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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된 글

방송 향한 꿈과 해몽으로 가득한 조중동

[비평] 언론노조 파업 보도는 이들의 2009년 ‘토정비결’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단언하건대, 조중동이 파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같은 전쟁을 미화할지언정, 정치적 파업은 생존권과 무관한 파업이라고 비난하고, 생존권 파업은 다시 밥그릇 지키기라고 비난한다. 파업은 이유불문하고 절대 안 된다는 것이 논리적 귀결인 셈이다. 그런 조중동이 파업 눈치를 본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방송사 파업인데도 그렇다. 지하철이나 버스가 파업하면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한 것이듯이, 국민의 눈과 귀를 볼모로 벌이는 파업이라고 비난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파업을 벌인 이튿날 아침, 조중동 지면에서 파업 관련 소식은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사안의 크기로 보나, 평소 그들이 파업을 대했던 태도로 보나, 이건 명백한 ‘축소보도’다. 그러나 이날치 조중동 지면은 ‘눈치를 본 것’이 아니라 ‘눈치작전을 편 것’이다. 무관심한 척 딴청을 부리지만, 고도의 꼼수가 들어간 지면전략이다. 이제 이틀 정도만 이대로 가면 지상파 MBC가 품안에 들어오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언론노조 파업이 적당한 수준에서 ‘관리’되기를 바라는 기대감이 지면 곳곳에서 묻어난다.

▲ 조선일보 27일치 2면 만평과 언론파업 관련 8면 스트레이트 기사

 
조선일보는 사회면인 8면에 가서야 허리 아래쯤에 2단으로 파업 스트레이트 기사를 갖다 붙였다. 방송사 파업 기사를 이처럼 지면 깊숙이 묻어두는 건 저널리즘의 통념을 깬 파격이 아니라 이 사건이 널리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의 표현이다. 다른 데도 아니고 방송사가 파업을 했으니 조선일보가 기사화하지 않는다고 해서 알려지지 않을 턱이 없다. 그래서 보도를 하지 않을 도리는 없지만, 굳이 소식이 알려지는 데 적극적으로 숟가락을 보태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눈 속에 머리를 처박고 ‘진꿩사대MB명’ 하는 모양새가 가소롭다. 

물론 그것만 하고 있을 조선일보는 아니다. 1면에 ‘내년에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겠다는 방송통신위원회 대통령 업무보고 내용을 배치해, 자신의 신년 토정비결을 공개했다. 5면에는 방통위의 업무보고 내용을 표까지 그려가며 7단 통으로 실었다. 이미 한나라당이 며칠 안 남은 올해 안에 개정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에 다 들어 있는 내용을 합의제 행정기구인 방통위가 자신의 소관인양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그걸 새로운 소식인양 1면에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부창부수의 금실이 말 그대로 찰떡궁합이다.

그러고는 뜬금없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고시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내용을 두고 MBC노조가 “파업만 아니면 그냥 콱… 다행인줄 알아!!!”라고 겁박하는 모습을 그린 만평을 2면에 실었다. MBC노조는 무도한 불법집단이고, 그래서 그들의 파업은 부당하며, 그런 MBC를 민영화하는 것이 정의라는 맥락을 완성한 것이다. 이거야 말로 조선일보가 <MBC PD수첩>에 대고 그토록 비난을 퍼부었던 ‘거짓의 몽타주’ 자체다. 다만 ‘그래서 왜 조선일보가 MBC를 접수해야 하는지’까지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 중앙일보 27일치 1면(왼쪽)과 사설(오른쪽)

 
중앙일보는 스트레이트 기사를 1면에 배치했으나, “방송통신은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논리로 봐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아래에 묶었다. 그러고는 ‘근로조건을 놓고 벌이는 파업이 아니므로 불법’이라고 친절히 노동법 해설을 덧붙여, 이번 파업을 정치논리로 벌이는 불법파업으로 못박았다. 물론 근로조건을 놓고 파업을 벌였으면 집단이기주의(밥그릇 지키기)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설에서는 ‘미디어법 반대 파업은 집단이기주의’란다. 이젠 정치적 파업도 집단이기주의라니, 과연 무노조 삼성의 특수관계사답다.

중앙일보는 조선일보보다 좀더 몸이 달아 있다. 그것은 요 며칠 일관되게 나타나는 흐름이기도 하다. 그만큼 방송 진출에 대한 욕망이 강하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중앙일보는 1단짜리 본문에 무려 4단으로 ‘언론노조, 국회의원 휴대전화 번호 공개 파문’이라고 제목을 달아 4면에 배치했다. 국회 매점 가면 몇천원 주고 살 수 있는 국회수첩 안에 거의 다 들어 있는 전화번호를 공개했다고 대경실색이다. 1면 머릿기사는 한수 더 뜬다. 헌재 결정에 대해 ‘광우병 공포는 만들어졌다’는 공포스런 제목을 갖다붙였다. 오버하는 품새가 안쓰럽다.

▲ 동아일보 27일치 1면

 
동아일보의 ‘직설화법’은 이날치 지면에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자신의 의도를 감추고 말고 할 것도 없다. 1면 스트레이트 기사 제목은 ‘여, “방송파업은 밥그릇 지키기”’다. 그 위에 작고 가는 글꼴로 ‘언론노조 총파업’이라는 어깨제목을 달았다. 이런 제목은 ‘언론노조 총파업’이 아니라 여당이 언론노조 총파업을 비난한 것이 주목할 팩트라는 의미를 구성한다. 비유하자면 ‘일가족 참사…구멍가게 외상값은 누가 값나’ 같은 것이다. (그런데 중앙, 동아 모두 정치적 파업을 밥그릇 지키기라고 했으니, ‘배부른 정치파업’ 따위 선동은 더는 안 하려나?)

동아일보는 이 기사 위에 ‘방통위 업무보고 내용’과 ‘이명박 대통령 발언 내용(“방통분야, 정치 아닌 경제논리로”) 기사를 상자 쌓듯이 차곡차곡 올려놓았다. 말하자면, “파업, 그까이꺼”라는 거다. 역시 동아일보의 미덕은 남보다 한발 늦는 진중함이다. 이미 중앙일보가 며칠 전 다 써먹은 논리를 이날 지면에 천연스레 내놓는다. “MBC노조가 파업하는 건 미디어관계법을 개정하면 지상파 독과점을 상실할 거라는 위기감 때문”이란다(8면). 기호학적으로 분석하면 이렇다. “이거 뉴스야, 뉴스. MBC노조가 그렇고 그래서 파업한대. 놀랍지? 놀랍지 않아?”

조중동의 27일치 지면은 저널리즘이 아니라 꿈과 해몽으로 채워졌다. 굳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디데이에 작전을 개시해 ‘언론장악을 위한 7대 악법’을 통과시키면 우리는 이제 꿈과 해몽으로 가득찬 방송뉴스를 드디어 볼 수 있게 되는 걸까? 그리하여 2009년은 한국 방송의 역사를 다시 쓰는 원년이 되는 걸까? 그런데 조중동이 한꺼번에 MBC에 달려들면 어떻게 되지? 사이좋게 나눠가질까? 지들끼리 드잡이하다 피투성이가 되지나 않을까? 그때 가면 서로 밥그릇 지키기 정치 파업이라도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