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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4대강의 삼류 연극 무대

2009년 여름, 경북 상주시 비봉산에서 굽어본 낙동강과 오리섬. 습지와 모래톱과 강물이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동물들은 그곳을 오가며 왕성한 생명활동을 했다.

“저건 나비다!”

일행 중 누군가 내뱉은 말은 서술보다 탄식에 가까웠다.

“어디 어디?”

사람들의 눈길이 손끝을 좇아 가파른 산허리와 물길을 허공으로 가로질렀다. 곧 “큭!” 하고 급히 끝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허!” 하며 꼬리를 끄는 소리도 들렸다. 아닌 게 아니라 거기 나비가 한 마리 있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익룡보다 터무니없이 큰 나비가, 그나마 익룡 화석보다 훨씬 볼품도 생기도 없게, 무려 황토 바닥에 납작 눌린 형상으로, 적나라하게.

경북 상주시 경천대와 (4대강 사업으로 들어선) 상주보 사이 낙동강에는 너른 습지를 품은 하중도(河中島)가 있었다. 이 문장의 시제가 과거형인 것은 섬 때문이 아니라 습지 때문이다. 섬은 남았고, 습지는 사라졌다. 상주 사람들은 이 섬을 ‘오리섬’이라고 불렀다. 곧 그 이름도 사라질 것이다. 지금 생태공원 조성 공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고, 다음과 같은 이름이 새겨진 비석은 이 지역에서 행세깨나 한다는 이들에 의해 세워진 지 이미 오래다. ‘낙동강 생명의 숲’.

‘소라탑’(작품명 ‘스프링’)이 서울 청계천의 명물이 되었듯이, 오리섬 한가운데 나비 형상으로 놓인 이 산책로도 (이 오지에 얼마나 사람의 발길이 닿을까마는) 머잖아 섬의 명물이 될지 모른다. 아니, 누군가에게는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 “오리도 아니고 웬 나비냐”는 일행의 물음은, 생명을 열쇳말 삼아 예술입네 디자인입네 하는 이 바닥의 생리를 조금만 알면 금세 민망해지고 만다. 미국의 팝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와 쿠제 반 브루겐 부부는 청계천에 한 번 와보지도 않고 인도양의 조개에서 모티브를 따서 34억 원짜리 소라탑을 완성했다지 않은가. 바닷고동이면 어떻고 민물 다슬기이면 또 어떤가. 설령 이 공원을 설계한 사람이 이곳에 한 번도 와보지 않았고, 섬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해도 마찬가지다. 오리든 나비든, 어차피 산책로는 하늘을 날지 못한다. 이건 그저 볼거리, 아니면 말장난뿐인 것을.


2009년 가을, 동물들이 무수히 찍어놓은 발자국 위를 포클레인의 무한궤도가 긋고 지나갔다. 오리섬과 그 일대는, 현재 보 공정률 99%, 준설률 96%, 전체 공정률 80%대를 숨가쁘게 돌파했다는 4대강 사업의 압축판이다.1 전국의 큰 물줄기란 물줄기에서 3년 동안 밤낮없이 파내고 퍼부은 그 근면성실한 행위가 결국 무엇이었는지를 이곳 비봉산(경북 상주시 중동면 오상리) 중턱에 서보면 한눈에 직관할 수 있다. 물론 전경뿐 아니라 시간의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흐르는 후경까지 읽어내는 중층적 시선과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오리섬의 유역은 한 편의 연극이 상연되는 무대다. 이 연극은 잔혹극과 슬랩스틱을 뒤섞어놓은 장르다. 그래서 플롯은 직선적이면서 또한 단락적이다. 일행은 오페라극장의 발코니를 조악하게 본뜬 듯한 전망 데크 위에 서서 연극의 한 장면을 본다. 극장 쪽은 우리더러 한사코 그곳을 자전거로 오르라고, 걸어도 숨이 턱에 차는 가파른 길을 내고 콘크리트를 덧씌웠다.

이곳 낙동강은 본디 비봉산 자락에 바짝 붙어 흐르고 있었다. 산은 물에게 곁을 주었으나, 절벽을 둘러 삼엄하게 내외를 했다. 물은 절벽의 만곡을 수줍게 희롱하며 반대편에는 물길보다 너른 모래톱을 열었다. 물에게 산은 정인이고 모래는 동무였다. 섬은 그 모래톱을 건너야 닿을 수 있었다. 섬과 모래톱은 사람의 것이라기보다 동물들의 것이었다. 모래톱 위에는 헤아릴 수 없는 발자국들이 가득 찍혀 있었다. 모두 동물들의 것이었다. 버드나무가 자라는 섬의 습지는 그것들의 집이었고, 강의 얕고 맑아서 잔잔한 물은 그것들의 일터였다. 습지에서 깃들어 자고, 물에 나와 먹이활동을 했다. 집과 일터는 곁에 있었고, 이어져 있었다. 그러다 이태 전인 2009년 가을, 붉은 깃대들이 여기저기 꽂히기 시작했다. 공연 준비였다.

*

포클레인은 낙동강 바닥도 6m 깊이까지 파들어갔다. 너른 모래톱은 직사각형 단위로 잘려나가 모두 사라졌다.

모래톱 위에는 산 것들의 발자국이 지워지고 무한궤도와 타이어 자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찍히지 않고, 그어졌다. 자국의 주인들은 굉음을 냈다. 이른 아침, 운무에 갇힌 비봉산 중턱에서는 발아래로 아무것도 볼 수 없어도, 그 소리만은 들을 수 있었다. 운무는 무대장치를 바꾸는 동안의 암전 같았다. 다시 조명이 들어오듯 운무가 걷히고 나면, 섬은 눈에 띄게 줄어든 녹색의 자리에 누런 흙을 드러냈고, 모래톱도 거의 그만큼씩 사라져 있었다. 섬이고 모래톱이고 직사각형 형태로 단위를 지어 잘려나갔다. 직사각형은 토목의 미덕처럼 보였다. 수십 대의 포클레인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 신실함으로 바닥에 거듭 코를 박았다. 물이 흐르는 곳도 강바닥을 6m까지 파들어갔다. 물도 누런빛을 띠며 흘렀다.

모래톱이 모두 준설되자 산과 섬 사이는 단순해졌다. 오로지 강물만 깊고 거센 물살을 일으키며 피란 가듯 흘렀다. 산 것들에게는 발자국을 찍을 곳이 남지 않았다. 붙박이인 포클레인들과 오가는 덤프트럭들 탓에라도 먹이활동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일이었다. 삶터라고 온전할 리 없었다. 습지에서 황토 벌판으로 변한 섬에서 그것들이 깃들 곳은 없었다. 우거진 수풀에 가려 보이지 않던 동물들은 정작 수풀을 모두 걷어내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말했다. 무대장치를 새로 하는 동안의 어수선함은 그저 과정일 뿐이라고, 곧 다시 태어난 자연과 만나게 될 거라고. 그러나 산 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한꺼번에 무대를 떠난 배우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고, 어디 갈 곳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거대한 생명 증발 현상이었다. 그들은 알려 하지 않았다.

그곳에 나비 한 마리가, 그것도 익룡보다 터무니없이 크고, 익룡 화석보다 훨씬 볼품도 생기도 없이, 납작하게 눌린 채로, ‘설치’됐다. 수풀을 걷어낸 자리에는 떼잔디가 입혀졌다. 연출자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꿈꾸는 한국인의 로망을 파고들고자 했는지 모르겠으나, 저 푸른 그린 위에서 그림 같은 홀인원을 하고자 하는 이들의 선호에 확실히 더 기울어 보였다.

*

섬 안으로 쭉 뻗은 소나무들이 들어왔다. 소나무들은 강 건너 빤히 보이는 도남서원 뒷산에서 뿌리가 뽑혀 옮겨졌다. 돌려막기 눈가림을 한 섬에는 ‘낙동강 생명의 숲’이라는 이름의 비석이 세워졌다.

서정적으로 흘러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을 찰나, 슬랩스틱이 연출됐다. 음악만 나오면 당장 캉캉이라도 출 듯한, 팔등신 미녀처럼 쭉 뻗은 소나무들이 트럭에 실려 섬 안으로 들어왔다. 춤을 추고 싶었을지 모를 소나무들은, 그러나 섬 곳곳에 전봇대처럼 세워졌다. 캉캉은 틀렸지만, 바람 거센 날이면 개업식 풍선인형처럼 나풀춤을 추는 것으로 소나무의 꿈은 현실과 타협할지도 모른다. 사실, 소나무들은 어느 면에서 동네 개업식 업소들을 맴도는 풍선인형의 처지를 닮아 있기도 했다. 그녀들의 출생지는 다름 아닌 낙동강을 끼고 비봉산과 마주한 도남서원 뒷산. 섬에서 불과 한 마장 거리다. 소나무들이 뽑혀나간 산은 붉은 민머리를 드러냈다. 그 돌려막기 신공 앞에서 생명의 기원과 그 오고 감은 애초 가시화될 수 없었다. 한 기의 비석 글귀만이 조폭의 이두박근에 새겨진 문신처럼 역설을 드러낼 뿐. ‘낙동강 생명의 숲’은 ‘차카게 살자’의 토목식 은유다.

지난여름, 오리섬 일대는 무대 위에 올리기에는 감히 벅찬 스펙터클이 연출됐다. 섬 바로 아래 상주보의 하류 왼쪽 제방이 거센 물살을 못 이기고 300m나 유실됐다. 유실된 제방 위에는 파란 비닐막이 씌워졌다. 제방 유실은 구조적 문제였다. 유속이 급격히 빨라지고, 보의 갑문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2 바로 밑에서 병성천과 합류 지점이 있어 제방이 압력을 견디지 못했다. 이것은 생태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하천 토목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무대장치 일부가 무너졌다고 하냥 막 내리고 있을 수는 없다. 연극은 클라이맥스를 지나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차기작을 무대 위에 올려야 한다. 차기작은 ‘4대강 살리기’의 속편. 이달 안에 4대강 준공식을 하고 나면 곧바로 ‘지천 살리기’다.

*

섬 한가운데 나비 형상의 산책로가 자리잡고 있다. 섬 주변으로 모래톱이 예전 자리에서 다시 자라나고 있다. 나비와 모래톱의 기세는 팽팽하다. 2011년 가을 일이다.

그러나 이 연극은 애초 쪽대본으로 시작됐다. 순발력과 우격다짐으로 순간순간 위기를 넘겨왔지만, 대단원을 앞두고 플롯이 손쓸 수 없게 얽혀버렸다. 강바닥을 6m나 파냈지만, 내성천 등 상류 지천에서 물과 함께 흘러온 모래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가까운 경천대 앞 모래톱은 거의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고, 오리섬 일대 모래톱도 봄비가 내린 뒤 죽순처럼 하루가 무섭게 자라고 있다. 놀라운 것은, 다시 자라나는 모래톱은 준설 전 모래톱과 같은 자리에 같은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강과 모래의 계통이다.

물론, 연출자는 지천 모래강이 생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살을 베어주듯 역행침식을 하며 낙동강으로 예전보다 훨씬 많은 모래를 내려보내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급한 대로 포클레인을 다시 투입해 연극 도입부 장면을 되풀이할 뿐, 그 모래의 기원과 오고 감을 알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손에 쥔 것은 끝없이 앞으로 되돌아가도록 짜인 대본이라는 사실도 까맣게 모르는 채. 연극은 오리섬의 변종 나비가 하늘로 날아올라야 끝날 수 있을 것이다, 훨훨! 그 섬의 이름은, 환기하자면, 오리섬이다.


글 / 안영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 | 사진 / 지율 스님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