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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부러진 화살 혹은 복합골절

<부러진 화살>은 제2의 <도가니>인가? 두 영화가 각각 지난해와 올해를 대표하는 실화극 장르의 작품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회적 반향에서도 <부러진 화살>은 <도가니> 못지않다. 그러나 ‘도가니 현상’과 ‘부러진 화살 현상’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가지런하고 후자는 복잡하다. <도가니>가 단일한 정서를 용융해낸 분노의 도가니였다면 <부러진 화살>은 활을 쏘는 사대(射臺)이자 동시에 도처에서 난사되는 화살의 표적이기도 하다.

그런 현상에는 <부러진 화살>이 겨냥한 과녁이 하필 사법부였다는 것도 한몫 했을지 모른다. 오늘날 사법부는 입법부가 정당성을 얻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대의정치의 최종 심급 반열에까지 올랐다. 그런 지엄한 권력이 화살을 맞고만 있을 리는 만무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로라하는 이름의 양식있는 재야 법조인들도 다양한 단서를 달아 이 영화의 메시지를 온전히 승인하지 않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동업자 의식이 아니다.

그들이 주로 문제 삼는 건 사실관계와 법리다. 사실관계의 경우, 선택된 사실이 왜곡되었다기보다 선택(및 배제) 자체의 타당성과 공정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재판과정을 밀착 취재했던 동료의 말을 들어봐도, 재판부는 완벽하다 할 수는 없겠지만 피고에게 여느 재판보다 소명 기회를 충분히 주려고 했다고 한다. 법리의 경우, 실정법과 정서법이 불일치하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다. 법은 애초 평면거울이 아니라 볼록(혹은 오목)거울이기 십상이다.

<도가니>가 그랬듯, <부러진 화살>도 메시지가 겨냥하는 과녁과는 별개로, 현상적으로 주류 저널리즘을 겨냥하고 있다. 주류 저널리즘이 외면했거나 소홀히 했던, 심지어 열을 올리고도 제대로 관심을 환기시키지 못했던 사안을 이들 극영화는 강하게 의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관계를 넘어서 사법부에 대한 보편적 불신이 이 영화 성공의 동력이었다면, 언론에 대한 보편적 불신도 영화의 성공에 크든 작든 한 숟가락 보탰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언론인으로서 반성을 하면서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느낀다. <부러진 화살>이 다룬 현실은 영화보다 맥락적으로 훨씬 복잡하다. 사태는 애초 발단이 됐던 강단 권력에서 시작해 사법 권력, 관계인들의 개인적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다중적 모순을 안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그 모순들이 법정을 중심으로 선-악 이분법으로 오롯이 수렴됐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주류 저널리즘이 늘 애호해온 재현 방법이다. 경향적으로 실화극과 저널리즘이 약자의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 목적이 완수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이분법을 넘어서 부조리의 구조까지 재현하기를 기대하는 건 과욕이었을까.

※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