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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사태와 ‘피지털’ 역습 ‘피지털’(physital)은 오타가 아니다. 오프라인의 특성인 ‘피지컬’(물질성)과 온라인의 기술 기반인 ‘디지털’(비물질성)의 합성어다. 말의 합성은 늘 현실의 합성과 동행한다. 현실의 선두주자는 비즈니스 마케팅 분야다. 식당의 키오스크, 오프라인 매장 상품의 큐아르(QR)코드 등이 온라인의 편의성을 오프라인 공간에 융합한 사례로 언론에 곧잘 소개된다. 그러나 이제는 만사가 피지털이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속성 자체가 피지컬과 디지털의 융합이다. 다만 ‘융합’이라는 표현은 양쪽 사이의 일방적인 힘의 우열과 작동 방향을 감춘다. ‘우아한 형제들’의 배달앱은 온라인이지만, 우아한 알고리즘은 생계를 위해 목숨 내놓고 질주해야 하는 배달 오토바이들을 한가득 오프라인 거리로 내몰았다. 이..
위계적인, 너무나 위계적인 기후위기 이번 수도권 물난리가 기후위기와 관련 있는지는 아직 축적된 데이터가 적어 판단할 수 없다고 어느 전문가가 언론에다 말했다. 기후위기는 축적된 데이터를 교란하는 양극적이고 돌발적이며, 따라서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없게 된 사태다. 쓸모없어진 데이터가 계속해서 쌓여야 언젠가 쓸모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은 기후위기 여부를 영원히 판단하지 않겠다는 재귀적인 자기암시로 들린다. 울리히 벡이 말한 ‘위험사회’도 통계적으로 위험이 예측 불가능해진 사회라는 점에서 기후위기의 20세기적 언명과 같다. 다만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라는 그의 명제는 적어도 기후위기 앞에서는 참이 아니다. 기후위기는 지독히 위계적이고 계급적이다. 발달장애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감정노동하는 면세점 사업장 노조 간부와 열..
세계 지도자 지지율, 윤 대통령 순위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나라의 최고 권력자라면 국정 지지율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되뇌던 이 나라 대통령실도 20%대 지지율 앞에서 더는 조바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정 지지율은 다음 선거는 물론이고 국정 동력에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친다. 단지 그뿐일까. 주요 22개국 최고 권력자들을 상대로 국정 지지율을 조사해 순위까지 매기는 곳이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모닝 컨설트’다. 2014년에 설립됐지만, 신예답지 않은 면모를 과시한다. 매일 전세계 3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정치적·경제적 태도, 브랜드 인식 등 방대한 분야를 조사한다. 그중 하나가 ‘세계 지도자 국정 지지율’이다. 매일 국가별로 조사한 뒤 일주일치 평균을 내서 매주 발표한다. 표본 수는..
우영우 ‘팰린드롬’의 메타포 드라마 에서 우영우는 처음 보는 상대 누구에게나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곧바로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같은 낱말을 나열한다. 이처럼 어느 쪽에서 읽어나가도 배열이 같은 경우를 고릿적부터 서양에서는 ‘팰린드롬’(palindrome)이라 했고, 한자권에서는 ‘회문’(回文)이라고 했다. 사례를 찾아보면 차고 넘친다. 극 중에서 우영우는 단순명사만 제시하는데, 범주는 그보다 훨씬 다양하다. ‘내 아내’와 ‘다들 잠들다’처럼 구나 절, 문장이 될 수도 있다. 소릿값이 같아도 문자에 따라 팰린드롬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스웨덴 혼성그룹 ‘아바’는 팰린드롬이 아니지만, ‘ABBA’는 팰린드롬이다. 음소를 조합해 음절 단위로 표기하는 한글과 달리, 로..
배 짓는 이들은 왜 가두고 또 가두는가 30만톤급 유조선의 갑판 넓이는 축구장 3개(7140㎡×3=2만1420㎡)를 붙여놓은 것과 맞먹는다. 유최안이라는, 성씨 3개를 붙여놓은 듯한 이름의 마흔한살 노동자는 거제에서 그런 배를 짓는 일을 하는데, 건조 중이던 30만톤급 유조선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가로·세로·높이 1m인 철 구조물(1㎥) 안으로 178㎝의 몸을 욱여넣었다. ‘철 구조물’이라는 무덤한 표현은 ‘1㎥’만큼이나 많은 것들을 생략해 버린다. 구조물은 신체 절단 마술상자다. 유최안은 얼굴 따로, 두 팔 따로다. 두 발의 존재는 놓치기 쉽다. 앉은키가 비현실적으로 작아 보이는 것도 그 발 탓이다. 얼굴·팔은 그나마 제자리인데, 발은 있을 데가 아닌 곳에 내던져놓은 듯하다. 그 자리에 발이 있는 것보다 그에게 발이 있다는 사실이 아득히 애..
‘튀르키예’라 불러다오 국내 언론들이 터키를 ‘튀르키예’로 쓰기 시작한 건 6월9일부터다. 유엔이 그달 1일 터키의 개명 신청을 승인하고, 튀르키예가 3일 외교부에 표기 변경을 요구한 뒤다. 외교부 요청으로 국립국어원도 17일 에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튀르키예는 본디 튀르키예였다. ‘터키’는 국제사회에서 쓰여온 영어식 표기다. 튀르키예는 못마땅해했다. 영어로 ‘칠면조’(turkey)가 표기와 발음이 같은데다, ‘실패작’ ‘멍청이’ 같은 속어로도 쓰이는 탓이다. 오래전부터 튀르키예로 불러달라고 요구해왔으나, 이를 본격화한 건 지난해 12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시 이후다. 외신들은 지지율 하락에 직면한 에르도안의 재선 승부수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현지인이 부르는 국명·지명을 ‘엔도님’(endonym)이라 하고, 외..
‘바보짓 50년’이 시작됐다 이것은 다만 하나의 가정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5년 전 전기차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봐온 누군가가 장탄식을 내뱉는다. “우리가 5년간 바보 같은 짓 안 하고 내연차 생태계를 더욱 탄탄히 구축했다면 지금은 아마 경쟁자가 없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장삼이사가 아닌 이 나라 최고권력자다. 언론들은 뭐라 했을까. 이것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초현실적인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2일 국내 대표적 원전 업체인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를 방문했다. “우리가 5년간 바보 같은 짓 안 하고 원전 생태계를 더욱 탄탄히 구축했다면 지금은 아마 경쟁자가 없을 것이다.” 몇몇 유력 언론은 그의 말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현대자동차가 전기차로 넘어가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집무실 옆 호텔, ‘드래곤힐 로지’ ‘드래곤힐 호텔’은 서울 용산 미군기지 안에 있는 숙박시설이다. 정식 이름은 ‘드래곤힐 로지’다. 드래곤힐은 ‘용산’(龍山)을 영어로 옮긴 것이며, ‘로지’(Lodge)는 오두막, 산장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두막이나 산장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겸손’하다. 호텔 터만 해도 약 8만4300㎡(2만5500평)에 이른다. 지하 3층, 지상 6층 높이의 고급스러운 주황색 외벽 건물은 객실 394실과 온천·수영장 등을 갖추고 있다. 호텔 웹사이트(www.dragonhilllodge.com)에 들어가보면 시설 하나하나가 특급호텔로서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본관 옆에는 전통 기와를 얹은 고즈넉한 육각정이 있고, 객실에선 남산과 일대 전경이 막힘 없이 한눈에 들어온다. 드래곤힐 호텔이 문을 연 건 199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