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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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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법원 판결을 ‘활용’하는 풍경들 매개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왜곡한 뒤 두고두고 확대재생산 법원의 판결 결과는 대개 개인에게 귀속되지만, 결국 사회적 규범을 규정하는 구실까지 하게 된다. 이때 법원과 사회를 매개해주는 것은 역시 언론이다. 그만큼 언론의 판결 보도와 해석은 정확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고, 오히려 언론이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큰 논란이 됐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2004년 병무 비리 전문가 김대업씨에게 무고와 명예훼손 등으로 징역 1년10월을 선고했다. 대다수 언론은 김씨를 ‘공작정치의 대가’라고 낙인찍었다. 그 낙인은 2007년 대선에서 “BBK 의혹 역시 공작정치”라는 정치선전에 동원됐다. 그러나 김씨가 ..
모기는 섹시한 사람을 좋아해? 적을 알아야 승리한다…그 작고 사악해 보이는 생물체에 대한 몇가지 궁금증 난 몸에 열이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성인이 되어서 과하게 몸을 혹사하며 살다 보니 체질이 변한 것 같습니다. 땀도 심하게 많이 흘리게 됐습니다. 오늘도 동네 뒷산을 두어 시간 오르내렸는데, 웃옷은 물론이고 바지 허리춤까지 소금띠가 앉더군요. (어떤 이는 그런 나를 ‘물탱이’라고 불렀습니다.) 몸에 열이 많고 땀을 많이 흘리면 모기의 공격 대상이 됩니다. 일러 ‘인간 모기향’이지요. (물론 그런 사람만 모기에 잘 물리는 건 아닙니다. 나를 ‘물탱이’이라 불렀던 이는 오히려 몸이 차갑고 건조한 편인데, 함께 있으면 나보다 모기에 더 잘 물렸습니다. 아마 모기가 특정한 체취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일 겁니다.) 날씨..
언론은 클리셰를 즐긴다 ‘전쟁과 골프’의 진부한 반복, 그리고 기자들의 깊숙한 개입 시사주간지 기자는 마감에 임박해 터지는 대형 사건에 취약하다. 일껏 다 만들어놓은 표지이야기가 쓸모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돈 받은 사실을 시인한 직후다. 닷새 뒤쯤 배포될 글인데, 이럴 땐 무엇보다 글감 잡는 게 가장 힘들다. 노 대통령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실은 없지만, 그때 가면 이미 상황이 많이 바뀌어 있을 테니 말이다. 시사 현안을 다루는 글쓰기는 이처럼 ‘시의성’이라는 결정적 변수와 씨름한다. 하지만 시의성이 아무리 중요해도, 언론이 새로운 사건을 모두 낯설게 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건들을 유형화하고, 정해진 틀에 맞춰 재구성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노 전 대통령이 돈 받은 ..
‘리스트’의 화학적 속성과 연금술 ‘있을 법한 개연성’, 결국 언론·수사당국 손타며 ‘뒤틀린 사실’로 확정 박연차 리스트가 춘삼월 여의도를 얼어붙게 하고, 장자연 리스트는 연예계가 아닌 신문·방송계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른바 ‘리스트 정국’이란 시간의 단면을 포착한 삽화 같지만, 서사적 맥락 위에 놓고 보아야 제대로 읽히는 내러티브다. ‘리스트’는 땅속에서 부글거리는 마그마 같은 것이다. 압력이 임계점을 넘으면 지각을 뚫고 용출한다. 리스트의 내용도 ‘있을 법한 개연성’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것일 따름이다. 땅밑에 언제나 마그마가 끓고 있는 것처럼. 모든 리스트에는 확연한 공통점이 있다. 등장인물이 정·관·재·언론계 따위 힘깨나 쓴다는 직업군을 벗어나는 법이 없고, 거의 다 남성이라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뉴욕 최대 성매..
스포츠 중계가 ‘국민’을 호명하는 이유 ‘고국에 계신 국민’ 대신 ‘스포츠 좋아하는 시청자’ 될 순 없나 5공 땐 한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대통령이 곧장 전화를 걸어 ‘국위 선양’을 치하했다. 방송은 그 장면을 생중계했다. 그 선수는 다시 ‘고국에 계신’ 부모와 통화에서 “어매야. 인자 고생 다했다”며 울먹였다. 물론 그 장면도 생중계됐다. “고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는 국제경기 중계방송 캐스터의 가장 격정적인 레퍼토리였다. 온 국민은 그때마다 열광했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에 명치끝이 뻐근해지곤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수백개의 금메달이 주인을 찾아갔지만, 외국 금메달리스트의 국적은 관심밖이었다. 당연히 그 나라의 국위가 우리에게 선양될 리 만무했다. 86년엔 멕시코 월드컵이 열렸다. 그전까지..
장자연 보도, 그 진지한 선정주의 KBS의 알권리 차원 문건공개, 인터뷰 편집왜곡으로 빛바래 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 제작진으로부터 인터뷰 요청 전화를 받고 거절한 적이 있다. 나는 적임자가 아니었다. 그 사안에 대한 이런저런 배경설명과 함께 다른 인터뷰 대상을 소개해줬다. 그런데 그 방송사는 통화 내용을 녹음해 내가 인터뷰를 한 것처럼 방송에 내보냈다. 그 뒤로 나는 방송기자 전화라면, 잘 아는 후배일지라도 “지금 녹음하고 있느냐”부터 묻는다. 정식 인터뷰를 할 때도 반드시 “내 말을 몇 초로 쓸 건가” 확인한 뒤 딱 그 시간만큼만 말하고 끝낸다. 방송사가 임의로 내 말을 잘라 붙이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다. 장자연이라는 여성 연예인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었다. 그의 죽음은 개별성에서 벗어나 그의 노동과 성을 착취한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
‘사실’과 ‘의견’ 구분하지 않는 조선일보 ‘뉴스&뷰’ ‘바벨탑 언론’은 재앙이다 “지금 학우들이 경찰에 쫓기고 있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언론사에 갓 입사한 수습기자들이 시위현장에서 선배에게 보고할 때 실제로 저지르는 드문 실수다. 무엇이 실수일까? ‘학우’라는 표현이다. 그는 ‘객관적 관찰자’로서 쓰지 말아야 할 주관적 표현을 썼다. 공정성이 내용과 관련된 규범이라면 객관성은 형식과 관련된 규범이다. 설령 경찰에 쫓기는 학우들이 안쓰럽더라도 꼭 ‘학생’이라고 부르는 것, 이것이 객관성 규범이다. 객관성은 한마디로 ‘티 내지 않기’다. 물론 규범이 영구불변인 것은 아니다. 다분히 문화적이고, 상대적이며, 시대를 반영해 변해가기도 한다. 더욱이 저널리즘 규범은 실무적·마케팅적 필요에서 비롯된 것들도 많다. ‘문장을 짧게 써라’가 대표적이다. 객관성 규범..
국회폭력 3제, 그리고 ‘사실’의 재발견 사실의 선택적 재구성이 왜곡을 낳는 방식 여기 두 장면이 있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민주당 당직자들에게 목이 졸리고 팔이 부러진다. 민주당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조원진 한나라당 의원에게 떠밀려 허리를 다친다. 두 사건 모두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벌어졌다. 한나라당이 쟁점법안 강행처리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 앞을 점거하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민주당이 들이닥쳐 벌어진 일이다. 당신은 기자다. 두 사건을 나란히 보여주겠는가. 누가 누구를 폭행해 어떻게 다쳤고, 다른 누가 누구를 폭행해 어떻게 다쳤다…. 그것으로 족한가. 아니다. 이 사건은 별개의 사건도, 단순 폭행사건도 아니다. 두 사건은 하나의 사건이며, 정치적 사건이다. 개별적 가해와 피해보다 선행하는 건 집단 몸싸움이며, 이보다 선행하는 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