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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강용석 의원이 풍자한 것들

강용석 의원(무소속)이 개그맨 최효종씨를 모욕죄로 고소한 것을 두고 KBS가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나선 것은 강 의원의 다중 포석에 견줘 무척 단순한 반응이다. 검찰에서 최씨를 부르면 안 갈 수는 없을 테지만, 미리 법리를 다툴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강 의원이 최씨를 고소한 행위가 온전히 법리적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은 나중의 문제다.

강 의원은 최씨를 고소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내려진 여성 아나운서 관련 성희롱 1, 2심 유죄 판결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최씨의 개그를 자신의 발언과 동일시했다. 1차 목표는 최씨에 대한 공격보다는 ‘나도 개그를 했을 뿐’이라는 자기변론으로 보였다. 여기에 대고 KBS처럼 ‘밥 먹으면 배부르다’ 수준의 지당한 말씀을 하면 말한 사람만 실없게 된다.

물론 강 의원의 전제는 자가당착적 오류다. 강 의원이 여성 아나운서 집단을 성적으로 비하한 것과 최씨가 국회의원 집단을 비꼰 것은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여성 아나운서 집단이 한국 사회에서 약자에 속하는지 여부는 고려 요소 밖이다. 버락 오바마를 미국 대통령으로서 비꼬는 것과 흑인으로서 비하하는 것이 같을 수 없는 이치다.

강 의원은 최씨를 실제 고소함으로써, 정작 스스로를 조롱했다. 지당한 클로징 코멘트만 하던 뉴스 앵커들은 촌철살인으로 그를 비웃고, 서울대 법대 교수는 동문인 그를 사문난적으로 낙인찍었다. 그러나 다들 그의 일면만 본 건 아닐까. 앙리 베르그송은 “희극배우는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자신을 징벌의 대상으로 변형시켜야 하는 ‘자살특공대’적 운명을 갖고 있다”고 했다. 강 의원이야 말로 진정한 개그맨의 ‘운명’을 타고난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의 공격 대상은 누구였고, 공격 결과는 어땠을까. 겉으로 보기에 그의 표적은 최효종과 사법부였다. 그런데 그들은 말짱하고 강 의원 자신만 까맣게 그을리고 말았다. 결코 성공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진짜 공격대상은 따로 있었다고 생각해보자. 그가 만들어낸 웃음에 카타르시스가 없지 않다면 설득력은 충분하다.

이를테면 봉숭아학당 수준의 심의로 <무한도전> 제작진의 징계를 일삼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강 의원은 일종의 아바타다. 이들은 그동안 대중에게 존재감이 별로 없었지만, 강 의원이 선사한 큰 웃음 덕에 덩달아 따가운 관심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소셜테이너’들을 가차 없이 쫓아내던 방송사들은 어떤가. KBS가 법적 대응 운운하는 게 빈말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강 의원이야 말로 정말 탁월한 탈놀이 광대인지도 모른다. 양반탈을 쓰고 양반을 조롱하는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춤꾼 말이다.

※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