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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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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문제 앞에선 진보도 보수도 없는가 공공선 아닌 미래에 대한 쟁탈전…언론 보도 사적 욕망 부추겨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은 공자님 말씀의 전형이다. 이에 견주면 ‘맹모삼천지교’는 강남불패의 신화를 떠받치는 실천교리다. 교육은 미래 자원을 기르는 공공선의 문제이기에 앞서, 미래 자원에 대한 분배의 문제인 것이다. 내 자식이 지금 어떤 교육을 받느냐가 자식의 일생을 좌우한다는, 경험칙에 입각한 이 굳건한 믿음은 교육 정책을 가장 민감한 정치 의제로 만들곤 한다. 단언컨대, 이 사적 이해 앞에서 진보 엘리트와 보수 엘리트의 경계는 흐릿하다. 수능시험 날이면 모든 언론은 정파성의 차이를 넘어서, 시험장 앞에서 기도하는 어머니 사진을 1면에 일제히 전시한다. 국립 서울대 총장 시절 누구보다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고 ‘삼불제 폐지’를 역설했던 이가..
재범 사태와 위안부 누드 사태의 공통점 애국주의 그늘엔 남성의 피해의식…언론의 획일적 보도가 부채질 늙으신 내 어머니는 나를 아들로 낳으신 걸 지금도 무척 자랑스러워하신다. 그러고도 명절 때면 (딸도 많은데) 내게 자주 설거지를 시키신다. 그녀는 그 연세에 플래시 동영상도 잘 만드신다. 그녀가 다소 특이한 경우겠지만, 하나의 인격체도 이처럼 다면적일 수 있다. 언론이 인터넷 여론을 전할 때 주어로 세우는 것은 언제나 ‘네티즌’이다. 그리고, 언론의 시선에서 네티즌은 획일화된 집단이거나, 잘해야 찬-반이 선명하게 갈리는 이분화된 집단일 뿐이다. 내 어머니도 언론이 호명하는 네티즌에 소속될지 의문이다. 그룹 투피엠(2PM)의 재범이 ‘퇴출’됐다. 몇 해 전 미국의 개인 미니홈피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 뒤늦게 ‘폭로’되면서 20대 초반 ‘짐승 아이돌..
후안무치한 공영방송 길들이기 [안영춘/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 mediaus@mediaus.co.kr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렸다. 1심이긴 하지만 상급심에서 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검찰이 징역 5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판결로 검찰의 ‘법 해석’과 ‘사실 확정’이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국가권력에 의해 ‘파렴치범’으로 몰렸던 그는 처벌을 면하는 것을 넘어서 명예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모든 게 바로잡히게 되는 걸까? 인권 변호사인 정정훈 변호사는 법원이 수사기관의 잘못을 바로잡더라도 “칼 맞은 이후 갑옷을 내주는 때늦음이 있다”고 했다. 기막힌 비유다. 정 전 사장은 지금 해고 무효 소송도 벌이고..
제척과 친피가 없는 18세기적 한국 언론 법을 만드는 국회가 불법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리투표와 재투표는 입법부의 자기존재부정이다. 제1야당은 100일 장외투쟁을 선포하고, 국회 밖에서 ‘법치 구현’을 도모하고 있다. 언론이라면 이론적으로는 대서특필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경험칙은 전혀 다른 얘기를 들려준다. 일부 언론의 경우 이 사태를 크게 보도하는 게 오히려 기이하게 비쳤을 것이다. 경험이 일러준 대로, 그들은 거의 침묵하고 있다. 일전에 이 지면을 통해 언론이 액면 그대로 ‘사회의 목탁’이 될 수 없는 존재론적 한계를 말한 적이 있다. 엄격한 객관성이 직업윤리의 핵심을 이룰수록 원칙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법관에게는 ‘제척(除斥)’이라는 규범이 있다. 특정 사건의 당사자나 사건 내용과 특수관계에 있는 법관을 ..
3·1운동 보도와 촛불 보도는 똑같았다 4·19, 6·3, 부마항쟁, 5·18, 6·10… 90년 동안 되풀이된 ‘폭도’ ‘난동꾼’ 몰이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집회·시위와 관련한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짚는 보고서 프로젝트를 맡아 일주일 넘게 씨름을 했다. 내 호기심은 타임머신을 타고 1919년으로 날아갔다. 한반도 최초의 근대적 집회·시위를 당시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지 궁금했다. 이완용은 그해 3월8일자 에 쓴 글 ‘황당한 유언(流言)에 미혹치 말라’에서 조선의 독립 가능성은 없으니 선동에 속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4·19혁명, 6·3사태,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나는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변곡점이 된 주요 집회·시위 사건 보도를 뒤좇아가봤다. 2003년 미선·효순 촛불집회와 2004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
‘사회의 목탁’이 먼저 울려야 할 곳 '사회의 목탁’은 언론에 관한 가장 고전적인 레토릭이다. 사회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는 늘 한발 앞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충분조건과 언론 자신이 문제의 원인이어서는 안 된다는 필요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언론의 문제의식은 대체로 사후약방문이다. 문제가 곪고 곪아야 목탁을 울린다. 그런가 하면 언론 자체가 사회적 문제이기 일쑤다. 신문시장은 이 나라 불공정거래의 온상이다. 동아일보의 젊은 사주와 간부들이 불법 주식거래 혐의를 받고 있다. 특정 기업의 내부정보를 이용해 수십억원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는 의혹이 물증으로도 뒷받침되고 있는 모양이다. 불법 주식거래에 대해 목탁을 두드려야 할 언론이 정작 불법을 저질렀다. 당사자야 그렇다 치고, 다른 언론들은 뒤늦게라도 목탁을 두드려야 할 텐데..
통계의 마법에 걸린 대한민국 통계는 과학의 맏아들이다. 과학적 연구방법에는 언제나 통계가 동행한다. 수가 지시하는 대상은 모호함을 걷어내고 객관의 가치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그 수를 해석하는 인간은 여전히 주관적이다. 통계는 수와 인간의 미끄러짐에서 신화화된다. ‘통계는 완벽하다’는 대중의 믿음은 그 해석조차 완벽하다는 믿음으로 확장되고, 누군가는 그 믿음을 이용해 마술을 부린다. 통계의 마술에는 ‘자의적 해석’과 ‘통계 조작’, 두 가지 기술이 있다. 얼마 전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이른바 언론관련법(신문법·방송법 등)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동안 이 법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일관되게 부정적으로 나왔다. 법안 발의자인 한나라당이 처음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도, 격차는 줄었지만 부정적 반응이 여전히 높았다. 특히 법안 ..
광고주 불매운동의 글로벌 스탠더드 ‘불량 공산품 고발’이 아니라 소비자 ‘정치투쟁’이 본질 경찰을 ‘도둑 잡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부분적으로만 맞다. 경찰은 도둑도 잡지만 강도, 살인범도 잡아야 한다. 범인을 잡는 것보다 범죄 예방이 더 중요하다. 나아가, 국민의 안전 전반에 무한책임을 진다고 보는 게 옳다. 거리에 쓰러져 있는 행인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경찰관이라면 마땅히 비난받고, 징계도 받을 것이다. 쓰러진 행인을 돕는 경찰관더러 “도둑이나 잡지 웬 오지랖이냐”고 하는 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불매운동을 ‘불량 공산품을 고발하는 소비자들의 집단행위’라고 정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불매운동은 본디 소비자들의 ‘정치투쟁’이다. 불매운동의 영어 표현인 ‘보이콧’의 어원부터가 그렇다. 1880년 아일랜드 메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