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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인가 ‘내집’인가 ‘즐거운 나의 집’과 달리 ‘내 집 마련’이라고 할 때는 ‘내’와 ‘집’을 붙여 쓰는 관행이 있다. 심지어 ‘내집마련’으로 복합명사처럼 쓰기도 한다. 집에 대한 집단적인 소유 욕망이 띄어쓰기 맞춤법을 넘어선 결과일 것이다. ‘빈 집’ 대신 ‘빈집’이 처음부터 맞춤법은 아니었을 테고, ‘짜장면’이 어느 날 ‘자장면’과 동렬에 올랐듯이, ‘내집’도 머잖아 표준어로 등재되지 않을까. ‘내 집’은 사용 개념이고, ‘내집’은 소유 개념이라는 국립국어원의 뜻풀이와 함께. 그러나 사용 개념으로서의 집이 어느덧 사멸하고 나면, ‘내 집’도 결국 사어가 될 것이다. 조삼모사의 정부 주택 정책을 겨냥한 최신 버전의 구호는 “실수요자 외면 말라!”다. 여기서 ‘실수요’가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과 ‘마용성’ 등에 집중된다는 .. 더보기
애도는 무엇으로 애도인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의 대응을 묻는 기자에게 “××자식”이라고 한 것은 그저 욕설로만 들리지 않는다. 문제의 표현은 특정한 출신 배경을 가진 이에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표지를 붙인 데 연원을 두고 있다. 이 대표는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질문자의 자격을 따졌고, 그 자리가 박 시장의 빈소였던 맥락까지 고려하면 ‘애도자로서의 자격’을 따졌던 셈이다. 그의 욕설을 순화해 재구성하면 “당신은 애도자로서 자격 미달입니다”쯤 되지 않을까. 빈소에서 기자가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논쟁적일 수 있다. ‘굳이 그 자리여야 했을까’라고 물으면 여러 논거로 찬반이 갈릴 것이다. 한국기자협회가 이 대표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낸 것은 .. 더보기
청와대 안의 트럼프들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민주’와 ‘공화’는 하나의 명사로 묶여 있지만, 가치체계는 사뭇 다르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때 시민들이 광장에서 외친 “국민의 명령이다”가 민주주의의 가치에 기초했다면, “이게 나라냐”는 공화주의에 기초했다. 대통령 비선 실세가 사사로이 공적 영역을 전유한 데 대한 탄식이 “이게 나라냐”다. 민주주의는 주권재민의 원리이고, 공화주의는 공공성의 원리다. 전자는 개별 국민의 권리 신장을, 후자는 공동선과 조화, 평등을 지향한다. 둘이 균형을 이루며 서로 보완하도록 설계된 게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나 실현은 쉽지 않다. 더구나 공화주의는 우리에게 경험적으로 익숙지 않고, 개념적으로도 꽤나 복잡하다. 프랑스의 ‘부르키니’(무슬림 여성 전용 전신 수영복) 착용.. 더보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한종선이 말했다. “나는 부랑자가 아니었습니다.” 술병이 비워지는 동안에도 몇번이고 되풀이했다. 얼마 뒤 토론회에 참석해서도 종선의 동료들한테서 같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납치, 감금, 폭행, 강제노동, 타살의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그 말로 증언을 시작하거나, 적어도 한번은 경유했으며, 더러는 끝을 맺었다. 그들은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다.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형제복지원은 박정희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에 걸쳐 운영된 사상 최악의 집단 강제 수용시설이다.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부랑자냐 아니냐’ 하는 이분법은 스스로 피해자 내부를 차별하고 위계화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러고도 나는 종선의 증언이 실린 라는 책에 서문을 썼다. 탈고한 뒤에도 도무지 개운치가 않았다. 책이.. 더보기
이재용과 양창수, ‘또 하나의 가족’ ‘상피’(相避)는 친인척 사이의 비리와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운영됐던 유서 깊은 제도다. 기원은 부모와 자식이 재상급 관직에 동시에 오를 수 없도록 한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오른다. 일종의 관습법이었다. 성문화는 고려 시대에 이뤄졌다.( ‘형법지’) 조선 시대 들어서는 적용 대상도 크게 확대됐다.() 일정한 촌수 안에 드는 친인척끼리는 같은 관아에서 관직을 맡지 못하게 했고, 과거 시험에서 감독관과 응시생의 관계로 마주치지 못하게 했다. 친인척이 당사자인 송사의 재판관도 맡을 수 없었다. 심지어 어떤 지방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관리는 그 지방에 파견하지 못하게 했다. 뜻은 좋으나, 연좌제 성격이 없지 않다. 오늘날은 혈연을 이유로 공직의 진출, 승진, 보직을 사전에 제한하는 제도는 없다. 가령, 201.. 더보기
5월 걸상 “걸터앉는 기구. 가로로 길게 생겨서 여러 사람이 늘어앉을 수 있는 거상(踞床)과 한 사람이 앉는 의자로 크게 나뉜다.” 에 나오는 ‘걸상’의 뜻풀이다. 언중은 흔히 걸상과 ‘의자’를 섞어서 쓰지만, 국립국어원은 걸상의 범주가 의자의 범주를 안으로 품는다고 정의한다. 와 는 빈센트 반 고흐가 프랑스 아를에 살 때 그린 작품이다. 평자들은 두 그림 모두 의자 주인의 인격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말한다. 반 고흐가 자신의 방을 그린 에도 의자 두개가 나오는데, 와 모양에 느낌마저 똑같다. 걸상은 본디 주인의 정령을 품는다는 듯이.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 더보기
반 고흐를 위한 ‘포스트 코로나’ 한달 남짓 전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한 점이 도난당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휴관 중인 네덜란드의 한 박물관에서 벌어진 일이다. 바이러스 창궐에 따른 찰나 같은 보안의 빈틈을 도둑은 대범하게 파고들었다. 훔칠 배짱도 능력도 없고, 작품값에서 초현실감밖에 느끼지 못하는 나는, 죽기 전 저명 화가의 작품 한 점 소장할 기회가 오면 무조건 반 고흐 작품을 고를 거라고 멋대로 상상했다. 내 주머니 사정이 대수인가. 천문학적인 작품값은 어차피 화가 자신에게도 한푼 귀속되지 않은 것을. (어빙 스톤 지음, 최승자 옮김) 같은 전기나 (신성림 옮김) 같은 편지글을 읽다 보면, 그림을 향한 그의 불타는 열정만 와닿는 게 아니다. 살아서 작품 한 점 제대로 팔지 못할 만큼 싸늘했던 미술계의 외면과 처절했던 가난, 또 굶.. 더보기
‘99’의 쓸모와 쓰임새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토머스 에디슨의 말은 숫자 ‘99’에 관한 가장 유명한 어록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꽤나 자기도취적인 말이기도 하다. 저 명제는 천재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입증이 불가능하다. 에디슨은 한껏 겸양까지 드러내며 자신을 천재로 내세운 셈이 된다. 에디슨의 명제와 숫자 구성이 똑같기로는 ‘1 대 99 사회’를 들 수 있다. 경제 양극화로 소수 1%가 부를 독점하고 나머지 99%는 소외됐다는 구조 인식 프레임이다.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등이 대표적인 주창자다. 우리나라에서도 진보 진영에서 대체로 고른 지지를 받아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새해 기자회견에서 1 대 99 사회를 “전세계가 직면한 공통 과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