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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쓸모 있는 어느 대선 이야기

서울·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노들야학 등 장애인권단체 회원들이 지난 2월22일 낮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승강장에서 이동권 예산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대 대선 결과가 나온 지도 2주가 지났다. 여느 때처럼 승패의 결과를 토대로 과정을 복기하는 백가쟁명이 만개했다. 세대와 젠더는 누구나 언급한다. 진영과 이념도 못지않다. 거대 양당의 패권주의와 이를 재생산하는 87년 체제는 진보 논객이면 빠뜨리는 법이 없다. 미-중 갈등이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국제 정세의 영향이 언급되는가 하면, ‘탈진실 시대’라는 글로벌한 현상이 후경에 배치되기도 한다. ‘거봐라’ 식의 사후예언적 냉소와 ‘민심은 천심’이라는 게으른 인식론, ‘졌지만 잘 싸웠다’는 정신승리법도 적지 않지만,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하는 탁월한 분석이 넘쳐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쓸모’는 별개의 문제다. 대통령실 이전을 둘러싼 사상 유례없는 ‘당선자 폭주’ 사태가 공론장을 블랙홀처럼 집어삼켜 버렸다. 다만 0.7%포인트의 지지율 격차가 100%의 격차로 치환되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선거 과정에서 제기됐던 숱한 의혹도 서리 맞은 푸성귀처럼 시들해지고 만다. 하물며 선거와 민주주의의 담론은 어떻겠는가. 당선자가 발명해내는 이슈에 밀려 세시풍속처럼 세상 밖으로 서둘러 수거된 뒤 다음 선거가 돌아와 찰나의 생명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선거가 끝날 때마다 쏟아져나온 저 많은 지적 산물들이 우리의 선거 문화와 민주주의의 진전에 기여했음을 보여주는 작은 증거라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고한 성채 앞에서 족탈불급, 불가항력이라고 한다면 애써 그 일을 왜 하느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궁색해진다. 사정은 진보적 정치 담론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담론의 완성도를 논외로 한 채 객관적 성적만 보면 기득권 양당보다 현저히 초라하다. 진보 진영은 2004년 총선 이후 선거에서 줄곧 뒷걸음질했다. 어느덧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와 분석이 패배에 대한 집단적인 반복 충동을 강화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가도, 진보 진영의 척박한 처지가 떠올라 고개를 젓게 된다.

 

다수 유권자에게 자연법칙처럼 각인된 승자독식의 양당 체제 외부에서 약자가 외려 핸디캡을 떠안아야 하는 정치가 진보 정치다. 이를 극복하려면 구조적인 이론과 인식은 필수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18대 대선 이틀 뒤, 복직 투쟁 중이던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대변해줄 두 여성 노동자 후보 김순자, 김소연의 합산 득표율은 0.2%. 그러나 그의 비극적 선택에 방아쇠를 당긴 건 두 후보의 득표율이 아니라 문재인 후보가 48.9%의 득표율로 낙선한 결과였을 터이다. 그의 죽음은 여태 기억의 파편으로 남아 있다. 진보적 이야기로 구성할 수 있어야 ‘충분한 진보 정치’다.

 

‘이야기’는 이론과 인식의 혈맥이다. 20대 대선 과정에서 내 기억에 가장 강하게 기입된 이야기는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인권단체들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다. 그들의 석달 투쟁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성공을 잉태했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들은 대선이라는 시공간을 가장 능동적으로 활용한 주체적인 유권자 집단이었다. 언론은 출근길 시민 불편을 전파하기 바빴고, 실제로 그들에게 육두문자를 날리는 이도 적지 않았다. 어느 비장애인 청년은 이 단체 사무실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마침내 이야기로 남은 건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대선 후보 티브이(TV) 토론 말미에 이들의 요구를 대변한 것이었다.

 

장애인권단체들의 이야기는 대선 뒤에도 새로운 판본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의 여론 대응 문건이 폭로되면서다. 문건 내용은 교묘한 여론전을 통해 장애인권단체의 투쟁에 흠집을 내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지만, 정작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비루한 인식을 고백하고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여론전도 우리가 불리’, ‘우리가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야…’. 제아무리 거대한 기관이라 해도 장애인 이동권 증진에 진정성이 없는 한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을 거라고 예감하고 있기라도 한 듯이. 장애인권단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이미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

 

아직은 작고 짧은 이야기다. 그러나 매우 쓸모 있는 이야기다. 또한 작고 짧은 이야기부터 열어가야 크고 긴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다. 대선 이야기도 다르지 않을 터이다.

 

※ <한겨레> ‘아침 햇발’에 실린 글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35825.html

 

[아침햇발] 쓸모 있는 어느 대선 이야기 / 안영춘

안영춘 | 논설위원 20대 대선 결과가 나온 지도 2주가 지났다. 여느 때처럼 승패의 결과를 토대로 과정을 복기하는 백가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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