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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역술과 무속의 저널리즘

올 한 해 총선과 대선이 잇따라 치러진다. 20년 만의 일이다. 지금쯤이면 정치인 못지않게 유명 역술인들도 바빠질 것이다. 얼마 전 타계한 박태준 전 총리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스케줄이 넘치는 역술인을 만나려고 헬기까지 동원한 일화로 유명하다. 그러나 남의 운명을 점치는 역술인의 운명은 얄궂다. 대선 결과를 맞힌 역술인은 일약 스타덤에 오르지만, 연타석 홈런을 치는 역술인은 드물고, 유명세는 5년 뒤 헛스윙으로 꺾이기 일쑤였다 

대선보다 더 큰 한 방이 있으니, 북한 지도자의 사망 시기를 점치는 것이다. 5년마다 돌아오는 대선에 견주면 이건 만루 홈런인 셈이다. 이번에도 족집게는 등장했다. 스타를 만드는 건 역시 언론이었다. 이 삼엄한 정국에도 일부 언론은 그 용한 역술인을 인터뷰해 대서특필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올해 정치계 판도와 북한 정세까지 전망했다. 꼭 나무랄 일은 아니다. 월드컵 경기 결과를 맞히는 문어도 세계적 권위지의 해외 토픽에 오르지 않던가.

역술인들의 업소에는 철학관이라는 간판이 붙는다. 주술을 하는 무속인과 달리 자신들은 통계에 입각한 학문을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그 주장의 신뢰도와 타당성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도, 역술과 주술의 소구점은 분명 다르다. 역술은 불확실성을 관리하려는 관측 행위에 가깝지만, 주술은 염원이나 저주 같은 강력한 욕망의 실천 행위이다. 언론이 역술을 인용한다면 가십이지만, 주술을 중계한다면 매우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게 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직후 포털 대문화면에 걸린 기사 제목들을 훑어보았다. ‘뚱뚱하고 육식 즐기는 김정은도 위험?’(서울경제), ‘‘김정일 사망한국경제 무너지나’(아시아경제), ‘김정일 사라진 북다음은 전쟁? 획기적 변화?’(뉴시스). 당장 격변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공포감을 주는 제목들이다. 제목을 클릭해 들어가 본다. 언론들의 포털 제목 낚시질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하나같이 허탈감을 주는 내용들뿐이다.

이들 제목은 공포에 소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선정성이 아닌 섬뜩한 가십이다. 적개심을 투사한 교묘한 주술의 혐의도 짙다. 그러나 정작 펜대 든 이 무속인들이 기대하는 건 불안감과 적개심뿐 아니라 이를 통해 비싼 제상을 파는 것이다. 안보 문제까지 상업적 목적에 끌어대는 것은 그들이 그토록 도끼눈을 치켜뜨며 비난해온 안보 불감증을 몸소 재현한 것이다. 그들의 주술적 행태는 진화를 거듭해 이제 빙의 단계로 접어든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만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이 뭐라 떠들든, 이제 국민은 초코파이를 사재기하는 대신 주가 그래프를 들여다본다. 코스피지수가 곧 국가안보가 될 줄을, 그들이라고 예측했을까. 안보 상업주의자들의 얄궂은 운명이다.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