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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재범 사태와 위안부 누드 사태의 공통점

애국주의 그늘엔 남성의 피해의식…언론의 획일적 보도가 부채질
  
늙으신 내 어머니는 나를 아들로 낳으신 걸 지금도 무척 자랑스러워하신다. 그러고도 명절 때면 (딸도 많은데) 내게 자주 설거지를 시키신다. 그녀는 그 연세에 플래시 동영상도 잘 만드신다. 그녀가 다소 특이한 경우겠지만, 하나의 인격체도 이처럼 다면적일 수 있다.

언론이 인터넷 여론을 전할 때 주어로 세우는 것은 언제나 ‘네티즌’이다. 그리고, 언론의 시선에서 네티즌은 획일화된 집단이거나, 잘해야 찬-반이 선명하게 갈리는 이분화된 집단일 뿐이다. 내 어머니도 언론이 호명하는 네티즌에 소속될지 의문이다.

그룹 투피엠(2PM)의 재범이 ‘퇴출’됐다. 몇 해 전 미국의 개인 미니홈피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 뒤늦게 ‘폭로’되면서 20대 초반 ‘짐승 아이돌’의 꿈도 ‘한방에 훅’ 갔다. 최초 보도가 탐사 저널리즘과 어떻게 닿는지 모르겠지만, 그 뒤 네티즌 여론 관련 보도는 전형성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언론은 사적 대화 내용을 처음부터 ‘한국 비하 글’로 못박았고, 네티즌이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다가 그에 대한 동정론을 차츰 소개하면서 네티즌 여론을 ‘애국주의’ 대 ‘동정론’으로 프레임화했다. 애국심과 동정심이 서로 배타적으로 설정되는 것은 두 감성이 남성성과 여성성을 대변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국인’으로서 극심한 모욕감을 느꼈다거나, 진정으로 반성하는 건 미국 국적을 버리고 대한민국 군대에 가는 것뿐이라는 주장은 남성성의 전형적 반응이다. 여성들이 열광하는 미국 국적의 아이돌 스타로부터 받은 피해 의식이 ‘애국주의’의 이름으로 벌인 집단적 보복과 처벌이다. (그가 대한민국 ‘땅개’가 되면 그의 압도적 자원도 도태된다.)

‘빼앗긴 순정’-강덕경


몇 해 전 한 여배우가 일본군 위안부 여성 콘셉트의 누드 화보를 찍으려 하자 ‘민족의 상처’를 성애화했다는 분노와 비난이 들끓었다. 이처럼 ‘여성의 희생’이 ‘민족(국가)의 수치’로 전치되는 현상은 일본 남성에 의해 한국 남성의 ‘소유권’이 침해당했다는 피해 의식이 발현된 것이다.

재범 퇴출 사건과 위안부 누드 화보 사건에 대해 언론이 전하는 여론의 프레임은 똑같다. 이 프레임 안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은 비대칭일 수밖에 없다. 남성성은 ‘애국’이라는 거룩한 아우라를 두르고 있기에, 그것에 대한 현실적 대응은 동정과 자비를 구하는 것 말고는 없다.

그러나 실제 여론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위안부 문제에서 한국사회의 성 착취 문제를 환기하는 목소리가 있었듯이, 재범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실체를 지적하는 댓글들도 적지 않다. 문득 궁금하다. 그를 퇴출시킨 건 네티즌인가 언론인가?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555호(2009-09-14)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