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하라, 고르·니체·사르트르·아렌트…낭만적 사랑, 지적으로 승화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D에게 보낸 편지>(앙드레 고르 지음·임희근 옮김· 2007· 6쪽)
앙드레 고르(1923~2007)는 마르크시즘과 생태주의를 하나로 품어 생태정치학을 창시한 좌파 사상가다. 사르트르-보부아르 부부의 오랜 벗이기도 하다. 고르의 아내 도린은 20세기 가장 ‘소란스러운’ 커플 가운데 하나인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는 물론 1980년대 초반 일찍 사상계에서 은퇴한 남편에 견줘도 완전히 무명이었다. 적어도 남편이 자신 앞으로 쓴 편지가 <D에게 보낸 편지>라는 책으로 출간되기 전까지는.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는 평가를 받은 고르가 도린에게 이 육체성 충만한 편지를 쓴 건 2006년이었다. 고르는 여든셋, 도린은 한 살 ‘어린’ 여든둘이었다. 혹여 이 책을 통독하지 않고 사전 정보 없이 앞의 인용구를 읽는다면 거기서 노추(老醜)를 읽어낼 수도 있다. 언뜻 표현만 봐서는 ‘작업’의 낌새가 자욱하다. 그런데 100쪽 분량의 책을 끝까지 읽어본다면 두 존재가 일궈가는 연애의 풍경에 매료될 것이다. 둘의 사랑은 드물고 귀하다. 오죽하면 소설가 김훈이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했을까. ‘아, 나는 언제 이런 사랑 한번 해보나.’
연애는 본디 통속적이지 않다
오늘날 연애는 통속하다. 시인 박인환이 요즘 세태를 본다면 ‘연애는 그저 드라마처럼 통속하거늘’이라고 읊지 않을까. 거리는 온통 통속한 연애의 로케이션 현장이고, 집안은 급히 편집한 통속극으로 만연하다. 거리와 집안은 서로를 되먹이며 한통속으로 굴러간다. 거리의 연애는 트렌드로 통속극에 삼투하고, 통속극은 내면화되어 거리에서 다시 시전된다. 이것이 연애의 생산-유통-소비 체계다. 이제 연애의 통속성은 유구한 전통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가 전통이라고 믿는 것 가운데 태반은 발명된 짝퉁이다. 연애는 본디 통속하다고 할 수 없다. 연애의 통속성은 시대적인 현상이다. 통속의 반대말은 ‘숭고’보다는 차라리 ‘희소’다.
인류 역사에서 연애는 통속이 되기에는 너무 특권적이었다. 중세 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의 주인공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평민이 아닌 귀족이었고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그보다 몇 급수 위였다. 그들의 연애가 숭고하기만 했던가. 연애는 산업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비로소 ‘민주화’되고 ‘대량소비’되며 통속화되었다. 대량생산·대량소비라는 자본주의 문법은 연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니 ‘통속이냐 숭고냐’ 따위의 문제 설정은 애초 성립할 수 없으며, 연애의 참된 의미를 왜곡하기까지 한다.
연애가 살(flesh)이 개입된 사태라는 건 그에 견주면 얼마나 실제적인가.(1) 그 번연한 사실 앞에서 인류는 오랜 세월 청맹과니 행세를 해왔고, 통속과 숭고의 이분법 뒤에 살을 유폐시켜왔다. 연애 자체를 백안시하거나, 생선회 뜨듯 살을 떴다. ‘연애는 대학 가서 해도 늦지 않다’와 ‘건전한 교제는 학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대립적으로 보이지만, 삶의 본분을 연애보다 학업에 둔다는 점에서 상동적인 언설이다. 연애에서 살을 배제한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적 성규범의 판타지 버전으로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플라토닉 러브’는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성과 시민권 대기자인 미소년 사이의 이슈였다. 플라톤은 현상(감각)의 세계는 선이 아니라고 보았다. 오직 이데아를 바탕으로 한 이성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토닉 러브라는 개념도 이데아론에서 비롯됐다. 육체를 멀리하고 이성적인 물음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은 나이 불문하고 시민권이 없었다. 당대 이데아론자들은 그런 비시민과의 연애는 ‘진정한 사랑’의 범주에서 아예 제외했다. 중세시대 부패한 성직자들의 연애 사건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거두어 키우기 위해 고아원이 생겨났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계보도 앞에서도 교회는 자못 숭고했다. 늘 그렇듯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살이 개입된 연애가 아니라) ‘누구의’ 연애냐이다.
‘살’ 없는 낭만적 연애의 기원은
낭만주의 시대는 어땠을까. 연애의 낭만성은 문학 작품들 안에서 만개했으나 살은 낭만의 블랙홀로 빨려들어 사라졌다. 연애가 통속이 된 지금도 아이러니하게 살은 복권되지 않았다. 대신 연애를 오로지 살의 사태로만 국한하는 과잉이 다른 한 편에서 번성한다.
백마 타고 온 왕자가 끼어든 고만고만한 낭만과 가부장적으로 고만고만한 치정을 가족주의로 환원한 클리셰가 안방극장을 독점할 때 누군가는 건넌방 문을 걸어 잠근 채 컴퓨터 앞에 앉아 포르노그래피에 몰입한다. 이야기가 된 연애가 살에 대한 관념화라면 이야기가 아예 없는 포르노그래피는 살에 대한 폭력 자체다. 통속극은 연애보다 더 연애 같은 시뮬라크르이고, 포르노그래피는 플라토닉 러브의 외설적인 역설이다. 연애의 육체성을 인간해방의 본질로 여기는 태도, 이를테면 프리섹스주의도 살에 대한 정위(定位)에 이르지는 못한다. 철학자 김영민은 “대개 살이 연정을 부르긴 하지만, 그 살에만 일방적으로 탐닉하는 것은 산망스러울 뿐 아니라 실로 치명적이다. 가령 사드(Sade)처럼 살에의 일방적 탐닉이 결국 몰아온 것은 그의 기대와 같이 ‘자연성’이 아니라 과실재(過實在)의 폭력일 뿐이다”라고 짚었다.(2) 소설 <소립자>(미셸 우엘벡·1998)는 프랑스 68혁명 이후 성해방운동이 성적 자원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과 이에 따른 독점과 배제, 상품화로 이어지는 맥락을 그리고 있다. 연애에 살만 남으면 좁은 의미의 ‘고깃덩어리’로 환유되고 만다.
연애의 자리, 연애에서 살의 자리가 이렇게 부유해온 사정은 철학적 인식론에서도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정신 대 육체, 이성 대 본능, 본질 대 현상 등 이분법적 인식론은 살의 실제를 직시할 수 없도록 한 혐의가 짙다. 인간의 이성을 신으로부터 독립시켰다고 평가되는 데카르트가 대표적이다. 그는 정작 정신이 육체를 조종하는 논리적 경로를 찾지 못하자 ‘송과선’이라는 상상의 인체 장기를 발명해냈다. 그의 주장을 해부학적으로 입증하려던 후대의 숱한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이성주의자가 이토록 비이성적인 사기를 친 것은 역설적으로 정신과 육체의 분리가 인식론의 질곡이라는 자기고백이기도 하다. 이를 연애의 문제와 연결해보면 연애에서 살은 실제이면서도 다가갈 수 있는 논리적 경로를 상실한다. 연애를 이성의 울타리 안에 가두고 그 육체성을 터부시해야 한다. 데카르트가 연애를 했다면 정신성과 육체성을 분리하지 못해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터이다. 이거야말로 처음 칼을 잡아본 이가 생선회를 뜨는 것만큼 딱한 노릇이다.
플라톤 이래 데카르트로 이어지는 ‘고도의 정신주의’를 표방한 인식론은 망치의 철학자 니체에 의해서 전복된다.
“신체는 커다란 이성이며, 하나의 의미를 지닌 다양성이고, 전쟁이자 평화, 가축 떼이자 목자이다. 형제여, 네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그 작은 이성, 그것 또한 너의 신체의 도구, 이를테면 너의 커다란 이성의 도구이자 놀잇감에 불과하다. 너희들은 자아 운운하고는 그 말에 긍지를 느낀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 자아보다 더 큰 것들이 있으니 너의 신체와 그 신체의 커다란 이성이 바로 그것들이다. 커다란 이성, 그것은 자아 운운하는 대신에 그 자아를 실천한다. (중략) 형제여, 너의 사상과 생각과 느낌의 배후에는 더욱 강력한 명령자, 알려지지 않은 현자가 있다. 이름하여 그것이 바로 자기이다. 이 자기는 너의 신체 속에 살고 있다. 너의 신체가 바로 자기이기도 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중·프리드리히 니체·1883~1885)
니체에게 ‘신체’(몸)는 이성과 육체, 그리고 힘에의 의지가 불가분의 유기적 통일체를 이루는 개념이다. ‘신체=큰 이성’이라는 정식은, 인간의 정수는 이성이라고 여겨온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인간의 몸을 몹쓸 충동이 아우성치는 악의 근원으로 몰아붙였던 기독교에 대한 반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니체가 육체성을 본질로 앞세웠다고 할 수는 없다. 큰 이성에서 신체를 은유하는 체언은 ‘이성’이고 그 앞에 관형어 ‘큰’이 붙은 것만 봐도 그렇다. 정신이든 육체든 본질로 환원하려는 태도를 니체는 비판한 것이다. 그에게 이성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은 서로를 참조하고 삼투하고 견인하고 확장하고 생성하는 관계다. 니체의 ‘신체=큰 이성’의 개념은 연애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니체와 루 - 사랑은 신체의 상승의지, 그리고 독점욕
“삶에 친숙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 속에는 얼마간의 광기가 있기 마련이다. 광기 속에는 얼마간의 이성이 있기 마련이고.” (앞의 책,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중)
사람은 자기와 관련된 것은 그것이 고통스럽더라도 애정이나 애착을 갖는다. 삶 자체에 친숙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작용을 통해 삶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니체는 말하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호수가 아니라 거칠고 불안한 바다를 항해할 수 있게 하는 삶의 에너지로서의 사랑, 그중 가장 강력한 것은 연애-사건이다. 니체의 경우를 보자. 시인 기형도의 시구를 빌리자면, 사랑을 잃고 니체는 썼다. 루 살로메에게 실연당한 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1부와 2부를 각각 열흘 만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다. 삶의 동력이 사랑이라면, 이루어진 사랑은 힘을 상실하고 심지어 더는 사랑이 아니게 된다. 연애의 완성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오히려 실연은 연애의 한 양태이거나 연장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제 아무리 니체라도 연애라는 사태 앞에서 선정(禪定)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연애에 관한 니체의 글에서는 사랑을 얻지 못해 전전반측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소유에 대한 갈망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이성 간의 사랑이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과 육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권력을 원한다. 그는 홀로 사랑받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의 영혼 안에서 최고의 대상, 가장 갈망할 만한 대상으로 머물러 상대방을 지배하려 한다.” <즐거운 학문>(프리드리히 니체)

니체는 루 살로메에게 여러 차례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 그의 청혼은 일종의 소유욕과 관련되어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단서도 있다. 가수 이승기의 ‘누난 내 여자니까’ 유의 소유욕과는 차원이 다르다. 니체는 1882년 6월 26일 루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의 선생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지금 나의 상속자가 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나의 책에서 읽을 수 없는 것들을 나는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나는 지금 이러한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비옥한 토지를 찾고 있습니다.”(3) 니체는 루에게서 정인뿐 아니라 제자, 상속자를 찾으려 했다. 연애를 성애적 차원을 넘어서 신체라는 자기 확장이자 자기 초극으로 시도했다. 그렇더라도 그의 행동에서 미욱함이 엿보이는 건 어찌할 수 없다. 철학자 김영민은 니체의 행동을 인색하게 평가한다. “파울 레가 그녀에게 니체를 가지고 놀지 말라고 부탁했을 만큼 그녀 앞의 니체는 조급했고 들떴으며 상상할 수 없이 비철학적이었다. 38세의 니체는 변변한 데이트조차 없이 21세의 그녀에게 청혼함으로써 전래의 남성주의적 반칙을 반복한다. (중략) 그러니까, 남자의 천재는 그가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야 그 온전한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다.”(4)
루와 지식인 남성들 - 육체성 외부를 여는 관계 실험
니체의 연애사는 ‘루’를 주어로 세울 때 사뭇 다르게 읽힌다. 니체는 루 한 사람을 사랑했지만 루는 수많은 남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니체 말고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과 교재했고 그 남성들과의 관계방식 또한 일관되고 고유했다. 루와 니체, 그리고 니체의 제자이자 기묘한 연적이었던 파울 레가 함께 찍은 사진은 참으로 상징적이다. 루는 수레 위에 앉아 채찍과 고삐를 쥐고 있고, 니체와 레는 두 마리 말처럼 수레 손잡이를 붙들고 있다. 루는 레와 니체 모두의 청혼을 거절하면서도 세 사람의 ‘학문적 동거’를 제안해 실행한다.
김영민은 이런 루에게서 ‘3’이라는 기호를 도출한다. 물론 그는 이 세 사람의 관계만으로 생급스런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일찍이 루에게 청혼했던 헨드릭 길로트 목사와의 관계에서도 3은 ‘그녀-길로트의 혼인-공부/유학의 야심’이라는 운명적 놀이였고, 26살에 결혼한 뒤 모든 행동의 자유를 얻은 카를 안드레아스와의 관계에서도 ‘그녀-남편-타자를 향한 자유’라는 3에 의해 아이러니의 삶과 긴장이 가능했으며, 이후 ‘그녀-자신의 젊은 정인 릴케-남편과 함께 떠난 러시아 여행’도 3이 반복으로 변주된 것이다. “그녀는 3이라는 아이러니의 긴장이 주는 역설적 통기(通氣) 속에서만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향유할 수 있었다.”(5)
여러 남성과 동시에, 그러나 육체적으로는 거리를 두는 루의 기이한 남성 ‘편력’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그녀가 니체, 레와 함께 찍은 사진은 확실히 (남성에 대한) 그녀의 권력 감정이 후경을 이루고 있다. 니체 식으로 말하면 그녀는 홀로 사랑받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의 영혼 안에서 최고의 대상, 가장 갈망할 만한 대상으로 머물러 상대방을 지배하려 한다. 하지만 니체에게는 육체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권력을 원하는 것이 연애인 반면 루에게는 그것이 없다. 또 니체에게는 1대 1의 관계로 상정되는 연애가 루에게는 1대 다(多), 김영민의 사유를 빌리면 1대 3으로 발현한다. 그녀의 연애가 육체성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 의지에 의한 통제였다면 남성 지배 체제에서 살아야 했던 야심찬 천재 여성 지식인의 전략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첫사랑이었던 길로트의 청혼을 거절하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여성을 받아주는 스위스 취리히대학으로 간 것은 그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일각의 추측대로 그녀가 성적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다고 해도 ‘약자로서의 여성’이라는 그녀의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생물학적/사회학적) 성 정체성은 세기적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 된 여성 지식인들한테서 동일한 조건 속에 다양한 양태로 나타난다.
루와 니체를 비롯한 그녀의 남자들이 19세기에 무게추가 쏠려 있다면, 온전히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식인 간의 연애로는 앞의 사르트르-보부아르와 하이데거-아렌트의 연애를 꼽을 수 있다. 당대 최고 지식인들끼리 펼치는 연애의 서사에는 필연 공통된 면모가 있을 것이다. 서로의 학문 활동에 영향을 미쳤고 음으로 양으로 도움도 되었다는 얘기 따위는 장동건과 고소영 사이에 예쁜 아기가 태어났다는 호들갑만큼이나 진부하다. 그들의 연애에서 살의 자리를 찾아보고 그 살이 도저한 학문적 성취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역시 연애는 가장 뜨거운 에너지여서 가장 불안한 에너지다. 이들 대단한 지식인도 연애라는 신체의 마주침 앞에서 관계가 가지런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이 남긴 저작 안에서는 결코 텍스트화되지 않은 것들이 삶이라는 콘텍스트에 비온 뒤 쌓인 명개처럼 흔적을 남기고 있을 따름이다. 개중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 철학·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의 연애는 직설적으로 대칭하고 대립하는 정치적 입장 사이에서 오히려 비정치적이어서, 더욱 정치적인 성애의 무늬를 남겼다.
아렌트와 하이데거-지적이고 성애적인 위계


30대 중반이자 기혼자인 하이데거와 아직 10대 후반인 아렌트는 교수와 학생의 관계로 강의실에서 처음 만나 50년 가까이 정인 관계를 유지했다. 알다시피 하이데거는 나치를 지지했고, 훗날에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아렌트는 나치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망명한 뒤 홀로코스트를 역사적 맥락으로 정리한 <전체주의의 기원>을 썼다. 연애 초기에야 두 사람 사이의 육체성이 정치적 차이에 눈멀게 했을 수 있지만 정치적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엇갈린 뒤에도 성애적 관계가 유지된 건 어떻게 봐야 할까. 그것은 지적 연결감이었다. “오직 그녀만이 이 세기의 사상가를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그녀만이 그의 뮤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정치윤리학적으로 상극을 달렸던 이 두 정인의 밀애를 가능하게 했다. 이처럼 연애의 열정은 어느 무지에 근거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무지는 어느 특권적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7) 그러나 둘의 관계는 수평적이지 않았다. 하이데거는 끝끝내 아렌트의 스승이었고 아렌트는 그의 어린 여제자였다. 둘 사이의 권력관계는 군사부일체의 도덕관념이 아니라 사랑에 기대고 있었으며, 그 사랑은 지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니체의 큰 이성으로서의 신체와 성애의 권력 의지는 하이데거와 아렌트에게서 그렇게 변주되었다. 아렌트의 자리에 루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르트르-보부아르의 관계가 소란스러움을 연상시키는 건 그들이 처음부터 부부 관계를 정치적인 심급에 두고 시작해서인지도 모른다. 루가 안드레아스와 결혼하면서 모든 행동의 자유를 확약받았듯이 이들도 계약을 통해 서로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했다. 사르트르-보부아르의 관계는 어느 면에서 하이데거-아렌트의 관계와도 대비된다. 두 커플 모두 정치성이 관계를 매개하고 있지만, 하이데거-아렌트에게 권력관계로 내재돼 있는 그것이 사르트르-보부아르에게는 평등의 외양을 띠었다. 이들에게 서로에 대한 연애 감정은 언제든지 통제 가능하고 기획할 수 있는 그 무엇이었다. 이들의 관계는 성애 이후이거나 성애 너머의 것으로 보였다. 사르트르의 끝없는 여성 편력에 보부아르가 적잖이 고통스러워했지만, 그것은 육체적 질투라기보다는 ‘지적 반려자’의 위상이 위협받는 데 대한 신경질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둘의 관계가 지적으로 완전한 수평은 아니었다. “(보부아르는) 글의 세계라면 사르트르에게 조금 양보했다. 사르트르의 길은 정반대였다.”(8) 그런 그녀에게도 죽음의 자리까지 함께 한 성애적 대상이 있었으니 미국인 무명작가 넬슨 올그렌이다. 보부아르는 파리 몽파르나스 묘역에 사르트르와 나란히 누워 있지만, 영면한 그녀의 손가락에는 올그렌이 선물한 반지가 끼워져 있다.
고르와 도린 - 정신성과 육체성의 총체적 합일

“사랑의 열정이란 바로 그런 것이지요. 타인과 공감에 이르게 되는 한 방식입니다. 영혼과 육체를 통해 이 공감에 이르는 길은 육체와 함께하기도 하고 영혼만으로도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철학 안에 그리고 철학 밖에 있는 것이지요.” (앙드레 고르·앞의 책·34쪽)
앙드레 고르와 도린의 관계는 앞의 다른 지식인들의 그것과 많은 부분 겹치면서도 뚜렷하게 차별되는 부분이 있다. 둘은 젊어서 첫눈에 반했고 빠르게 성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자신의 성애에 흔쾌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프티부르주아의 감정으로 치부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겁니다.”(같은 책·69쪽) 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도린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승화시킨다. “내가 미처 못 알아채는 실상을 당신은 파악하곤 했습니다. 나는 더 겸손해졌지요. 내 기사나 원고를 제출하기 전에 당신에게 먼저 읽어봐달라고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왜 당신은 항상 옳은 거지!’라고 투덜대면서도 당신의 비판을 참고하곤 했지요.”(같은 책·52쪽) “당신은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게 돕느라고 당신의 모든 것을 준 사람입니다.”(같은 책·70쪽) “내 고용주들은 내가 당신 없이는 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같은 책·44쪽) 두 정인 사이에는 사회적·지적 위상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그 차이가 권력관계로 환원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상승시키는 ‘물매’였다.
<D에게 보낸 편지>는 고르의 관점에서 기술된 것이기에 도린은 타자의 위치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녀는 오랜 세월 병석에 누워 있어서 공적 활동을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도린이 루나 아렌트, 보부아르보다 저명하거나 위대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두 정인의 관계는 연애의 정신성과 육체성이 총체적 합일을 지향해온 서사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책은 고르가 위대한 사상가여서가 아니라, 그 나이에 죽음을 앞두고 육체성이 살아 있는 연애에 관해 성찰적 고백을 했다는 점에서 가슴을 울린다. 삶의 최종 단계에서 쓰고 발표한 글이 지극히 사적인 것이었다는 것이 주는 의미는 무겁고 삼엄하다. 모든 사적인 것은 공적인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당신의 병 때문에 우리는 생태주의와 기술 비판이라는 영역으로 되돌아오게 됐습니다.”(같은 책·81쪽) 신체는 큰 이성이고 연애는 삶의 생성적 에너지라는 니체적 사유에 이보다 더 근접할 수 있을까 싶다. 김훈의 말대로, 죽기 전에 이런 연애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안영춘 편집장 jona@hani.co.kr
(1) 철학자 김영민이 지은 <동무와 연인>(한겨레출판·2008)의 부제는 ‘말, 혹은 살로 맺은 동행의 풍경’이다. 그는 본문에서도 ‘살’이라는 개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데, 연애의 육체성을 은유한 표현으로 이해된다. 이 글에 나오는 연애 사례들의 상당 부분은 이 책에서 참조하거나 인용했다.
(2) 김영민, 위의 책, 42쪽.
(3) 고명섭, <니체 극장>(김영사·2012)에서 재인용.
(4) 김영민, 위의 책, 74쪽.
(5) 김영민, 위의 책, 75쪽.
(6) 김영민, 위의 책, 46쪽.
(7) 김영민, 위의 책, 13쪽.
(8) 고르는 30년 동안 불치의 병을 앓아온 도린과 이듬해인 2007년 동반자살했다.
※ 2013년 4월 발행한 ‘나·들’ 7호 ‘연애’ 특집에 쓴 글입니다. ‘나·들’은 인터넷에서도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