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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발표글

김진영 선생님 추도사

  • 지난 8월21일 철학자 김진영 선생님의 추도식에서 읽은 추도사입니다.
  • 여기 계시는 많은 분들에 비하면 저는 선생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만남의 시간이 길지 않았습니다.
    2014년 봄에 처음 뵀으니 만 4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그렇다고 자주 뵌 것도 아니었습니다.
    기억을 긁어모아 봐도 10차례가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추도의 말씀까지 하게 됐습니다.
    외람된 노릇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길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드리는 말씀은 제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 무람없이 서게 된 이유를 밝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선생님을 처음 뵌 건 공교롭게도 죽음에 관해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한두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무려 삼백이 넘는 생명의 희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히고, 격분과 우울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했던 세월호 참사가 나고 닷새 뒤였습니다.
    선생님의 첫 말씀은 냉철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냉철함이란 죽은 자에 대한 산 자의 윤리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무구한 아이들의 희생을 다만 슬퍼하는 것은 그들을 상징화하는 것, 타자화하는 것일 뿐이다, 정작 산 자들이 자기 마음이 편차고 희생자를 손쉽게 떠나보내려는 유사 애도, 사이비 애도에 불과하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윤리적이냐,
    산 자들의 애도는 죽은 자들에게 정당한 발언권을 주고 그 희생에 대해 정의를 복원시키려는, 희생자들과의 정치적 관계 맺기,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이어야 한다, 그것은 죽임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 그 시스템을 뒤집으려는 혁명적 의지에 다름 아니다
    저는 그 말씀에 깊이 감응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동시대인의 자세와 애도의 저널리즘에 대해 사유를 비로소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 그러고는 두 달 뒤에 저는 선생님께 글을 한 편 청했습니다.
    선생님은 흔쾌히 수락하셨으나, 글을 보내실 때는 기진해 계셨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게 원고지 빈 칸을 채워갔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단서로는 첫째, 마감을 이틀이나 넘겨서 글을 보내주신 바람에 제작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둘째, 선생님 스스로 죽은 자들과 얼마나 끈질기게 대화를 시도했는지가 행간에 차고 넘쳤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산 자의 편지와 죽은 자의 편지라는 두 편의 서간문 형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희생된 학생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 아들이 답장을 보냅니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편지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연결되고, 요청과 응대로 서로를 품어 하나 되는 것,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정치적 연대로서의 애도를 서정적으로 탁월하게 재현한 글이었습니다.
    읽는 이의 마음을 정화하고 저절로 주먹을 부르쥐게 하는 힘이 흐르는 글이었습니다. (
    http://na-dle.hani.co.kr/arti/issue/785.html)
  • 그 뒤로 선생님과의 관계는 덤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로써 만나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저의 어느 구석이 마음에 드셨는지 선생님께서는 문득 연락을 주시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스스럼없이 선술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어디서 소식을 들으셨는지, 어느 땐가는 제가 사회를 보는 토론회에 불쑥 나타나셔서 청년들과 뒤풀이 자리까지 함께하시기도 했습니다.
    술잔 앞에서 선생님은 제 얘기를 주로 경청하시는 편이셨습니다.
    제 얘기에 자주 유쾌하게 웃으셨고, 자리 파할 무렵엔 제 거친 얘기를 사려 깊게 가지런히 정리해주시곤 했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훌륭한 스승이자, 적지 않은 나이차를 넘어서는 좋은 벗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선생님이 병환을 얻으시고 나서는 한 번도 뵙지 못했습니다.
    연락은 가끔 닿았습니다.
    선생님은 건강을 회복하거든 당신께서 먼저 술자리를 청하겠노라 하셨습니다.
    지난 82일엔 이렇게 시작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더운데 건강은 어떠신지요. 두 딸들과 지내는 모습을 에스엔에스로 보면서 늘 흐뭇하고 놀라움의 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여름도 그렇게 날 수 있으면 아무리 더워도 문제가 없을 것 같네요.”
    그러고는 곧 책을 내시게 됐다며 쑥스러워 하셨습니다.
    <아침의 피아노>.
    책 나오면 그 책 들고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만 믿고 부모 퇴근 기다리는 아이처럼 선생님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던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직 때가 이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시게 됐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운명하셨다는 전갈이 바툰 쉼표만 찍고 잇따랐습니다.
  • 어젯밤엔 늦게까지 집에서 혼자 4홉들이 소주병을 기울였습니다.
    큰딸이 자다 말고 제 방에서 나와 왜 훌쩍거리느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도리를 다 못한 분께서 돌아가셨노라 했더니 제 등을 다독여주었습니다.
  • 선생님께서 운명하시고 나니 제가 그동안 선생님께 많이 기대고 있었음을 새삼 돌이키게 됩니다.
    선생님은 어느 술자리에선가 제게 문학에 대한 당신의 동경과 지향을 내비치신 적이 있습니다.
    철학과 문학 위에 동시에 서있는 것이 선생님만의 고유한 자리구나 생각했습니다.
    선생님 글은 사려 깊고 아름답습니다.
    재주는 용렬하지만, 저도 문학에 대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말씀 듣고, 문학에서 멀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언제고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을 깨우쳤습니다.
    그렇게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까지도 제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 사실 선생님은 당신의 학문적 역량과 깊이에 비하면 과작의 글을 남기셨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투철한 사유 태도와 글에 대한 심원한 집념은 다작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다작하지 않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젯밤 술기운에 스마트폰으로 짧은 글을 썼습니다.
  • 어떤 철학자는 민감하고 어떤 철학자는 성실하고 또 어떤 철학자는 재기 넘친다. 어떤 철학자는 꽃을 기르며 관상하고 어떤 철학자는 밭을 갈고 거두며 또 어떤 철학자는 시장에 내다팔 여러 작물로 브랜드 시설농을 한다. 김진영 선생님은 철학으로 먹고사는 데 숙맥이었다고 난 생각하는데, 그것이 고인에 대한 내 가엾고 남루한 상찬이다.”
  • 선생님과 저는 죽음을 얘기하기 위해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눈 대화는 지금 이 자리에서도 오롯이 살아 있는 언어입니다.
    죽음에 대해, 그리고 죽은 자와의 관계에 대해 치열하게 사유하고 실천하는 것은 가장 치열해서 아름다운 생의 의지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사셨고, 그렇게 죽음을 건너 계속 사실 거라 믿습니다.
    이쪽에서의 제 삶이 흔들릴 때, 이쪽 세상에 대한 애와 증이 제 맘속에서 복잡하게 뒤챌 때, 제 곁에 소리 없이 와주십시오.
    제 마음이 가지런해지면 선생님께서 다녀가신 거라 알겠습니다.
    앞으로 더 자주 뵙겠습니다.
  • 2018821인 안영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