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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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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기억하려는 자와 지우려는 자 [미디어스 데스크] 자살과 애도의 정치·사회학적 잡설 안영춘 편집장 jona01@mediaus.co.kr 고전주의 미학이라면 이럴 땐 비극적이되 장엄하고 숭고한 이미지라야 한다. 지금 한국의 대중매체들이 재현해내는 애도의 퍼포먼스가 꼭 그렇다. 톡톡 튀는 목소리로 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여성 아나운서는 라디오 뉴스에서 느리고 낮은 목소리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신문 호외 편집도 더없이 무겁고 장중했다. 사람들의 보편적 심리상태도 그랬을 터였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숙취로 절여진 내 전두엽을 치고 간 건 드라마 소품처럼 사소한 기억이었다. 경악하고 애달파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부조리해보였다. 내가 기억해낸 건 비교적 최근 누군가로부터 들..
언론이 법원 판결을 ‘활용’하는 풍경들 매개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왜곡한 뒤 두고두고 확대재생산 법원의 판결 결과는 대개 개인에게 귀속되지만, 결국 사회적 규범을 규정하는 구실까지 하게 된다. 이때 법원과 사회를 매개해주는 것은 역시 언론이다. 그만큼 언론의 판결 보도와 해석은 정확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고, 오히려 언론이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큰 논란이 됐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2004년 병무 비리 전문가 김대업씨에게 무고와 명예훼손 등으로 징역 1년10월을 선고했다. 대다수 언론은 김씨를 ‘공작정치의 대가’라고 낙인찍었다. 그 낙인은 2007년 대선에서 “BBK 의혹 역시 공작정치”라는 정치선전에 동원됐다. 그러나 김씨가 ..
검찰이 노래를 부르면 조·중·동은 춤을 추네 미네르바의 표현의 자유와 시민권 박탈 앞장선 수구언론들 는 ‘장자연 리스트’ 사태 맞자 이중적 태도로 돌변 ※ 이 글은 2009년 5월1일자 758호에 실린 글입니다. 법이 ‘해석’의 놀음이라면 기사는 ‘야마’(기사의 주제와 문제 설정 정도를 뜻하는 언론계의 일본말 은어)의 놀음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법이 해석 과정에서 타락해버린 실태를 겨냥한 약자들의 절규나 저주다. 언론에서 야마는 팩트(사실)를 비추는 거울이다. 평면거울일 수도 있지만 볼록거울이거나 오목거울일 때도 많다. 불가피할 때도 있지만 의도적일 때도 많다. 정치 검찰은 자의적인 법 해석으로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비뚤어진 언론은 자의적인 야마를 통해 진실을 왜곡한다. 둘 다 틀과 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사실을 꿰어맞추는 것도 닮..
고려대의 新봉건국가 프로젝트 ‘고교등급제’ 고소영·강부자 신분제를 위한 그들만의 순결한 입시제도 고려대가 고교등급제를 실시했다는 보도는 ‘진부한 새소식’이다. 지난 2004년, 고려대는 2005학년도 수시전형에서 ‘음성적인 노골성’을 드러내다 긴꼬리가 잡힌 ‘전과’가 있다. 그때는 비슷한 죄질의 대학들이 몇 군데 더 있었다. 모두 서울 소재의 내로라하는 사립대학들이었다. 지금이 그때와 다른 건 고려대의 단독범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그래서 물음의 맥락이 변했다는 것 정도다. “왜 고교등급제인가”에서 “왜 고려대인가”로. 왜 고교등급제인가, 그리고 왜 고려대인가? ‘학문’은 ‘양심’과 불가분의 관계다. 서로에 의존해 각자를 완성한다. 양심 없는 학문은 곡학이며, 학문 없는 양심은 오류 가능성에 대한 무방비다. 대학이 ‘진리의 전당’이라는 권위를..
지율, 그 잊혀진 이름을 다시 만났다 [기획] 발견 2008 “내가 만난 2008년의 무엇” ⑨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지율’은 잊혀진 이름이다. 아니, 어느 쪽에서는 애써 잊으려 하고, 그 반대쪽에서는 고약한 관형어를 끌어 붙여 끝없이 상기시키려 하는 이름이다. 날수로 350일이 넘는 다섯 번의 단식을 이어가면서, 그보다 우뚝했던 목소리들은 부채감을 뒤로하고 모두 스러졌고, 그보다 날선 목소리들은 정형화된 기계음을 기세 높게 되풀이하고 있다. 천성산은 집단적 기억에서 멀어졌고, 굴착기 소리는 산자락에서만 더욱 요란할 뿐 세상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는다. 숫자와 화폐 단위로 표기된 공사 지연 손실액만이 유일한 기호로, 때만 되면 포장을 바꿔 다시 전시되는 계절상품처럼, 언론과 정치권 등에서 유통기한 없이 ..
방송 향한 꿈과 해몽으로 가득한 조중동 [비평] 언론노조 파업 보도는 이들의 2009년 ‘토정비결’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단언하건대, 조중동이 파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같은 전쟁을 미화할지언정, 정치적 파업은 생존권과 무관한 파업이라고 비난하고, 생존권 파업은 다시 밥그릇 지키기라고 비난한다. 파업은 이유불문하고 절대 안 된다는 것이 논리적 귀결인 셈이다. 그런 조중동이 파업 눈치를 본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방송사 파업인데도 그렇다. 지하철이나 버스가 파업하면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한 것이듯이, 국민의 눈과 귀를 볼모로 벌이는 파업이라고 비난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파업을 벌인 이튿날 아침, 조중동 지면에서 파업 관련 소식은 마땅한 대접..
‘이라크 영웅’은 한낱 가십거리인가 신발 투척 기자를 ‘거만한 모욕 전문가’로 희화화하는 언론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미국의 이라크 침략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언론사는 어디였을까? ? ? ? ? 아니다. 미국 언론사들은 이렇다 할 재미를 못 봤다. 카타르 민영방송인 와 영국의 권위지 이 최대 수혜 언론사였다. 침략이 시작되자 미국 언론들에서는, 평소 그들이 표방해온 객관주의의 얇은 지각을 뚫고 애국적 저널리즘의 불기둥이 분출했다. 와 은 전쟁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시청자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더 가디언이야 워낙 이름값 높은 영어 매체였으니 그렇다 쳐도, 알자지라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였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손으로 시작한 전쟁을 차마 끝마치고 싶..
‘미네르바’를 다루는 주류언론의 4가지 방식 지지-폄하-비난-호기심 자극 등 제각각…이면엔 ‘두려움’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이 글은 제1519호(2008. 12. 1) ‘미디어 바로보기’에 발표한 글임을 밝힙니다. 신문·방송 같은 주류 언론이 누리꾼들의 의제를 다뤄온 방식은 (그럴싸하게 보면) 메타적이다. ‘개똥녀’ 사건을 상기해보자. 주류 언론 기자가 문제의 지하철에 타고 있었다면 젊은 여성의 무개념을 취재해 보도했을까? 아예 무시했거나, 기껏 가십성 단신으로 다뤘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이버 논쟁에 직접 뛰어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류 언론이 다룬 건 개똥녀를 두고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진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그래서 스포츠 중계하듯 보도했다. 지금 대한민국 최강의 누리꾼은 이론의 여지없이 ‘미네르바’다. 주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