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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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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천의 스님과 먹황새 오랜만에 내성천에 다녀왔다. 늦가을 장마에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화창한 봄날이었다 해도 을씨년스럽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지금 내성천은 폐허다. 강도 그렇고, 강마을도 그렇다. 지난봄과도 또 달랐다. 일행이 찾아간 동호마을(경북 영주시 평은면)에서는 중장비들이 동원돼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를 부수고 있었다. 중장비 소음이 벌겋게 깎인 산자락에 튕겨 텅 빈 마을과 들녘으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수몰 예정 지역인 그곳에는 지율 스님과 주민 두 사람이 아직 버티고 있다.내성천은 경북 봉화에서 발원해 영주와 예천 땅을 셀 수 없이 굽이돌아 낙동강 본류로 들어가는 100여㎞의 사행천이다. 나는 여러 해 그 물길을 시시때때로 답사했다. 이태 전만 해도 상류부터 최하류까지 바위 하나 찾아보기 힘든 고운 모래 천지였..
지율스님이 ‘정정보도’에 빠진 이유 [미디어스 데스크] ‘수의 악령’을 깨기 위한 또다른 결가부좌 안영춘 편집장 jona01@mediaus.co.kr 신문에서 가장 압축적인 표현양식은 뭘까? 스트레이트 기사나 사설은 저널리즘이 만들어낸 압축적 표현의 결정체다. 특히 스트레이트 기사는 신문이라는 매체의 발달사와 궤를 같이한다. ‘사실’(만)을 가장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재현하기 위한, 좀 더 정확하게는 독자와 사회가 그렇게 믿도록 신화화한 ‘특화된’ 형식이자, 신문 기사의 가장 ‘보편적’ 형식이다. 만평 또한 매우 압축적이다. 손바닥보다 좁은 지면 위에 당일의 핵심의제를 ‘촌철살인’한다. 다만 스트레이트 기사가 다분히 공학적 결과물이라면 만평은 작가의 직관과 창의력에 따라 결과가 판이해지는 창작물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스트레이트 기사나 ..
언론이 법원 판결을 ‘활용’하는 풍경들 매개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왜곡한 뒤 두고두고 확대재생산 법원의 판결 결과는 대개 개인에게 귀속되지만, 결국 사회적 규범을 규정하는 구실까지 하게 된다. 이때 법원과 사회를 매개해주는 것은 역시 언론이다. 그만큼 언론의 판결 보도와 해석은 정확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고, 오히려 언론이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큰 논란이 됐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2004년 병무 비리 전문가 김대업씨에게 무고와 명예훼손 등으로 징역 1년10월을 선고했다. 대다수 언론은 김씨를 ‘공작정치의 대가’라고 낙인찍었다. 그 낙인은 2007년 대선에서 “BBK 의혹 역시 공작정치”라는 정치선전에 동원됐다. 그러나 김씨가 ..
지율, 그 잊혀진 이름을 다시 만났다 [기획] 발견 2008 “내가 만난 2008년의 무엇” ⑨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지율’은 잊혀진 이름이다. 아니, 어느 쪽에서는 애써 잊으려 하고, 그 반대쪽에서는 고약한 관형어를 끌어 붙여 끝없이 상기시키려 하는 이름이다. 날수로 350일이 넘는 다섯 번의 단식을 이어가면서, 그보다 우뚝했던 목소리들은 부채감을 뒤로하고 모두 스러졌고, 그보다 날선 목소리들은 정형화된 기계음을 기세 높게 되풀이하고 있다. 천성산은 집단적 기억에서 멀어졌고, 굴착기 소리는 산자락에서만 더욱 요란할 뿐 세상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는다. 숫자와 화폐 단위로 표기된 공사 지연 손실액만이 유일한 기호로, 때만 되면 포장을 바꿔 다시 전시되는 계절상품처럼, 언론과 정치권 등에서 유통기한 없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