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표글

교육 문제 앞에선 진보도 보수도 없는가

공공선 아닌 미래에 대한 쟁탈전…언론 보도 사적 욕망 부추겨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은 공자님 말씀의 전형이다. 이에 견주면 ‘맹모삼천지교’는 강남불패의 신화를 떠받치는 실천교리다. 교육은 미래 자원을 기르는 공공선의 문제이기에 앞서, 미래 자원에 대한 분배의 문제인 것이다. 내 자식이 지금 어떤 교육을 받느냐가 자식의 일생을 좌우한다는, 경험칙에 입각한 이 굳건한 믿음은 교육 정책을 가장 민감한 정치 의제로 만들곤 한다. 단언컨대, 이 사적 이해 앞에서 진보 엘리트와 보수 엘리트의 경계는 흐릿하다. 수능시험 날이면 모든 언론은 정파성의 차이를 넘어서, 시험장 앞에서 기도하는 어머니 사진을 1면에 일제히 전시한다.

국립 서울대 총장 시절 누구보다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고 ‘삼불제 폐지’를 역설했던 이가 새 국무총리가 됐다. 그는 귀족학교 논란을 낳은 하나고 이사이기도 하다. ‘교육 평등’을 강조하는 시민 후보가 경기도교육감에 당선되자 경기도는 뜬금없이 조직 내부에 교육국을 신설해 교육감 힘빼기에 나섰다. 교육 자치를 행정 자치가 견제하는 이 기괴한 장면도 교육을 ‘쟁탈’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주류 엘리트의 의식이 투사된 풍경화다. ‘경쟁’을 지상과제로 삼는 대통령이 아무리 서민을 위한 사교육 대책을 강조해도 사교육의 쳇바퀴는 더욱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주간동아 제704호(2009.9.22)

이런 분위기 탓인지 저널리즘도 욕망을 부추기고 나섰다. <주간동아> 최신호는 표지 제목을 ‘선택의 계절, 사립초교 VS 공립초교’로 뽑았다. 부제목 ‘전국 69개 사립초교 입학가이드 수록’은 이 기획이 사립과 공립을 공정한 저울에 올려놓지 않을 것임을 내비친다. 기사 제목들은 더욱 노골적이다. ‘I ♥ 사립’, ‘영어 몰입…학생 행복 Wow!’…. 균형감을 갖춘 것처럼 보이는 제목도 없진 않다. ‘공·사립 실력차는 종이 한 장’, ‘두 마리 토끼 잡는 국립초교’…. 그러나 내용을 보면 ‘사립 같은 국·공립’ 얘기뿐이다. 사립이 준거이고, ‘일부’ 국·공립이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최근 <한겨레>는 1면에 ‘서울 외고 6곳 기초생활 수급자 자녀 12명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본문에서는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며 “특목고 입시에서도 취약 계층 자녀를 배려해야 한다”는 야당 국회의원의 주장을 전했다. 얼핏 교육 불평등을 질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겨레가 제기한 것은 ‘교육 불평등 안의 평등’의 가치다. ‘공교육 내부의 위계’라는 본질적인 불평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이 신문에게도 교육은 미래 자원에 대한 현재의 쟁탈전일 뿐이다. 거꾸로, 실업고에 부자 자녀를 많이 보내면 교육 정의가 실현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556호(2009-09-21)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