어들지도 않는다.
 

언론은 흔히 선택형 물음을 통해 의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물음의 구조가 잘못된 경우가 적지 않고, 그런 물음일수록 주관적 의도가 내포돼 있기 십상이다. <개그콘서트> ‘박대박’ 코너를 떠올려 보라. “무분별한 성형과 장기 매매를 일삼는 이 인어,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1번을, 아니다, 지금은 칠판을 지워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2번을 눌러주십시오.”

용산참사의 배경에는 부동산에 대한 세계 최고수준의 사적소유권이 보장된 ‘토건국가 대한민국’의 정치경제학적 구조가 버티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 제시하는 선택지에 이런 항목은 빠져 있다. 부동산 광고는 신문의 주요 수입원이며, 지역 언론사들은 거의 다 지역 건설사 소유다. 부동산이 폭등할 때나 폭락할 때나, 신문 부동산면이 언제나 ‘투자 적기’의 파란 불을 밝히는 사정이 거기에 있다.

언론이 끝내 묻지 않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언론은 세입자들의 과격한 저항방식을 문제 삼지만, 정작 언론이 그들의 저항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묻는 법은 없다. 2004년 1월 서울 상도동 재개발지역은 철거민들이 1년 넘게 망루 농성을 벌이는 동안 언론의 주목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모든 신문·방송이 이곳을 대서특필한다. 바로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투척한 날이다.

철거민들은 언론사에 연락을 해서 자신들의 계획을 미리 알렸다. 가장 먼저 달려간 것은 방송사 카메라들이었다. 언론이 관심을 갖는 건 그들의 절박한 생존권이 아니라 눈길을 끌 만한 ‘그림’이었다. 철거민들은 언론에 그림을 제공해야만 ‘매스컴을 탈 수 있다’는 것을 학습했다. 그것을 위해 그들은 스스로 과격해졌고, 여론 악화와 강경진압 명분을 제공하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부동산을 놓고 꿩도 먹고 알도 먹는 건 언론뿐이다. 언론은 부동산 개발을 부추겨 광고를 따고, 철거민 폭력을 부각시켜 자신들의 제품을 판다. 짐짓 폭력 없는 세상을 외치며 철거민들의 저항을 개탄하고 비난하지만, 정작 언론은 두 경우 모두 ‘폭력 유발자’로 기능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묻는다. 철거민을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1번을, 아니다, 건물을 헐어서 더 높은 빌딩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2번을 누르라고.

그래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스테디셀러가 될 수밖에 없는 역설적 운명이다.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2월23일치 ‘미디어 바로보기’에 발표한 글입니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