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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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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보다 더 시키먼 조중동K의 속내여 ※ 이 글은 제763호(2009.06.05)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대형 특별기획 표지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저는 그동안 외부에 발표한 글에 대해서는 해당 매체 인터넷이 기사를 공개하고 나면 와 제 블로그에서 ‘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지만, 이번 글은 ‘발행’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6월4일 오후 에 톱기사로 걸려서, 같은 글 하나를 놓고 세 곳에서 ‘노출’하는 것이 민망해졌기 때문입니다. [표지이야기-분노의 기억] 족벌언론과 관제방송 KBS의 ’애도 저널리즘’…타살 공범관계 뒤덮으려 ‘탈정치’ 덧칠하다 당신은 슬프던가? 제호 아래, 5월의 폭우를 맨몸으로 맞고 선 봉하마을 추모객들의 먹물 같은 표정 사진은 당신 심장 안으로 삼투압되던가? 호외판 1면 가득 실린 망자의 얼굴 사진을 보며, 30m..
슬픔 그 이상을 금지하는 ‘애도 저널리즘’ 주류언론이 자살을 다루는 ‘이기적’ 방식들 주류 언론이 자살을 다루는 방식은 대상과 성격에 따라 갈린다. 이름 없는 사람이 지하철에 몸을 던졌을 때는 사건 발생 개요에 이어 한 문장으로 된 자살 동기 분석과 역시 한 문장으로 된 열차 지연 사실을 병렬 배치한다. 자살 동기는 철저히 ‘개인화’된다. 생활고 비관, 성적 비관 같은 사유에 대해 사회적 맥락을 짚는 일은 드물다. ‘사회화’되는 것은 오직 공중의 피해(열차 지연)뿐이다. 택배 노동자 박종태씨 자살 보도도 이 프레임을 넘어서지 않고 있다. 자살자가 유명 연예인일 때는 보도 전체에 상업주의가 관통한다. 조문 오는 동료 연예인들 모습 사진 한 장 한 장이 뉴스가 된다. 이른바 ‘조문 저널리즘’이다. 자살 동기와 관련해서도 온갖 추론이 쏟아지고, 이들 ..
애마부인과 표현의 자유 방송 저널리즘의 연성화, 탈정치화와 정치적 투항의 경계 박찬욱 감독의 가 칸 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다. 예전 같으면 언론은 본선 진출만으로도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이젠 그랑프리 정도는 먹어야 아드레날린을 분출한다. 그만큼 한국영화의 위상이 높아졌다. 90년대 이후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역설적으로 80년대 계열의 ‘방화’가 밑절미가 됐다. 애마부인 연작은 성애에 대한 집착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저항을 포기한 영화계의 음울한 엑소더스였다. 표현에 대한 욕망은 지각 아래에서 에너지로 다져졌고, 때를 만나 지각 위로 솟아 폭발하듯 꽃을 피웠다. TV 시사 다큐멘터리가 연성화한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가장 지배적인 현상은 탈정치화다.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잇단 스포츠 스타 성공기가 대표적이다..
‘야마’의 맛 ‘야마’가 ‘팩트’보다 선행하는 한국 저널리즘의 풍경 일본말 ‘야마’는 우리말 ‘뫼’(山)와 같다. 일본 영화 을 보면 “야마요 야마요~”를 되풀이하는 이른바 ‘야마요 송’이 나오는데,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율동이 모두 산 모양을 본뜬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 ‘야마’가 몇가지 은어로 자리잡았다. ‘야마 돈다’는 달리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고, 철공소에서는 나사의 톱니 마루 부분을 ‘야마’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야마’를 언론계만큼 자주, 또 ‘심오’하게 쓰는 집단도 없는 것 같다. 기자들끼리 업무와 관련해 가장 자주 쓰는 표현이 “팩트가 무엇이냐”와 “야마가 무엇이냐”다. 여기서 말하는 ‘야마’는 ‘기사의 주제와 문제 설정’ 쯤에 해당하는데, 이렇게 정색하고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멋쩍을 만..
검찰이 노래를 부르면 조·중·동은 춤을 추네 미네르바의 표현의 자유와 시민권 박탈 앞장선 수구언론들 는 ‘장자연 리스트’ 사태 맞자 이중적 태도로 돌변 ※ 이 글은 2009년 5월1일자 758호에 실린 글입니다. 법이 ‘해석’의 놀음이라면 기사는 ‘야마’(기사의 주제와 문제 설정 정도를 뜻하는 언론계의 일본말 은어)의 놀음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법이 해석 과정에서 타락해버린 실태를 겨냥한 약자들의 절규나 저주다. 언론에서 야마는 팩트(사실)를 비추는 거울이다. 평면거울일 수도 있지만 볼록거울이거나 오목거울일 때도 많다. 불가피할 때도 있지만 의도적일 때도 많다. 정치 검찰은 자의적인 법 해석으로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비뚤어진 언론은 자의적인 야마를 통해 진실을 왜곡한다. 둘 다 틀과 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사실을 꿰어맞추는 것도 닮..
미담 기사를 의심하라 조선일보의 관점 뒤집기, 무지하거나 뻔뻔하거나… 언론의 관점이 항상 일관하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하나의 언론이 특정한 사안은 물론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도 관점을 뒤집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물론 관점의 변경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관점이 잘못됐으면 바로잡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심각한 건, 언론이 무지하거나 아니면 뻔뻔한 탓에 관점이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0월11일치 스포츠 면에는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삼성-롯데 2차전에서 일부 롯데팬들이 삼성 투수 눈을 향해 레이저 포인터를 쏘며 투구를 방해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관중들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었다. ‘대다수 롯데 팬들은 레이저 발사 용의자를 향해 “집에 가”를 외치며 성숙한 관전 문화를 보였다.’ 이보다 몇..
PD수첩은 ‘언어 전쟁’이다 제 블로그에 들어와 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군요. 공과 사의 균형이 무너지고, 하루하루 정신없는 나날입니다. 무엇보다 글 쓸 시간이, 그럴 만한 마음의 평정을 찾을 겨를이 없습니다. 얼마 전 한 영화잡지에 발표했던 글을 올립니다. 제가 지은 집에 스스로 찾아올 기회가 많아지길, 그리하여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여유를 되찾기를 바라고, 벼릅니다. 휴~ PD수첩은 ‘언어 전쟁’이다 15년 동안 이름 석 자 뒤에 ‘기자’라는 호칭을 달고 살면서, 난 언론인이 1인분의 용량을 넘어서는 직업인이라고 생각해왔다. 나를 포함해 적지 않은 언론인들이 자신의 능력과 인격의 용량보다 큰 ‘사역’을 감당하고 산다. 비슷한 부류의 직업인으로 종교인, 교육자 등을 꼽을 만한데, 지식노동을 한다는 것 말고도 이들에겐 ..
난 'PD수첩'에 절대 사과 받지 않겠다! 방통심의위 '사과방송' 결정은 시청자에 대한 폭력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17일 아침 신문을 펼쳐들고, 난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9인 가운데 3인은 "이거 뭐 하는 짓이냐"며 항의 퇴장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임명한 위원 6인만 덩그마니 남아 MBC PD수첩에 대해 "시청자에게 사과하라"는 결정을 내렸다는, 전날 심야의 소식이 실려 있었다. 15일 밤, 그리고 16일 아침, TV와 인터넷으로 PD수첩 'PD수첩 진실을 왜곡했는가?' 편을 두 번에 걸쳐 꼼꼼히 뜯어본 나로서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도 PD수첩 보고 감탄했다 고백하건대, 난 그 프로그램을 보고 감탄했다. KBS 손관수 기자가 "방송쟁이 입장에서 PD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