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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압박, 헌법에 나와 있다! '언론 자유'와 '집회 자유'에 관한 단상 ②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5년 전 대통령과의 '검사스런' 대화로 국립국어원의 신조어 자료집을 빛냈던 대한민국 검찰이 다시금 자료집의 금문자에 불광질을 하고 있다. 비난과 성토는 어찌됐든 참아내도 조롱 앞에서는 파르르 떠는 게 권력기관의 속성인데, "나 잡아봐라"하며 대거리하는 누리꾼들 앞에서, 추상같던 사정기관의 위엄은 서릿발 맞고 참새에 쪼이는 허수아비보다 남루하다. 이제 '검사스럽다'의 개념은 "논리 없이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다"에서 "논리 없는 남의 주장을 대신해주고 실컷 욕먹다"로 진화하고 있다. 제품값에 광고비가 포함된다는 건 '상식'이다.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제품값을 따지는 건 보행자 신호가 들어올 때 무리지어 건너..
"MB와 조중동, 공영방송 사수 1등공신" '이명박 정부 언론장악 음모' 토론회…"촛불이 지켜줄 것"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이명박 정권이 조·중·동과 스크럼을 짜고 사정기관을 총동원해 공영방송을 지켜주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주최 '이명박 정부 언론장악 음모를 말한다' 토론회의 참석자 발언을 발랄하게 재구성하면 대강 그렇다. 참석자들은 정권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고, 국면의 전개를 치밀하게 분석하며, 사태의 앞날을 합리적으로 낙관하고 있었다. 토론 주제는 크게 △조·중·동 광고주 압박 운동의 성격 △공영방송 장악 의도에 대한 대응 전략 등 두 가지로 구성됐으며, 별도의 발제 없이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자유롭게 토론을 이어갔다. 토론자들의 발언 내용을 두 주제별로 요약·정리한다. 주제(1)..
방송사 앞 데모? 헌법 21조에 물어봐! ‘언론 자유’와 ‘집회 자유’에 관한 단상 ①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헌법은 평소 그 위상에 걸맞은 관심을 끌지 못한다. 자연계의 공기 같은 존재여서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헌법적 안정성과 관련해 어떤 중대한 사태를 맞을 때 헌법은 시정의 거리로 호출된다. 예를 들어 성문헌법의 축자 해석으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자살골 넣듯 ‘관습 헌법’을 인정할 때, 세간의 관심은 일제히 헌법으로 쏠리게 된다. 제헌 이후 대한민국 헌법 1조가 요즘처럼 큰 관심을 끈 적이 일찍이 없었다고 한다. 현 시국이 가장 강력한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밀접하게 연관됐음을 방증한다. 촛불집회의 의제가 광우병 쇠고기에서 다른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 만큼, 머잖아 관심을 끄는 헌법 조항..
방송사 앞의 정반대 두 목소리 지금 서울 여의도 두 방송사 앞은 연일 집회로 북적댑니다. (너무나 조용한 또 하나의 방송사 구성원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소외를 극복하고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듯합니다^^) 집회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아 굳이 '북적댄다'고 표현해 봤습니다. 여론을 모으고 전파하는 방송사 앞에 여론의 오프라인 경합장이 서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해섭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들 방송사 앞에는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집회가 맞붙고 있습니다. 언론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건 자연스럽다 치더라도, 정반대의 목소리(특히 어느 한쪽은 다른 한쪽을 잡아먹을 듯하고 있죠)가 대치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일 겁니다. '동시에 떴다'기보다는 한쪽이 하는 걸 보고 다른 쪽이 맞불을 놓은 것..
나도 이문열만큼 불편했다 촛불집회를 ‘걱정’하는 두 시선, 정반대의 속내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이틀 전에는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퇴근했다. 날짜가 넘어가기 전에 퇴근하는 것과, 한밤 광화문에서 차를 탈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광역버스는 버스중앙차로를 거침없이 내달렸다. 빈자리도 하나 꿰찼다. 촛불집회가 소강 국면에 들어섰다는 관측은 내 퇴근길 삽화를 통해 객관적 사실처럼 비쳤다. 명징한 상황 변화 앞에 내 몸도 명징하게 반응했다. 아늑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렇게 버스를 타고 칼퇴근을 하고 있었다. 마음은…, 당연히 불편했다. 부채감 탓만은 아니었다. 그 날은 마침, 촛불집회를 마뜩찮게 지켜봐온 이들이 배후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반격의 포문..
진달래와 배아줄기세포의 관계 황우석 교수 연구실로 가는 계단과 복도 바닥을 따라 깔린 진달래 꽃길은 디엔에이 분자구조처럼 가지런했다. 가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갈 사람은, 바로 그 연구실의 주인일 터이다. 그 꽃을 늘어놓은 이들은 자신의 심정처럼 시인 김소월의 심정도 그러했으리라 믿었을지 모르겠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김소월 시가 누구에게 바치는 애가인지 알지 못한다. 국어 교과서 싯구 아래 빨간 펜으로 밑줄 긋고 ‘조국’ ‘민족’이라고 썼던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그건 학력고사용 해석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 해석은 적어도 객관식은 아니다. 시를 현실의 무대 위에 퍼포먼스로 재현한 ‘아이 러브 황우석’ 회원들의 해석이 사지선다의 특정 번호에 가지런이 몰려 있지 않기를, 우리 문학교육의 실패가 그 정도로..
황새울은 ‘법대로’인가?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지금 그곳은 그저 땅 이름이 아니다. 봄이면 모를 내고 가을이면 걷이를 하던 황새울 너른 들은 더는 농사짓는 땅이 아니다. 설령 올해 농작이 이뤄진다 해도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그곳은 이미 한국사회 안팎의 모순이 복합적이고도 다층적으로 한 데 응축돼 충돌하는 정치 현장의 이름이며, 교과서에서 보고 배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새삼 따지고 복기해볼 수 있는 생생한 체험 학습장이기도 하다. 왜 이곳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자신의 논과 밭, 그리고 집에서 내쫓기는 처지가 됐을까? 그것도 불법이 아닌 당당한 법의 이름에 의해서 말이다.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행위가 오히려 불법이 되는 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두고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합리적 설명은 무엇일까? 당신들이..
개혁물신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상상 -5·31 지방선거를 보고 열린우리당의 5·31 지방선거 참패에 언론들이 내놓은 정치공학적인 설명은 대략 이렇다. 뿌리 깊은 지역주의 앞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지지 기반, 이를 만회하기 위한 보수적 정책 노선이 불러온 지지층의 이탈, 오만한 태도와 편가르기식 개혁에 대한 유권자들의 정서적 반감, 형편없는 경제지표…. 말하자면, 열린우리당의 참패는 ‘예정된 결과’였던 셈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모든 정치공학적 해석이 ‘그럴 줄 알았다’ 식인 게 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언론들은 이런 예정된 결과를 주권자인 국민이 열린우리당을 ‘심판’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럴듯한 얘기다. 선거 결과에는 분명 민심이 담긴다. 그렇더라도 ‘선거 결과는 민심의 반영’이라는 명제가 반드시 성립하는 건 아니다. 민심은 복잡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