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6/04

(2)
“처사님, 글로 성불하세요” 봄날, 법랍 17년 비구니 누님과 나눈 공부·수행 이야기 먼발치로 봐도 낯빛이 환하다. 하기야, 화창한 4월 초 오후 2시 만개한 벚꽃 아래 아닌가. 아니면 몇 해 만에 만나는 혈육이 반가워서일까.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장삼 자락 팔랑이며 작고 다부진 몸피의 비구니가 재게 다가온다. 파안대소로 드러난 큰 앞니에 봄 햇살이 튕겨 자잘하게 부서진다. 한발치 떨어져서 서로 합장하는데, 산보 나온 이들이 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순간 표정에 변화를 일으킨다. 그럴 수밖에. 그녀가 대학생이고 내가 고3일 때, 제주도 여행을 떠난 부모 대신 학부모 상담을 하러 학교 언덕길을 오르는 그녀를 교실 창가의 급우가 발견하고는 이렇게 외쳤다. “야, 저기 여자 안영춘이다!” 며칠 전 전화가 왔다. “처사님. 속가로 만행..
이름 부르기 얼마 전 딸들에게 “앞으로 나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작은딸은 까불대며 “네, 아부지!”라고 받고, 큰딸은 “아빠,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다.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다. 어느 공부모임에서 토론이 격론을 넘어 거의 언어폭력 직전까지 갔는데, 내가 바로 그 사건의 가해자였다. 맥락을 살피면 변명할 여지가 없지 않지만, 나이주의의 혐의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시쳇말로 꼰대질을 한 셈이다. “이제부터 이름으로만 불러다오.” 재미있겠다 싶었는지, 딸들은 선뜻 수락했다. 지금도 불쑥 “아빠”라고 부를 때가 많지만, 곧바로 ‘실수’를 깨닫고는 바로잡는다. “아차, 영춘!”두 딸을 오래전부터 “신소1”(큰딸) “신소2”(작은딸)라고 불러왔다. 둘밖에 안 되는 그녀들 이름을 무시로 바꿔 부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