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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위, 정파성 대신 지혜가 필요하다 [시론] 안영춘 편집장 jona01@mediaus.co.kr 미디어 관련 법안에 대한 국민 여론 수렴과 대안 도출을 위해 구성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미디어위)는 활동시한을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지금까지 한순간도 정상적인 활동을 해보지 못했다. 한국의 미래 미디어 지형은 물론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돌이키기 힘든 결정을 해야 하는 기구의 중간 성적표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하다. 이런 식으로 활동을 마치고 나면 그 폐해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지만, 지금 당장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미디어위 위원 자신들을 비롯한 지식인들이다. 이 분야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만 추렸다는데도 이 지경이니, 이 나라 지식인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다는 오해를 살까 두렵다. 그들이 지식인 사회를 대표하지..
설경구가 여배우였더라면… [미디어스 데스크] 미디어스 댓글에 담긴 ‘아줌마’들의 분노를 보고 에서도 독자 반응이 가장 뜨거운 기사는 역시 연예 관련 기사다. 포털은 절대온도는 훨씬 높지만, 거대한 방문자 규모 덕분에 콘텐츠의 소비 식생이나마 다양한 편이다. 독자의 쏠림 현상은 규모가 ‘겸손’하면서 소재마저 진중한 매체들에서 오히려 심하다. 미디어스도 선정성을 배격하고, 사유적이고 메타적으로 연예 관련 기사를 다루려고 하지만, 결과는 다른 매체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연예 관련 기사는 내용과 상관없이 소재 자체가 이미 선정성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연예계(인)에 대한 쑥덕공론이 한국사회 담론 숲의 지배적 우점종이 된 세태의 한 삽화가 아닌가 싶다. 지난주 미디어스 방문자수를 끌어올린 1등 공신은 단연 설경구와 송윤아였다...
피맛골에 피었다 진 호박꽃 도심 철거지역에 내걸린 이전광고, 그 소리없는 아우성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광고를 흔히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 광고학을 전공하거나 광고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우쭐한 메타포일 것이다. 제작자라면 광고의 ‘표현’이 꽃만큼 탁월하다는 미학적 자부심을 느낄 만도 하다. 하지만 ‘꽃’에는 반드시 관상(觀賞)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광고가 자본주의의 꽃이면 자본주의는 광고의 나무 기둥이거나 뿌리가 된다. 광고는 자본주의를 번식시킨다. 광고는 ‘자본주의의 성기’이기도 하다. 어쨌든, 광고의 표현 전략은 치밀하고, 표현 결과는 탁월하다. ‘설득’과 관련한 모든 지식과 감각을 총동원해 한 장의 사진이나 15~30초짜리 영상, 몇마디의 카..
4대강 토건의 꿈에 깔린 두 바퀴의 꿈 [미디어스 데스크] 자전거에 대한 민망한 찬양 앞에서 안영춘 편집장 jona01@mediaus.co.kr 보릿고개 기민들의 눈에 허연 쌀밥 광주리를 머리에 인 것처럼 비쳐 이름 붙었다는 이팝나무의 꽃이 제 차례를 맞고, 물기 어린 그들 눈에 더 큰 배고픔의 기억으로 어룽댈 찔레꽃은 아직 가지와 이파리 속에서 만개(滿開)의 꿈으로만 차오르는 꼭 이맘 때, 난 그대와 자전거에 몸을 싣고 달린 적이 있다. 몇 해 전이었다. 햇살은 바투 붙은 쉼표 행렬 같은 자전거 바퀴살과 하얀 치아에 분홍빛 잇몸까지 드러낸 그대의 웃음에 튕겨 자잘히 부서지고, 만조를 만난 한강 아랫자락은 효모가 든 밀가루 반죽처럼 아득히 부풀어 비릿한 갯내가 내륙의 물가까지 가득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그 해 봄은 자글자글한 행복으로 충만했..
달이 차오르면 풀리는 대법원의 ‘포괄적 엠바고’ [미디어스 데스크] ‘수동적 저널리즘’과 ‘적극적 앙갚음’의 결합 한나라당이 ‘예상대로’ 참패한 재보궐 선거와, 그 선거 결과를 ‘국민의 심판’으로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도 (역사적으로 모든 집권세력들이 그랬던 것처럼) 6월 미디어관련법 강행 처리 방침과 촛불 집회에 대한 ‘폭력적 법치’ 등을 포함한 자가당착적 헛발질 처방을 내놓은 것과, 14년 만에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불려가는 스펙터클을 헬기 부감 숏으로 감상할 수 있었던 지난 한 주는 한국사회의 지배적 풍속이 역시 ‘진부한 다이내미즘’이라는 걸 일깨운 시간이었다. 또한 지난 한 주는 생활계의 귀한 이슈나 나름 사유(思惟)가 필요한 이슈들에게는 이들 진부하거나 다이내믹한 대형 이슈들의 그림자에 가린 짙은 망각의 시간이었다. 지난주, KBS에 대한 대법..
검찰이 노래를 부르면 조·중·동은 춤을 추네 미네르바의 표현의 자유와 시민권 박탈 앞장선 수구언론들 는 ‘장자연 리스트’ 사태 맞자 이중적 태도로 돌변 ※ 이 글은 2009년 5월1일자 758호에 실린 글입니다. 법이 ‘해석’의 놀음이라면 기사는 ‘야마’(기사의 주제와 문제 설정 정도를 뜻하는 언론계의 일본말 은어)의 놀음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법이 해석 과정에서 타락해버린 실태를 겨냥한 약자들의 절규나 저주다. 언론에서 야마는 팩트(사실)를 비추는 거울이다. 평면거울일 수도 있지만 볼록거울이거나 오목거울일 때도 많다. 불가피할 때도 있지만 의도적일 때도 많다. 정치 검찰은 자의적인 법 해석으로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비뚤어진 언론은 자의적인 야마를 통해 진실을 왜곡한다. 둘 다 틀과 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사실을 꿰어맞추는 것도 닮..
유명환과 유인촌은 경우가 다르다 민주당의 반응은 지나친 게 아니라 번지수가 틀렸다 고등학교 쉬는 시간에 까까머리 사내녀석 둘이 교실 한귀퉁이에서 담임 선생님을 흉본다. “우리 담탱이 미친 놈 아냐?” 그러다 열린 문으로 슬쩍 들어온 선생님한테 들키고 만다. 당신이 그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군사부일체”를 운운하고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하다 “내일까지 부모님 모시고 와”라고 할 텐가, 아니면 속으로 분을 삭이며 못 들은 척할 텐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같으면 곧바로 주먹과 발길을 날렸을 테지만, 폰카와 인터넷 하나면 기록하고 전파하지 못할 것이 없는 요즘 세상에 그럴 수는 없을 테고…. 이런 방법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나지막히 말하는 거다. “담탱이 욕하는 놈 치고 정신 멀쩡한 놈 못 봤다.” 아니면, “한 번 봐준..
조선일보, 경찰,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칸트 [미디어스 데스크] 미디어스 사이트 개편에 부쳐 1. 가 ‘오랜만에’ 탤런트 고 장자연씨 자살 사건을 대서특필했습니다.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다음날인 지난 25일이었습니다. 1면 사이드 기사와 함께 8~9면을 털고 사설까지 동원해 도배를 했습니다. 그 많은 내용 가운데 7할이 조선일보의 “자사 특정 임원”과 관련한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언론들이 ‘○○일보 ○ 사장’이라고 표기해왔던 바로 그 인물 말입니다. 그동안 조선일보는 “자사 특정 임원”이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한 차례도 스트레이트 기사로 보도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자기네가 국회의원 아무개 아무개와 일반시민 아무개 등을 고소했다는 기사나, 자사 임원에 대한 터무니없는 모함인 게 밝혀지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