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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발표글

다낭 여행객에게 전하는 조금 불편한 이야기

2017년12월28일 베트남 호이안시 공동묘지 안 ‘껌안 학살’ 희생자 집단묘지. 한국군은 1968년 1월30일 호이안시 껌안구 안떤동 모래언덕에 마을 주민 11명을 세워놓고 총을 난사해 학살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유력한 개최지 후보로 떠오른 베트남 다낭은 요즘 한국사람들에게도 최고의 ‘핫플레이스’다. 올 상반기 전자상거래업체 항공권 예약과 여행사 관광상품 예약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인구 대비 출국률 세계 1위(연간 50%대)인 한국은 다낭의 외국인 여행객 순위에서도 당당히 1위에 올랐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다낭을 찬미하는 기사와 블로그 포스트가 쏟아진다. 몇개만 골라 읽어도 반쯤은 여행한 기분이 들 정도다. 그러나 여행 기사나 블로그에선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알고 나면 여행하는 마음이 결코 편치 않을 얘기가 있다.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얽힌 현대사의 붉은 한 조각이다.

다낭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의 주요 사령부와 기지가 밀집한 곳이었다. 수려한 풍광을 끼고 미군 휴양지도 들어서 있었다. 한국군의 자리는 거기 없었다. 대신 한국군은 1967년 12월 다낭 외곽 방어 임무를 맡아, 남쪽으로 20km 떨어진 호이안에 주둔했다. 다낭과의 악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1968년 초부터 호이안 주변 일대가 피로 물들어갔다.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구정 대공세’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군이 민간인 학살에 나선 것이다. 한베평화재단이라는 단체가 베트남군 보고서 등 각종 자료와 주민 증언을 종합해보니, 이 지역에서만 최소 646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참전 단체들은 민간인 학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젖먹이도, 젖을 물린 엄마도 (죽어 마땅한) 베트콩이었을 뿐이다. 2016년엔 피해 유가족을 초청한 증언 행사를 물리력으로 무산시키기도 했다. 가해국을 향한 피해자들의 절규는 ‘반공의 성전’이라는 주술에 틀어막혔다.

자유한국당이 북-미 정상회담 날짜가 자기네 전당대회와 겹친다는 이유로 ‘신북풍’이라고 비난했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부터 뒷목 잡을 이 블랙 코미디는, 발화자의 졸렬한 평화 감수성을 외설적으로 폭로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 실현이 마뜩잖으니 날짜만 보일 뿐 장소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듣는 쪽도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언급조차 한 바 없다. 다낭이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로 확정된다면 우리의 양심에는 과거와 미래가 중첩된 평화의 시험대가 열리는 셈이다.


※ <한겨레> ‘유레카’용으로 썼다가, 게재 전에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가 하노이로 정해지는 바람에 지면에 싣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