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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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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적인, 너무나 위계적인 기후위기 이번 수도권 물난리가 기후위기와 관련 있는지는 아직 축적된 데이터가 적어 판단할 수 없다고 어느 전문가가 언론에다 말했다. 기후위기는 축적된 데이터를 교란하는 양극적이고 돌발적이며, 따라서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없게 된 사태다. 쓸모없어진 데이터가 계속해서 쌓여야 언젠가 쓸모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은 기후위기 여부를 영원히 판단하지 않겠다는 재귀적인 자기암시로 들린다. 울리히 벡이 말한 ‘위험사회’도 통계적으로 위험이 예측 불가능해진 사회라는 점에서 기후위기의 20세기적 언명과 같다. 다만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라는 그의 명제는 적어도 기후위기 앞에서는 참이 아니다. 기후위기는 지독히 위계적이고 계급적이다. 발달장애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감정노동하는 면세점 사업장 노조 간부와 열..
세계 지도자 지지율, 윤 대통령 순위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나라의 최고 권력자라면 국정 지지율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되뇌던 이 나라 대통령실도 20%대 지지율 앞에서 더는 조바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정 지지율은 다음 선거는 물론이고 국정 동력에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친다. 단지 그뿐일까. 주요 22개국 최고 권력자들을 상대로 국정 지지율을 조사해 순위까지 매기는 곳이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모닝 컨설트’다. 2014년에 설립됐지만, 신예답지 않은 면모를 과시한다. 매일 전세계 3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정치적·경제적 태도, 브랜드 인식 등 방대한 분야를 조사한다. 그중 하나가 ‘세계 지도자 국정 지지율’이다. 매일 국가별로 조사한 뒤 일주일치 평균을 내서 매주 발표한다. 표본 수는..
‘바보짓 50년’이 시작됐다 이것은 다만 하나의 가정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5년 전 전기차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봐온 누군가가 장탄식을 내뱉는다. “우리가 5년간 바보 같은 짓 안 하고 내연차 생태계를 더욱 탄탄히 구축했다면 지금은 아마 경쟁자가 없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장삼이사가 아닌 이 나라 최고권력자다. 언론들은 뭐라 했을까. 이것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초현실적인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국내 대표적 원전 업체인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를 방문했다. “우리가 5년간 바보 같은 짓 안 하고 원전 생태계를 더욱 탄탄히 구축했다면 지금은 아마 경쟁자가 없을 것이다.” 몇몇 유력 언론은 그의 말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현대자동차가 전기차로 넘어가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집무실 옆 호텔, ‘드래곤힐 로지’ ‘드래곤힐 호텔’은 서울 용산 미군기지 안에 있는 숙박시설이다. 정식 이름은 ‘드래곤힐 로지’다. 드래곤힐은 ‘용산’(龍山)을 영어로 옮긴 것이며, ‘로지’(Lodge)는 오두막, 산장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두막이나 산장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겸손’하다. 호텔 터만 해도 약 8만4300㎡(2만5500평)에 이른다. 지하 3층, 지상 6층 높이의 고급스러운 주황색 외벽 건물은 객실 394실과 온천·수영장 등을 갖추고 있다. 호텔 웹사이트(www.dragonhilllodge.com)에 들어가보면 시설 하나하나가 특급호텔로서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본관 옆에는 전통 기와를 얹은 고즈넉한 육각정이 있고, 객실에선 남산과 일대 전경이 막힘 없이 한눈에 들어온다. 드래곤힐 호텔이 문을 연 건 1990년이다..
그래서 누구의 ‘자유’인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자유’의 폭포 세례와도 같았다. 양과 질 모두 그랬다. 16분 남짓 동안 35번 입에 올렸고, 대한민국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구원할 독보적 가치로 추어올렸다. 그러나 그의 취임사는 일본 고유의 단시(短詩)인 ‘하이쿠’처럼 언어 밖으로 탈주하려는 텅 빈 기표 같기도 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과 ‘세계 시민 여러분’에게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정확하게 인식해 재발견해야 한다고 주문할 뿐, 왜 자유가 양극화와 사회 갈등을 치유하고 도약과 빠른 성장을 가능케 하는 과학·기술·혁신과 필연적 관계인지 따위에는 지극히 말을 삼갔다. 친절한 설명이 있어도 채워 넣기 어려운 그 광막한 행간은 결국 그가 5번 호명한 ‘여러분’ 몫으로 할당됐다. 하지만 각자 흩어져 따로 노는 저 파편적 개념들 ..
‘비문명’의 역습이 시작됐다 “이 싸움은 어떻게 끝날까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대표 박경석의 휠체어를 미는 활동지원사이자 전장연 활동가인 그가 팔을 뻗어 소주를 따르며 물었다.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답하는 순간, 내 잔이 흘러넘쳤다. 30대 중반 한창나이인 그의 눈 밑으로는 다크서클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끝날까’는 ‘언제 끝날까’이기도 한 눈치였다. 활동가들은 초인적인 의지로 넉달째 과로를 버티고 있다고 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어록에서 한 문장을 빌려 와 격려를 대신한다. “내 지성은 비관주의적이지만 내 의지는 낙관주의적이다.” 각주를 달면 이렇다. ‘이 싸움’을 뭐로 보느냐에 따라 답도 완전히 달라진다. ‘장애인 권리예산’에 대한 대통령 당선자 쪽의 약속을 받아내는 싸움이라면, 지금의 과로에 쉼..
2022년, 몽진과 파천 같은 뜻을 지닌 몽진(蒙塵)과 파천(播遷)은 고귀하면서도 누추한 표현이다. 오직 임금에게만 쓸 수 있지만, 궁을 버리고 몸을 피할 수밖에 없는 딱한 행위를 이른다. 몽진은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뜻이다. 중국 당나라의 시성 두보의 ‘춘망’(春望)에 나온다. 제아무리 임금이라도 피난길에는 먼지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몽진에는 시적 파토스가 서려 있다. ‘임금이 자리를 옮긴다’는 뜻의 파천은 상대적으로 덤덤하다. 하지만 실상은 한층 누추하다. 1896년 2월11일 이른 아침 , 궁녀 교자(가마) 두대가 경복궁 영추문을 빠져나갔다. 한대에 둘씩 ‘합승’하고 있었다. 교자는 1㎞ 남짓 떨어진 러시아공사관 앞에 멈춰섰다. 상궁 옷차림의 네 사람이 내렸다. 하지만 그중 둘은 여장 남자. 고종과 세자였다. 한해 전..
쓸모 있는 어느 대선 이야기 20대 대선 결과가 나온 지도 2주가 지났다. 여느 때처럼 승패의 결과를 토대로 과정을 복기하는 백가쟁명이 만개했다. 세대와 젠더는 누구나 언급한다. 진영과 이념도 못지않다. 거대 양당의 패권주의와 이를 재생산하는 87년 체제는 진보 논객이면 빠뜨리는 법이 없다. 미-중 갈등이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국제 정세의 영향이 언급되는가 하면, ‘탈진실 시대’라는 글로벌한 현상이 후경에 배치되기도 한다. ‘거봐라’ 식의 사후예언적 냉소와 ‘민심은 천심’이라는 게으른 인식론, ‘졌지만 잘 싸웠다’는 정신승리법도 적지 않지만,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하는 탁월한 분석이 넘쳐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쓸모’는 별개의 문제다. 대통령실 이전을 둘러싼 사상 유례없는 ‘당선자 폭주’ 사태가 공론장을 블랙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