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44) 썸네일형 리스트형 평생 자유 향한 고뇌… 진영 넘어선 영원한 비판적 지식인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선생 별세 서당 선생이 학동 삼형제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다. 첫째는 정승이라 했고, 둘째는 장군이라 했다. 얼굴 가득 웃음 짓던 서당 선생의 표정이 싸늘하게 바뀐 건 셋째의 대답을 듣고서였다. “장래 희망은 그만두고 개똥 세 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셋째는 개똥의 용처를 이렇게 밝혔다. “글 읽기는 싫어하면서 정승 되기를 바라는 큰형 입에 하나, 겁쟁이면서 장군 되기를 바라는 작은형 입에도 하나.” 소년에게 우화를 들려주던 외할아버지가 이 대목에서 문제를 냈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누구 몫이겠니?” 소년이 대답했다. “그거야 서당 선생에게 먹으라고 했겠지요. 두 형의 엉터리 같은 말을 듣고 좋아했으니까요.” 외할아버지는 소크라테스처럼 잇대어 물었다. “너라면 그 말을 서당.. 해초 “고립된 땅으로의 항해, 내가 아는 유일한 방식” “굶주림은 사람을 척추도, 두뇌도 없는 상태에 빠지게 하는데 꼭 독감 후유증이랑 비슷하다. 해파리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피를 다 뽑아내고 대신 미지근한 물을 넣은 것 같기도 하다.” 조지 오웰이 5년간의 빈민 생활을 토대로 쓴 자전 소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1933년)에서 자신이 겪은 굶주림을 묘사한 문장이다. “당신, 소중한 독자여- 당신이 아무리 민감하다 한들, 당신의 마음이 아무리 열려 있다 한들- 이 느낌을 당신이 정말로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굶주림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거리를 두고 서술될 수 없다. 그것을 알려면 그것을 살아내봐야 한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침공 이후 현지에서 겪은 참상을 글로 옮긴 에세이집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 공공의료 위해 살다 공공의료 안에 잠든 의사, 우석균 그가 왼쪽 눈을 뜬다. 느릿한 무성영화처럼. “가.” 문득 말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단음절이다. 잘못 들은 건 아닐까. 병상 난간으로 바짝 당겨 앉는다. 모로 눈길 보내는 것조차 힘겨워 보인다. 오른쪽 눈은 여전히 뜨지 못한 채다. “가라고.” 세 음절의 소리가 매정하게 못을 박는다. 건강했을 때도 곰살맞은 성격은 아니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애써 정을 떼보려는 시도일지 모른다. “어서 가서 설문지 돌려야지.” 사람을 착각하는 게 분명하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듯하다. 강한 신경안정제 탓에 옅은 섬망 상태를 보일 수 있다는 귀띔을 듣긴 했다. 그렇더라도 뒤죽박죽된 의식의 서랍 밖으로 불현듯 삐져나온 파편이 하필 설문조사라니. 1분쯤 지나 다시 눈을 뜬 그가 이번에는 두 문장으로 .. ‘큰 이성’이 된 지식인의 연애 성숙하라, 고르·니체·사르트르·아렌트…낭만적 사랑, 지적으로 승화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앙드레 고르 지음·임희근 옮김· 2007· 6쪽) 앙드레 고르(1923~2007)는 마르크시즘과 생태주의를 하나로 품어 생태정치학을 창시한 좌파 사상가다. 사르트르-보부아르 부부의 오랜 벗이기도 하다. 고르의 아내 도린은 20세기 가장 ‘소란스러운’ 커플 가.. 30년지기 신소1의 결혼에 부쳐 2023년 7월8일 신소1 결혼식에서 읽은 편지입니다. 실제로 읽었을 때는 슬랩스틱 신파 장르가 되고 말았습니다. 내 생애에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신비의 소녀 1호, 줄여서 신소1에게 너한테서 결혼할 결심을 처음 들었을 때, 뛸 듯이 기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네가 그 선택으로 인해 지금 행복하고 또 앞으로 행복해질 수 있으면 족하다고 여기려 했다. 아빠의 마음은 잔잔한 호수 같아야 할 터였다. 그렇지 못했다. 컴컴한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에 빠져들고는 했다. 이 편지는 네 결혼을 앞두고 아빠의 몸과 마음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태를 해석하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이다. 뙤약볕에 오래 졸인 바닷물이 허공으로 흩어진 뒤 시나브로 소금이 오듯이, 아빠는 이제야 겨우 쓰기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가쓰라-태프트 밀약, 100년의 쿰쿰함 이름부터 쿰쿰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1905년 7월29일 미국 육군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의 회담 기록이다. 미국의 필리핀 지배권과 일본의 조선(대한제국)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 내용이다. 그 뒤 9월5일 포츠머스 강화조약(러시아의 만주와 조선 철수 및 사할린 남부 일본 할양)과 11월17일 을사늑약이 잇따라 체결됐다. 이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관한 가장 건조한 기술이다. 내막은 간단하지 않다. ‘밀약’으로 불리는 이유는 정식 조약이나 협정이 아닌 탓이다. 문건은 1924년 미국의 역사가 타일러 데넷에 의해 ‘발견’됐다. 심지어 ‘비밀’이라 단정하기도 모호하다. 일본의 이 이미 1905년 10월 관련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보도가 나오자 미국 정부가 펄쩍 뛰었.. ‘내로남불’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을 두고 한동안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피의사실을 육하원칙에 따라 삼엄하게 기술해야 하는 문서의 성격과 위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보다 검찰이 잘 알았을 테고, 그런데도 굳이 그걸 사용한 의도쯤은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어와 영어의 혼종으로 그럴듯한 사자성어 꼴을 갖춘 이 신조어의 거침없는 번식력에 정작 눈길을 빼앗겨, 이러다가는 머잖아 헌법 조문에도 들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열없는 상상까지 하고 말았다. ‘내로남불’은 1996년 당시 신한국당 의원이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처음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본인 주장이지만, 사실이라면 일단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성싶다. 일회성 유행을 넘어 언.. 파업 손배소 ‘지옥’의 발명가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자, 대기업을 상대로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365일 돌아가며 파업을 벌일 거라는 따위의 망상적 예언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 묵시록은 외줄타기나 다름없는 합법파업에서 한발짝만 삐끗해도 파업 노동자를 천문학적인 손해배상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현행 체계가 불과 30년 전 어름에 만들어진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1989년 8월1일, 대구의 자동차부품회사 ㈜건화. 회사가 말 한마디 없이 상여금을 깎자 노조는 긴급 총회를 열어 해명을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하루 작업이 중단됐다. 이튿날 회사는 불법파업을 했다며 위원장 등 2명을 해고했다. 이에 노조가 반발해 일주일간 조업 차질이 빚어지자, 이번엔 해고자 2명에게 179.. 이전 1 2 3 4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