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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미네르바 구속을 보는 글로벌 스탠더드

[미디어 바로보기]
 
아고라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은 한국사회의 ‘표현의 자유’에 관한 인지도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하는 지표적 사건이다. 한국 내부에서의 치열한 논쟁도 논쟁이지만,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드물게도 이 사건에 대한 관점의 대치선은 한국 내부뿐 아니라 한국 주류와 국제 주류 사이에서 선명하게 그어지고 있다.

<로이터>는 “한국정부, 금융관련 ‘예언자’를 체포하다” 기사에서 “한국정부는 세계금융위기에 의해 아시아에서 가장 힘든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에 대해 점차 민감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 제목이나 본문보다 더 두드러진 건 기사분류다. 로이터의 이 기사 분류 항목은 ‘Oddly enough’였다. 의역하면 ‘황당 뉴스’, 즉 ‘사람이 개를 문 사건’쯤 될 것이다.

<포브스>는 “한국경제에 대해 우울한 예측을 하라, 그러면 당신은 이명박 정부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월스트리트저널> 등도 이 사건의 성격을 ‘정부의 온라인 통제 시도’ ‘정부정책 비판 금지’ 등으로 정리했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뚜렷하고도 불길한 징후, 이것이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의 관점이다.

한국의 몇몇 언론은 다르다. 이들이라고 표현의 자유를 대놓고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무척 까다로운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사실관계가 틀려서는 안 되고, 국익이 우선해야 한다. 이것은 외신들에게도 논쟁지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형사처벌, 심지어 인신구속을 해도 되느냐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외신은 경악하지만 한국의 몇몇 언론은 환영한다.

정확히 말하면, 외신과 몇몇 한국 언론의 대치선은 표현의 자유 위에 그어진 것이 아니다. 이들은 대치하고 있는 게 아니라 엇나가고 있다. 몇몇 한국 언론은 이 사건이 함축한 표현의 자유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미네르바를 깎아내리는 데 더 열심이다. 그에게 ‘전문대 출신 비경제학 전공 30대 백수’라는 비인격적 정체성을 꼬리표로 붙인 걸 보라.

물론 표현의 자유는 이들에게도 소중하다.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에 맞서 “언론자유의 조종이 울렸다”고 선언했던 이들이다. 문제는 ‘누구의 자유인가’다. 한국의 기자실은 주류 언론만 들어갈 수 있는 카르텔의 성채이자, 특권적 자유의 진지다. 몇몇 한국 언론은 그 자유만을 표현(언론)의 자유로 인정한다. 한사코 미네르바를 욕보이는 건 애초 그에게 자유권이 없음을 확인시키려는 종교재판이다.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미네르바 석방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들에게 미네르바는 표현의 자유를 공유해야 할 소중한 ‘동료기자’다. 사랑에만 국경이 없는 게 아닌가 보다. 특권의식이 없으면 경계도 없다.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2009-01-19 ‘미디어 바로보기’에 발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