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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신화'에 바치는 '일제고사' 감상법

일제고사 포기 못하는 대한민국 교육의 진짜 명제들 
 
대한민국에서 학부모가 된다는 건 거대하고 획일적인 집단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걸 뜻한다. 미국에 살든 유럽에 살든, 금융가든 날품팔이든, 유대인이면 누구나 하나의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고 사는 것처럼, 이 나라 학부모들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도농격차를 뛰어넘는 또하나의 ‘디아스포라’다. 유대인이 수천년 동안 차별의 상징이었듯이, 이 나라 학부모들이 갑과 을의 관계에서 대체로 ‘을’인 것도 닮았다면 닮았다. 속된 말로 학부모인 나는,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나라에서 까라면 군말 없이 까야 한다.

내 아이들도 그 말 많고 탈 많은 학업성취도 평가, 일명 일제고사를 봐야 했다. 나 또한 ‘본의 아니게’ 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새로 진학해야 하는 학교, 그리고 내가 사는 도시의 집단적 학업성취도를 알 수밖에 없었다. 시험 성적을 놓고 지역단위의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은 흡사 누가 가스실로 끌려갈 것인가를 놓고 생사가 엇갈렸던 아우슈비츠의 삽화다. 이젠 그 순서가 뒤죽박죽이 됐다고 또 한바탕 난리다. 하기야, 죽는 순서가 뒤바뀌는 일이니 오죽하겠는가. 천당과 지옥을 오간 그분들께 우선 심심한 위로의 말씀부터 드린다.

     

▲ 2월 23일자 한겨레 23면.


 
그런데 말이다. 웃음은 고통을 이겨내는 데 힘이 된다고 했던가. 일제고사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풍경을 한 편의 블랙코미디로 읽어내도 좋을 성싶다. 위로의 말을 듣는 것보다는 블랙코미디를 감상해 보는 게 상처 치유에 더 보탬이 되지 않겠는가. 이명박 정부는 일제고사를 통해 평준화 교육의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내 눈엔 그저 언어도단이다. 하기야 지역과 학생을 전국 단위로 한 줄 세워 공교육을 살리겠다는 것 자체가 말장난 이상이 아니었으니, 결과를 놓고 어떻게 해석하든, 그 결과가 뒤죽박죽이 되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자, 비감한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일제고사로 확인된 진짜 명제들을 즐길 시간이다.

1. 서울은 역시 메트로폴리스다
나 어렸을 적 고향사람들은 서울로 간 출향민이 돌아오면 “얼굴색이 하애진 게 서울물이 좋긴 좋은가 보다”고 한마디씩 덕담을 거들었다. 내 상상 속의 서울은 거대한 도시였지만, 크기에 대한 시골내기의 상상력은 한계가 뚜렷했다. 성인이 되어 서울에 와서 이 도시가 얼마나 흉물스럽게 거대한지 알게 됐고, 서울 안에서도 동네끼리 격차가 크다는 것도 깨달았다. 확실히 사람 자식은 서울로 보내고 볼 일이었다.
하지만 서울살이 만 23년 만에 이런 건 처음 알았다. 서울은 ‘규모’의 서울이 아니었다. 서울은 하나의 도시 안에서 전국 최고와 최저 학력수준을 동시에 갖추고 있을 만큼 극단의 도시였던 것이다. 서울시민들은 학군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가장 먼 사이다. ‘시민’과 ‘노예’로 구성된 고대 로마라 해도 이토록 내부 분단이 가팔랐을까. 이제 속담은 달라져야 한다. 사람의 자식은 ‘강남’으로 보내야 한다. 그냥 ‘서울’로 보냈다간 오히려 인생 조진다.

2. <워낭소리> 대박의 비밀, 일제고사 안에 있다
강남 초등학생들이 전국 최고의 공교육 기반과 그보다 훨씬 압도적인 사교육 기반에도 불구하고 전북 임실 초등학생들보다 학력 성취가 낮다는 결과가 나왔을 때 강남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열패감이 어떠했을지, 공감할 수는 없어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말하자면 이건 상식에 반하는 것이고, 사회적 믿음 체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것이다. 그동안 쏟아부은 돈과 시간이 얼만데….
어라, 그런데 그게 아니다. ‘임실의 기적’이란다. 특히, 조중동은 이 두메산골의 시험 결과를 찬미하기 바빴다. 그건 바로 ‘임실의 기적’이 시스템이나 체제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개천에서 나는 한 마리 용은 콧날 시큰한 일회적 ‘미담’이지, 결코 ‘혁명’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기적’마저 거짓으로 들통났다. ‘미담의 속성’이 본디 그럴 뿐이다. <워낭소리>는 할리우드 스펙터클 무비나 TV 막장 드라마라는 주식과 함께 대통령도 별미로 즐기는 간헐적 문화상품이다. 그래서 기적이다. 

3. 교육부는 인터넷 폐인이다
조리퐁의 개수는 크라운제과도 모른다. 크라운제과가 아무리 ‘과학적’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과학은 조리퐁의 개수를 직접 하나하나 세어 보여주는 인터넷 폐인 앞에선 ‘엿장수 맘’일 뿐이다. 인터넷 폐인은 끼니를 거르거나 밤잠을 설치는 희생 따위는 아랑곳 않는다. 일제고사의 ‘선택권’을 ‘고지’한 교사 따위를 파면/해임하는 것 정도는 희생 축에도 못 낀다.
교육부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일제고사를 치른 끝에 알아낸 결과는 무엇인가? 개천에서 용 날 뻔도 했지만, 콩 심은 데 콩 날 뿐이라는 진리? 교육부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게 학력 성취도라면 과학적인 샘플링 대신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전수조사가 유일한 방법이었을까? 눈이 빠져라 CCTV 수백개를 돌려보고 발이 부르터라 탐문수사를 벌여 강○○을 잡은 것을 ‘과학수사의 개가’라며 “경찰의 입만 바라보는 언론”에게 선전해대는 게 차라리 낫지.

4. 일제고사는 부동산 정책이다
아, 그렇다. 교육부의 일제고사는 관념으로 그려진 지도를 거부하고 전국의 산하를 발로 누비며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그린 지도가 전국 부동산 시세표와 정확히 일치하면 어떤가. 저수지 물을 막고 품는 어로행위가 꼭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도랑도 치고 가재도 잡는다지 않던가. 조선일보에 따르면, 일제고사 성적이 잘 나온 강원도 영월군 봉래중에 서울에서 전학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지 않은가.
서울 강남구는 역시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인근 강동/송파 학부모들은 강남구 진입을 위해 서둘러 부동산 중개소를 찾을 것이고, 중계동/목동 학부모들도 들썩일 것이다. 그보다 훨씬 크고 넓은 ‘게토구’ 주민들은 자신의 무능을 개탄하거나, 사글세도 불사하겠다는 전의를 불태울 것이다. 대한민국 부동산값은 강남이 이끈다. 747도, 주가지수 3000도 물건너 갔지만, 교육을 이용해 부동산 경기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대학 등록금 반값 공약은 어떻게 돼가지? 내 딸은 그거 하나 믿고 인문계 고등학교 갔는데….

5. 일제고사는 도덕성 회복 운동이다
이쯤 되면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잡범양성소다. 처음엔 임실이라더니, 나중엔 전국 곳곳이라고 하고, 이젠 운동선수는 아예 시험에서 뺐단다. 이건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사회윤리의 문제다. 교육부는 진정 우리 사회의 윤리 불감증을 이런 식으로라도 폭로해야 한다고 본 것인가. 하기야, 정부부처 가운데 사회윤리의 보루 노릇을 할 수 있는 곳이 교육부 말고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며 교육부가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면 그건 ‘잔인한 낭만’이다. 일제고사는 전국 초중고생들의 학력 성취도를 파악만 하고 마는 시험이 아니라, 지역과 학생 개인의 전국 석차를 매기고, 그 결과에 따라 온갖 차별을 제도화하기 위한 시험이다. 쪽팔리고 마는 게 아니라, 교사는 승진에 영향을 받고 지역사회는 집값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자식들의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윤리를 논하려는가. 잡범들은 갈수록 지능범이 될 것이다.

6. 진짜 목표는 평준화 폐지, 고교등급제
일제고사 결과를 두고 “평준화 교육의 문제점이 발견됐다”고 했다는 교육부 장관의 말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문학적으로 들린다. 아니 이건 과학에도 문학에도 모두 모욕이고, 그저 뜬금없다. 도대체 전국의 학력성취도 격차가 드러낸 평준화 교육의 문제점은 뭐란 말인가. 평준화 교육 때문에 전국의 평균 학력 수준이 낮다는 말인가, 아니면 기대만큼 전국의 학력 수준이 충분히 평준화되지 못했다는 말인가.
한국의 초중고 학력 성취도가 OECD 국가 가운데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교육부 장관이 모를 리는 없을 테고, 전국의 학력 성취도가 더욱 평준화되어야 한다는 말씀 같은데, 그러려면 평준화 교육을 오히려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학력 성취도가 낮은 지역에 보다 파격적인 공적 지원을 제공하는 일종의 ‘역차별’이 답일 것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거꾸로 가겠단다. 잘 하는 지역엔 인센티브를, 못 하는 지역엔 패널티를. 이건 과학도 문학도 아니고, 그저 잠꼬대다.
교육부 장관의 말에 앞뒤 맥락이 없는 건, 하고 싶은 말을 차마 대놓고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고자 한 평준화 교육의 문제는 그토록 공적 자원과 사적 자원을 쏟아부은 강남에서조차 학력 미달자가 나온 사실이다. 실력 안 되는 아이가 강남의 물을 흐리고 있다는. 그러니 특목고, 국제고, 자사고뿐 아니라 전국의 초중고를 서열화해 물관리를 해야 한다는 얘기며, 그리하여 모든 대학이 푸줏간 돼지 엉덩이에 찍힌 파란 도장 같은 고교등급으로 학생 개인을 평가하게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건 교육부 장관의 말씀이라기보다는 나이트클럽 영업부장 말씀이라고나 할까.

7. 일제고사는 정치시험이다
이번 시험에서 가장 확연히 드러난 것은 ‘임실의 기적’은 허구이고, ‘강남의 신화’는 실체라는 사실이다. 까라면 언제든지 까야 하는 ‘을’들에게 이 사실은 일상의 식민성으로 내면화된다. 강남으로 상징되는 압도적 가치, 억울하면 출세하고, 그대 대에서 안 되면 자식 대에서라도 꼭 그리하라, 물불 가리지 말고.
내가 사는 경기도 어느 지역은 한때 같은 직장 동료들이 10가구도 넘게 살았다. 지금은 단 두 가구뿐이다. 어디로 이사갔는지는, 자식들 교육 문제 때문에 이사갔다는 말로 갈음한다. 나는 그 엑소더스를 386세대의 보수화로 읽었고, 2007년 대선결과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지금도 믿는다. 이번 일제고사도 그 맥락 위에 있다.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