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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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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약탈’과 ‘죽창가’ ‘약탈’(掠奪)의 ‘약’은 ‘노략질’을 뜻한다. 떼 지어 몰려다니며 사람을 해치거나 재물을 강제로 빼앗는 짓이다. ‘수탈’(收奪)은 어떻게 다를까. 강제성에서는 약탈과 다르지 않으나, 물리적 직접성에서 차이가 난다. 약탈은 완력이 가닿는 만큼만 빼앗을 수 있다. 수탈은 제도의 힘을 빌린 빼앗음이다. 도달 범위는 직접적 물리력이 아닌 제도 설계에 의해 결정되기에 약탈보다 광대하다. 약탈은 눈앞에서 사람을 해치기도 하지만, 수탈은 직접 손에 피 묻힐 일이 없다. 왜구는 약탈했고, 일제는 수탈했다고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둘의 차이를 가려서 쓰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듯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국민 약탈’이라는 생경한 표현을 썼다. 문재인 정부에 왜구 이미지를 덧씌우..
윤석열이 ‘우당 기념관’에 간 까닭은 이준익 감독의 근작 에서 정약전(설경구)은 “내가 바라는 세상은 양반도 상놈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라고 말한다. 실제 기록에 근거한 대사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사회에서 유난히 이해도가 낮은 ‘아나키즘’의 핵심을 잘 짚고 있다. 아우 약용(류승룡)의 목민적 사유와 자연스럽게 대비한 연출은 아나키즘의 결까지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아나키즘(anarchism)은 ‘무정부주의’로 번역된다. 엉터리없는 번역은 아니지만, 납작하고 빈약한 번역이다. 아나키즘이 반대하는 대상은 정부에 국한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국제관계 등 모든 분야와 차원의 억압적 지배에 반대한다. 무엇보다 ‘무정부주의’는 미국 서부영화 속 같은 무법천지를 연상시키는 부정적 효과가 크다. 정약전이 ..
시적 정의와 법치주의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인 마사 누스바움은 전공이 철학과 문학인데, 1994년부터 이 대학 로스쿨에서 고전 문학작품을 읽고 토론하는 강의를 했다. 그 강의에서 영감을 얻어 쓴 책이 (Poetic Justice)라는 명저다. 시카고대에서 미래 법률가들에게 문학 강의를 한 건 누스바움이 처음은 아니다. 1970년대 초부터였다고 하니 유서가 깊다면 깊은데, 우리에게는 몹시 낯설기만 하다. 법대나 로스쿨 강의실이라면 법리에 정통한 석학, 가령 70년대 미국 드라마 에서 입꼬리가 고집스럽게 처진 킹스 필드 교수가 학생들의 논리적 빈틈을 사정없이 파고드는 풍경이 떠오른다. 소포클레스, 플라톤, 세네카, 디킨스를 읽는 누스바움 강의의 풍경은 사뭇 대조적이다. 밤잠 내쫓으며 법전을 외워야 하는 미래 법률가들에겐 부질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