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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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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적, 내일의 적 대통령 선거 얘기를 하지 않는 게 하는 것보다 어려운 시절이 돌아왔다. 자신이 찍은 후보가 당선되는 걸 본 적이 없는 이라면 성가시거나 소외된 시간으로 들어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냉소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육박해오는 시간일 수 있다. 후보와 그 진영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 선거에 졌다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후보는 여태 한 명도 없었다. 다들 국민의 현명한 선택 앞에 고개 숙이고, 서둘러 앞날을 다짐했을 뿐이다. 2012년 12월19일, 대선 결과가 나오기 무섭게 노동자 세 명이 목숨을 끊었다. 모두 장기 투쟁 사업장 소속이었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게 아니라 천 길 벼랑 끝이 발밑에서 무너진 ‘추락사’였다. 애초 그들 앞에 놓인 ‘죽느냐 죽..
‘국민 약탈’과 ‘죽창가’ ‘약탈’(掠奪)의 ‘약’은 ‘노략질’을 뜻한다. 떼 지어 몰려다니며 사람을 해치거나 재물을 강제로 빼앗는 짓이다. ‘수탈’(收奪)은 어떻게 다를까. 강제성에서는 약탈과 다르지 않으나, 물리적 직접성에서 차이가 난다. 약탈은 완력이 가닿는 만큼만 빼앗을 수 있다. 수탈은 제도의 힘을 빌린 빼앗음이다. 도달 범위는 직접적 물리력이 아닌 제도 설계에 의해 결정되기에 약탈보다 광대하다. 약탈은 눈앞에서 사람을 해치기도 하지만, 수탈은 직접 손에 피 묻힐 일이 없다. 왜구는 약탈했고, 일제는 수탈했다고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둘의 차이를 가려서 쓰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듯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국민 약탈’이라는 생경한 표현을 썼다. 문재인 정부에 왜구 이미지를 덧씌우..
윤석열이 ‘우당 기념관’에 간 까닭은 이준익 감독의 근작 에서 정약전(설경구)은 “내가 바라는 세상은 양반도 상놈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라고 말한다. 실제 기록에 근거한 대사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사회에서 유난히 이해도가 낮은 ‘아나키즘’의 핵심을 잘 짚고 있다. 아우 약용(류승룡)의 목민적 사유와 자연스럽게 대비한 연출은 아나키즘의 결까지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아나키즘(anarchism)은 ‘무정부주의’로 번역된다. 엉터리없는 번역은 아니지만, 납작하고 빈약한 번역이다. 아나키즘이 반대하는 대상은 정부에 국한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국제관계 등 모든 분야와 차원의 억압적 지배에 반대한다. 무엇보다 ‘무정부주의’는 미국 서부영화 속 같은 무법천지를 연상시키는 부정적 효과가 크다. 정약전이 ..
어느 리더의 죽음 ‘리더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장을 써놓고 보니, 패전한 사무라이 우두머리가 맞았을 법한 최후의 순간이 일본 막부 시대를 배경으로 연상된다. 그 정조는 단연 비장함이었을 것이다. ‘비장’이라는 낱말에서 비(悲)와 장(壯)은 대등하지만, 죽음마저 자신의 결단임을 내세우는 저 미학적 행위에서만큼은 장엄함이 슬픔을 압도한다. 얼마 전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던 한 젊은이가 세상을 등졌다. 그 또한 리더였다. 이 글 첫 문장을 그대로 옮겨도 사실관계에 어긋남은 없다. 하지만 그의 죽음 어름엔 장엄함의 옅은 그림자 한 조각 어른거리지 않았다. ‘리더’는 네이버가 그에게 부여한 직책이었다. 한국 아이티(IT) 업계를 선도한다는 기업답게 직함 하나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에 관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내..
마녀 감별법과 ‘집게손’의 착시 다음 중 중세부터 근세까지 사용된 유럽의 마녀 감별법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1)손발을 묶어 물에 던진다, (2)바늘로 온몸 구석구석을 찌른다, (3)불로 달군 쇠판 위를 걷게 한다, (4)성경을 소리 내 읽게 한다. 정답은 ‘없다’이다. 넷 다 마녀 감별사들이 ‘애용’한 방법이다. 왜 아니었겠나. 용의자로 지목만 하면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게 설계된 만능 덫이거늘. 마녀 용의자는 물에 가라앉으면 그대로 죽고, 혹 부력으로 떠오르면 마녀로 감별돼 처형됐다. 바늘에 찔리다 고통에 못 이겨 마녀라고 실토해도, 어쩌다 감각이 없는 곳을 찔려 가만있어도 또한 마녀이기에 죽음을 비켜 갈 수 없었다. 쇠판 위에서 죽지 않고 요행히 살아 내려오면 불에도 죽지 않는 마녀가 틀림없으므로 화형됐다. 불로 달군 쇠판 위에..
골든글로브, 그 유서 깊은 타락사 “자위 행위를 벌이는 90명의 볼품없는 인간들.” 배우 게리 올드먼이 2014년 어느 인터뷰에서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에 퍼부은 독설이다. “당신들과 셀카를 찍을 요량으로 주는 금속 조각(트로피).” 2016년 이 상 시상식에서 배우 리키 저베이스가 다른 배우들을 웃기려고 던진 조롱 조의 농담이다. 그는 무려 이 행사의 사회자였다.(, 2021년 2월25일) 아카데미상에 버금간다던 골든글로브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사실은 최근 미국 (NBC) 방송이 내년 시상식을 중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졌다. 는 이 협회의 추문이 쉼 없이 터지자 결국 중계 수익을 포기했다. 협회가 지난 2년 동안 회원들에게 규정에 없는 200만달러(약 22억2천만원)를 나눠 주고, 2..
만국의 벼락거지여, 단결하라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를 처음 접했을 때의 기분을 한 단어로 축약하는 일은 지금도 난감하다. 유쾌함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었고, 부풀려 말하면 양잿물 같은 액체가 얼굴에 훅 끼얹힌 느낌에 가까웠다. 부동산도, 주식도, 암호화폐도 없는 나를 멸칭하는 거라 여겨져서만은 아니었다. 자기비하의 포즈를 취하려고 하필 길에서 힘겹게 연명하는 약자를 비유의 도구로 삼은 것부터 걸렸다. 적어도 같은 계열 신조어의 선배격인 ‘흙수저’는 자신의 처지를 사물에 빗댈 뿐, 더 열악한 동료 시민의 비참을 끌어와 전시하지는 않았다. 무의식적이어서 되레 공공연하게 배제와 차별을 표상했는지 모른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뿐더러, 더 심대한 징후적 문제를 품고 있기도 하다. 벼락거지는 범주를 지우는 진공청소기다. 벼락부자 아니면 모두..
백신이 남아돌아도 품절되는 이유 얼마 전 전직 국가 정상과 노벨상 수상자 175명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앞으로 공개편지를 보냈다. 모든 대륙을 망라하는 이 인사들은 코로나19 백신 특허권을 한시적으로 중단하라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백신 양극화’가 코로나19 못지않은 대재앙이 될 거라는 경고는 보편적인 인류애 위에 서 있다. 다시 그 위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날카로운 경제학 이론이 얹혔다. 스티글리츠는 특허권을 비롯한 지적재산권의 경제적 효과를 비판적으로 고찰해왔다. 지적재산권은 정부가 혁신자에게 독점적 이득을 취할 권리를 일정 기간 보장하는 제도다. ‘반독점’의 일반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누구든 적절한 동기가 있어야 혁신에 뛰어들고, 이에 따른 혜택을 다 함께 누릴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