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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팃포탯’이 아니다 ‘팃포탯’(tit for tat)은 일상에서 자주 쓰는 용어가 아니어서인지 이런저런 비유가 많이 등장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대표적이다.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의 원조인 고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의 대원칙이다. 실제로 이 법전에는 “평민이 귀족의 눈을 멀게 했으면 제 눈을 멀게 한다”(196조), “평민이 귀족의 뼈를 부러뜨렸으면 제 뼈를 부러뜨린다”(197조) 같은 조문이 여럿 나온다. 그러나 팃포탯의 뉘앙스와 더 잘 어울리는 건 마오쩌둥이 남긴 이 말이다. “남이 나를 범하지 않으면 나도 남을 범하지 않으며, 남이 나를 범하면 나도 반드시 남을 범한다.” 함무라비 법전은 오로지 죄와 벌에 관한 것이지만, 마오의 저 말은 상대방을 대하는 원칙이나 태도·방식과 관련돼 있다. 평화도 가능..
연평도 보온병의 추억과 윤 대통령의 무지 2010년 11월23일 오후 2시34분 북에서 쏜 포탄 수십발이 연평도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들은 하굣길이었고, 어린이집 원생들은 낮잠 시간이었다. 바닷가에서는 주민들이 굴을 따고 있었다. 교전은 1시간 남짓 이어졌다. 우리 쪽은 민간인 2명과 군인 2명이 숨졌다. 주민 80%가 여객선과 어선에 몸만 싣고 피난길에 올랐다. 민간 거주지역이 공격당하는 사태는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이래 처음이었다. 이튿날 입도한 한나라당의 안상수 대표는 폐허가 된 주택가에서 검게 그을린 원통형 물체 2개를 손에 들고 섰다.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 예비역 육군 중장인 황진하 의원은 포병여단장 출신답게 “이게 76㎜ 같고, 이거는 아마 122㎜ 방사포”라며 아는 체했고, 공군 중위로 전역한 안형환 대변인도..
우물과 도넛이 풍요롭게 하리라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우물을 파서 누구나 물을 길을 수 있게 됐다. 우물은 마을에 더욱 큰 부를 안겨다 줄, 말 그대로 ‘원천’인 셈이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한 건 아니다. 사기업이 우물을 파서 주민들에게 물을 판다. 국내총생산은 증가하지만, 마을의 부는 그대로다. 주민들은 물값 부담만 새로 지게 된다. 생태정치학 창시자인 앙드레 고르가 예시한 국내총생산의 ‘마술’이다.() 국내총생산은 경제의 절대적 지표 같지만, 경제학 역사에선 신인 축에 든다. 미국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1934년 제안했다. 한 나라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화폐로 계산한 채권·채무 관계의 총액이다. 화폐 교환이 일어나지 않는 마을 공동체 우물이나 가사노동은 누락되지만, 전쟁 무기는 주요 항목이다...
청승맞은 미학은 쓸모도 많지 영화 (2021)를 볼 때마다 나는 특정 장면에서 속절없이 눈물을 비치고 만다. 농인 부모한테서 태어난 청인 루비 로시(에밀리아 존스)가 오디션에서 노래를 부른다. 처음엔 음성언어로 시작하지만, 손가락이 미세하게 달싹이더니 이내 새가 날개를 펴 창공을 날듯 수어로 ‘일인 이중창’을 하는 시퀀스다. 루비가 제 손동작을 애틋한 눈빛으로 좇을 때면 나도 모르게 그 눈길에 이끌리다 금세 수어의 선율에 몸을 맡기게 된다. 루비의 수어는 음성의 번역본이 아닐뿐더러 애초 둘은 하나였던 듯 숨 막히는 앙상블을 이루고, 그 미학적 전율은 수어 한마디 못 하는 내 몸속으로 오롯이 흘러든다. 지난달 연극 (서울시극단)을 보러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 갔다. 출연진은 전문 연기자들만이 아니었다. 중증 발달장애인들과 조력자들도 제..
백지, 텅 빈 기표의 뜨거운 함성 ‘백지’의 가장 보편적 메타포는 뭘까. ‘백지 한장도 맞들면 낫다’ ‘백지 한장 차이’처럼 무게나 두께에 관한 비유는 더러 있지만, 의외로 색깔에 관한 비유는 보기 어렵다. 종이는 본디 흰색이고 주요 쓸모가 표기에 있다고 간주하면, 백지의 보편적 속성 역시 아무것도 쓰이거나 그려져 있지 않은 ‘텅 비어 있음’(공백)일 터이다. 영영사전에서도 ‘white paper’를 ‘백서’와 함께 ‘빈 종이’(blank paper)라고 풀이하는 걸 보면, 흰 종이에서 공백을 읽어내는 건 인류 공통의 감각인가 보다. 정부 공식 보고서를 뜻하는 백서의 유례가 영국 정부 보고서(의회 보고서는 ‘청서’)의 표지 색 관행이라는 점에서 색깔에 관한 드문 용례이나, 추상성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납작한 비유에 불과하다. 텅 빈 상..
희생자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죽음의 해석은 다분히 사회적인 ‘배치’다. “호상입니다”라는 조의에 망자의 사전동의가 있을 리 없다. 사회의 암묵적 합의가 있을 뿐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언론 보도다. 장삼이사의 극단적 선택은 신병 비관, 실연, 생활고, 수사 압박, 입시 실패 등 정형화된 선택지 중 하나에 기필코 배치된다. 물론, 모든 죽음을 낱낱이 해석하기란 불가능하다. 타자의 죽음 앞에 가로놓인 실존의 강을 건너가는 것 또한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타자의 죽음을 산 자의 감정으로만 처리하면서 그걸 애써 ‘애도’라 부를 수도 없는 일이다. 실의에 빠진 돈키호테를 향해 산초는 “슬픔은 짐승이 아닌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슬픔이 지나치면 사람도 짐승이 돼버린다”며 나무란다. 진정한 애도에는 멜랑콜리(슬픔과 우울)를 넘어서려는..
‘국익 대 언론 자유’, 전용기의 뇌피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들에서도 국익을 앞세워 보도를 막으려는 시도는 없지 않았다. 국가안보가 걸린 경우엔 사회적 갈등도 자못 심각했다. ‘통킹만 사건’ 보도를 둘러싼 ‘ 대 미국 연방정부’와 ‘ 대 미국 연방정부’ 소송이 대표적이다. 두 소송은 우여곡절 끝에 연방대법원의 병합심리로 1971년 6월30일 확정판결이 났다. 1964년 8월 베트남 통킹만 해상에서 미군과 북베트남군이 두차례 교전을 벌였다. 미국은 적이 선제공격을 했다며 북베트남을 침공했다. 실상은 미군의 도발이었다. 그 진상이 담긴 정부 비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가 입수한 건 1971년. 신문은 7000여쪽 문서를 요약해 6월13일 첫회를 보도했고, 도 닷새 뒤 같은 내용을 확인해 보도에 나섰다. 이에 법무부가 국가안보를 들어 뉴욕과 ..
전쟁 같은 일상, 어디라도 이태원이다 지난달 30일 아침, 버스를 갈아타려고 서울 연세대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여느 일요일 출근길이면 차 한대 볼 수 없던 연세로를 버스들이 태연히 오가고 있었다. 서대문구가 얼마 전에 ‘주말 차 없는 거리’를 폐지했고, 평일엔 버스만 지나갈 수 있는 ‘대중교통전용지구’마저 해제하려고 한다는 기사를 읽기는 했었다. 한적함이 좋아 500m를 부러 걸어서 지나곤 하던 거리가 차량과 경적 소리만 빼곡했던 오래전으로 되돌아가 있는 풍경이 떠올랐다. 간밤 이태원 참사에 개기일식처럼 검게 먹어버린 심장 한가운데로 저릿한 파동이 훑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이태원 참사와 그보다 한없이 사소해 보이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의 퇴행 사이에도 별자리처럼 이어지는 지점이 있다. 무엇보다, 그날 이태원로의 차량 통행을 막았더라면 골목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