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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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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해석’…사랑도 싸움도 끝날 수 없다 [크라우드 펀딩] 4대강 기록관 건립 공공예술 프로젝트 ⑤ 이명박 정부의 '국가 개조 프로젝트'였던 4대강 사업, 그리고 7년. 그동안 아픈 눈으로 강과 강 주변의 변화를 지켜보았고, 그 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으며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지율 스님과 예술가들이 '4대강 기록관'을 지으려 합니다. 기록관은 모래강 내성천의 개발을 막기 위해 내성천의 친구들이 한평사기로 마련한 내성천 하류, 낙동강과 인접한 회룡포 강변 대지 위에 세워지게 됩니다. 이 연재는 기록관 짓기에 함께할 여러분을 초대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펀딩 바로가기) 남편 이름으로 온 편지에는 “5일에 집으로 돌아가노라”고 적혀 있었다. 그날 남편은 오지 않았다. 역 앞에서 웬 낯선 남자가 주변을 오래 서성이기는 했으나, 남편은 아니었다...
내성천의 스님과 먹황새 오랜만에 내성천에 다녀왔다. 늦가을 장마에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화창한 봄날이었다 해도 을씨년스럽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지금 내성천은 폐허다. 강도 그렇고, 강마을도 그렇다. 지난봄과도 또 달랐다. 일행이 찾아간 동호마을(경북 영주시 평은면)에서는 중장비들이 동원돼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를 부수고 있었다. 중장비 소음이 벌겋게 깎인 산자락에 튕겨 텅 빈 마을과 들녘으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수몰 예정 지역인 그곳에는 지율 스님과 주민 두 사람이 아직 버티고 있다.내성천은 경북 봉화에서 발원해 영주와 예천 땅을 셀 수 없이 굽이돌아 낙동강 본류로 들어가는 100여㎞의 사행천이다. 나는 여러 해 그 물길을 시시때때로 답사했다. 이태 전만 해도 상류부터 최하류까지 바위 하나 찾아보기 힘든 고운 모래 천지였..
내성천에 들어 산 것들을 만나다 사람들은 무릎 높이까지 바지를 걷어 올렸다. 며칠에 걸친 총강우량은 80~100mm였다고, 사흘 전 기상청은 발표했다. 봄비였다. 남한강 이포보 제방 200m를 쓸어가고, 낙동강 취수장 가물막이를 무너뜨려 56만2천 명이 마실 물을 삼켜버린 비는 이곳에도 똑같이 내렸다. 키가 큰 사람도 키가 작은 사람도, 다만 무릎까지 걷어 올렸다. 무릎은 물의 물리적 깊이가 아니라 사람의 심리적 깊이 같아 보였다. 바로 옆에 수달이 누고 간 똥이 보였다. 큰물이 쓸고 간 뒤에 남긴 하루이틀 사이의 흔적일 터였다. 그 똥이 일러주는 건 이곳 수달의 넉넉한 개체 수와 부지런한 품성이었다. 발원지에서 45km 내려온 내성천 상류 물가 모래밭에서 도강은 시작됐다. 산에는 연록으로 봄단풍이 스며 싱그러웠다. 경북 영주시 평은면..
‘녹색’이 만들어낸 ‘녹색의 사막’ ‘훅’에 쓴 글입니다. 1. 환유와 장자몽 직유나 은유가 실체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철저한 이원론이라면, 환유는 오히려 일원론에 가깝다. 직유와 은유는 이들의 관계에 우와 열의 위상차를 부여하지만, 환유에서 둘은 동격이다. 정신분석학이 한갓 은유의 서사라면 간밤의 생생한 꿈은 내 현실과 아무 관계도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예지몽은 뭐란 말인가. 굳이 욕망과 억압의 관계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꿈과 현실은 투사이거나 조응으로서 환유다. 환유는 비유법을 넘어서, 장자몽처럼 서로 뒤챈다. 얼마 전 나는 그것을 낙동강에서 새삼 깨달았다. 2. 녹색이 녹색을 죽이는 이치 지율 스님은 먼 곳을 보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스님의 손끝이 멀리 뉘엿해지는 햇살 아래 강을 건너갔다. 방천 뒤로 펼쳐진 수풀은 조신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