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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신화'에 바치는 '일제고사' 감상법 일제고사 포기 못하는 대한민국 교육의 진짜 명제들 대한민국에서 학부모가 된다는 건 거대하고 획일적인 집단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걸 뜻한다. 미국에 살든 유럽에 살든, 금융가든 날품팔이든, 유대인이면 누구나 하나의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고 사는 것처럼, 이 나라 학부모들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도농격차를 뛰어넘는 또하나의 ‘디아스포라’다. 유대인이 수천년 동안 차별의 상징이었듯이, 이 나라 학부모들이 갑과 을의 관계에서 대체로 ‘을’인 것도 닮았다면 닮았다. 속된 말로 학부모인 나는,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나라에서 까라면 군말 없이 까야 한다. 내 아이들도 그 말 많고 탈 많은 학업성취도 평가, 일명 일제고사를 봐야 했다. 나 또한 ‘본의 아니게’ 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새로 진학해야 하는 학교, ..
졸업식장에 겨울비는 내리고 [주말, 그리고 말랑한 미디어] 중학교를 졸업하는 신비의 소녀에게 너의 중학교 졸업식이 열린 13일, 전국에 걸쳐 2월의 폭우가 쏟아졌다. 2월의 폭우는 난감하였다. 그 난감함으로 너의 중학교 졸업식은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기록적인 올 겨울가뭄도 덕분에 한풀 수굿해졌다. 고마운 일이다. 2월의 비도, 겨울 청보리 싹처럼 잘 자라고 있는 너도. 비좁은 졸업식장 앞을 우산의 물결이 한가득 부딪치고 쓸렸다. 아빠는 그 북새통 한복판에서, 십수 년 전 네가 태어나던 때를 떠올렸다. 2월의 폭우는, 묵음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네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경찰서에서 먹고 자는 신문사 수습기자였다.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가지 못했다. 한나절이 지나서야 조막만한 네 쭈글탱이 얼굴을 보고, 비로소 아빠라는 존재감..
“비비디 바비디부~” 외우면 다 괜찮아? [광고 비평] 이제 그만 현실을 잊으시라는 SKT의 두번째 주술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지금 대한민국의 광고업계와 미디어업계를 먹여살리는 광고주는 단연 전자와 이동통신 업종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지난해 방송광고 10대 광고주를 집계한 결과를 보면, 삼성전자가 814억원으로 1위에 올랐고, SKT가 789억원으로 바짝 뒤를 쫓았다. LG전자(504억원), KTF(503억원)는 3, 4위를 차지했다. 이 순서대로라면 당신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광고는 삼성전자 광고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2위 SKT나 4위 KTF일 확률이 오히려 높다. 삼성전자나 LG전자 광고가 SKT나 KTF 광고만큼 ‘반사적’으로 떠오르지 않는 건 이들의 광고가 여러 종류의 제품 광..
늙은 기자들을 위한 변명 젊은 기자들이 ‘문제적’ 선임·간부 기자들을 꿰뚫는 방법 기원전 2000년께 이집트 피라미드에 문자를 새겨 세태를 개탄한 이나, 지금 시내버스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무례한 소음에 속으로 분을 삭이는 나 자신이나, 한때는 나이든 사람들의 손가락질이나 지청구의 대상인 ‘젊은것’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지금 바라보는 젊은것들만 역사 속에서 매우 특수한 품성을 지닌 찰나적 세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레토릭’일 뿐이다. “요즘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다”에는 평가적 가치가 부여될 수 없다. 인류역사만큼 유구한 이 레토릭과 함께, 젊은이를 지시대상으로 삼는 또다른 레토릭이 있으니, 바로 “너도 나이 들어봐라”(“나도 한때는…”)다. 이들 레토릭은 모두 젊음을 대상화하고 있지만, 전자는 (젊은 시절에 대한) 망각 속에서..
고려대의 新봉건국가 프로젝트 ‘고교등급제’ 고소영·강부자 신분제를 위한 그들만의 순결한 입시제도 고려대가 고교등급제를 실시했다는 보도는 ‘진부한 새소식’이다. 지난 2004년, 고려대는 2005학년도 수시전형에서 ‘음성적인 노골성’을 드러내다 긴꼬리가 잡힌 ‘전과’가 있다. 그때는 비슷한 죄질의 대학들이 몇 군데 더 있었다. 모두 서울 소재의 내로라하는 사립대학들이었다. 지금이 그때와 다른 건 고려대의 단독범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그래서 물음의 맥락이 변했다는 것 정도다. “왜 고교등급제인가”에서 “왜 고려대인가”로. 왜 고교등급제인가, 그리고 왜 고려대인가? ‘학문’은 ‘양심’과 불가분의 관계다. 서로에 의존해 각자를 완성한다. 양심 없는 학문은 곡학이며, 학문 없는 양심은 오류 가능성에 대한 무방비다. 대학이 ‘진리의 전당’이라는 권위를..
유영철 사건 비사로 돌아본 ‘얼굴공개’ 피의자 인권 논란, 우리 자신의 인권을 되묻는다 2004년 여름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체포됐을 때, 나는 한겨레신문사 사회부 사건팀장을 맡고 있었다. 그가 검거된 직후부터 모든 신문·방송이 그를 ‘연쇄 살인범 유영철’이라고 부를 때, 한겨레는 끝까지 ‘연쇄 살인 피의자 유아무개씨’로 표기했다. 덕분에 독자들로부터 항의도 많이 받았다. “살인마를 비호하는 거냐” “한겨레만 익명 보도해봐야 아무 소용없는데, 혼자 옳은 체하려는 거냐” 따위였다. (당시 1심에서 유영철을 변론했던 변호사는 ‘사무실을 폭파하겠다’는 등 온갖 협박전화에 시달리다 못해 전화번호까지 바꿔야 했다.) 한겨레는 이번 경기 서남부 지역 연쇄살인 사건에서도 얼굴을 공개하기는커녕 저 홀로 익명 보도를 하고 있다. 신문사로서도 고민이 적지 않았을..
이병순·구본홍, 두 사장 인사권의 공통점 제도의 극한에서 휘두른 권력, 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간 선택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권력의 재생산은 회귀성 어류의 번식과도 같다. 거칠 것 없이 원양을 헤엄치다가도 깊은 산속 얕은 고향 계곡으로 돌아가야 세대를 이어갈 수 있는 연어처럼, 제아무리 중앙무대에서 날고뛰던 정치인도 포항이든 어디든 고향 지역구로 돌아가 심판을 받아야 다음 4년 금배지를 내다볼 수 있다. 연어가 원양에서 고향의 기억을 잃고 정력을 탕진하면 대가 끊길 것이고, 정치인이 중앙무대에서 힘자랑만 하다가는 고향에 돌아와도 반겨줄 이가 드물 것이다. 힘은 아껴서 잘 써야 한다. 제도화된 권력도 마찬가지다. 자동차가 최대 마력과 토크로만 주행할 수 없듯이, 권력도 제도가 허용하는 극한까지 힘을 쓰면 역풍..
뭇매 맞는 강기갑은 그대들의 미래다 ‘카르텔 맹종·자기존재 부정’한 자해공갈단의 씁쓸한 우화 ‘폭력배’라는 이름은 통제되지 않는 남성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다. 그래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깡마른 몸에 가해진 인두질은 지극히 키치적으로 다가온다. 김두한이 1966년 국회의사당 안에서 인분을 투척하는 장면 정도는 돼야 ‘연출’도 살고 ‘편집’도 산다. 김두한은 삼성의 사카린 밀수와 정부의 비호에 비분강개해 ‘거사’를 벌임으로써 국회의원에서 제명되는 비운을 맛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회가 대통령에게 예속돼 있던 박정희 1인 독재 치하 시절의 얘기다. 다시 그런 시대가 돌아왔는지를 두고 토론이 벌어지는 현실이 비감하지만,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 뭇매를 가하는 2009년 정초의 풍경은, 협객의 시대는 오래 전 가고 지금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