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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냉면의 사대천왕과 을밀대

서울 최고기온이 32도를 넘어선 날, 느긋하게 ‘을밀대’(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갔다. 자리가 한 순배쯤 돌아 빈자리가 있을 거라던 내 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줄이 30m도 넘게 늘어서 있었다. 냉면 먹기를 포기하고(그럴 만한 투자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웃 순댓국집에서 배를 채우는데, 창 너머 냉면 줄은 시간이 가도 줄어들 줄을 몰랐다. 냉면의 기세가 무섭다. 한국 여름 전통음식의 최강자라는 데 더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황구나 영계로 조리한 음식은 특정한 날에만 불티나는 절기 음식 자리를 넘어서지 못하지만, 냉면은 날짜와 요일과 끼니때를 가리지 않고 즐기는 음식이 되었다.

그러나 냉면이 지존의 자리에 오른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인 듯하다. 아랫녘 출신인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냉면을 구경하지 못했다. 1년 가야 외식 한 번 못 하는 집안 형편 탓도 있었겠지만, 그곳에선 냉면을 즐기지도, 냉면집이 흔치도 않았다. 서울살이를 시작하고도 냉면 먹을 일은 없었다. 사회인이 되고서야 비로소 냉면을 맛보게 되었는데, 대개 갈빗집에서 회식을 한 다음이었다. 내가 냉면과 일찍 만날 수 없었던 사정은 그랬다. 갈비 먹을 일이 없으니 냉면 먹을 일도 없었던 것이다. 경험에만 기대어 말하면, 냉면은 ‘갈비 후식’으로 급속하게 대중화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고기 불판이 없는 독립형 냉면집들의 인기가 드높아졌다. 냉면의 처지에서 보면 음식으로서의 위상 회복이자, 편승 전략의 승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냉면의 대중화가 오로지 덧셈의 과정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갈빗집에서 내오는 냉면은 모양과 맛이 거의 천편일률이다. 물냉면의 경우 가늘면서도 질긴 (그래서 가위로 잘라야 하는) 면발, 식초가 곁들여진 새콤한 국물, 쇠고기 편육 고명, 삶은 계란 반쪽…, 비빔냉면은 여기에 국물 대신 양념장이 부어질 뿐 나머지는 똑같다. 이른바 ‘가든 냉면’은 뚜렷한 획일성과 무계통성으로 전통음식의 B급 장르를 드넓게 구축했다. 굳이 족보를 따지면, 가늘고 질긴 면발은 녹말 전분을 쓰는 함흥냉면 식이다. 이와 달리 평양냉면은 메밀로 면발을 뽑아 비교적 굵으면서도 질기지 않고, 식감은 풋풋하다. 함흥냉면은 비빔냉면이고, 평양냉면은 물냉면이다. 그래서 갈빗집에서 내오는 물냉면은 갓 쓰고 자전거 타는 것과 같다.

가든 갈비의 서얼로서 전 국민 육식량 증가에 편승해 성장했던 냉면이 다시 독자적인 음식 산업으로 우뚝 선 데에는 획일과 무계통의 맛에서 벗어나 본디맛을 찾아 나선 미식가형 국민들 덕분이라 하겠다. 냉면 대중화가 가든 냉면의 복잡한 가감승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도 이 때부터다. 나도 어느덧 냉면 애호가가 되었고, 남달리 유난을 떠는 축에 끼게 되었다. 서울 장안의 사대천왕 소리를 듣는 평양냉면집(중구 필동3가 ‘필동면옥’, 중구 입정동 ‘을지면옥’, 중구 장충동1가 ‘평양면옥’, 중구 주교동 ‘우래옥’)과 평양냉면계의 신예인 을밀대가 아니면 가지 않는 것이다. 함흥냉면은 해방 이후 함경도 가자미 식해에 녹말 국수를 비벼놓고 “냉면입네” 눙친 것이어서 굳이 비빔국수나 막국수와 가려 먹을 가치를 못 찾고 있다.

필동면옥 냉면 ⓒhttp://blog.naver.com/landy/120102787222

사실 내가 찾는 사대천왕은 냉면 대중화 흐름과 상관없이 해방 직후부터 미식가들 발길에 문지방이 닳아왔지만, 이젠 날이 풀리기가 무섭게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들 사대천왕보다 기세가 무서운 건 신예 을밀대다. 점심시간 늘어서는 줄의 길이도 을밀대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을밀대는 1970년대 들어 냉면을 처음 시작했다. 평양냉면을 표방하고 있지만, 한 집안인 필동·을지·평양면옥의 맛과는 차이가 크다. 호사가들은 필동가문의 냉면을 평양 옥류관의 그것보다 평양냉면 맛을 더 잘 살리고 있다고 상찬하면서, 을밀대 냉면에는 퓨전 평양냉면이라는 애칭을 따로 붙여주었다. 문제라면 을밀대 앞에 장사진을 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런 사정을 모르는 채 을밀대 냉면을 원조 평양냉면쯤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을밀대 면발은 온전한 평양냉면 면발이 아니다. 메밀에 녹말 전분을 섞어서 뽑는다. 그래서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면발의 퓨전인 것이다. 두 냉면의 좋은 점만 골라 제3의 맛을 구현했다고 평가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 그렇다면 을밀대 냉면은 원조의 진화라고 봐도 좋을까? 나는 유보적이다. 을밀대 냉면은 평양과 함흥이 습합된 맛이 아니라 평양에 함흥이 외삽된 맛이다. 면발은 입안 전체에서 ‘맛’으로 공명하지 못하고, 치아 사이에서 깨물어지는 굵고 약간은 질긴 ‘식감’으로 대체된다. 을밀대 냉면 국물에는 셔벗 상태의 얼음이 그득하다. 냉면의 ‘냉’을 대놓고 내세우는, 냉면의 신분증 같은 그 국물은 얼음 보숭이의 ‘한기’(寒氣)로 입천장과 혀끝을 긴장시킨다. 면발과 국물은 아늑하게 어우러지는 대신 개별적으로 웅성거린다.

을밀대 냉면의 약진은 순전한 덧셈이 아니라 여전히 복잡한 가감승제를 요구한다. 왜 그곳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적대는 것일까? 내 경우만 보면, 일터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고, 지인들도 그곳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다. 그래서 난 길게 늘어선 줄을 인내하지 못하고 이웃 순댓국집으로 미련 없이 발길을 돌린다. 무엇보다 내겐 훨씬 좋아하는 냉면집들이 따로 있다. 그러나 오뉴월 땡볕에서 몇 십 분이고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에게 을밀대는 짐짓 경배의 대상이 된 듯하다. 그들이 아는 을밀대가 내가 아는 을밀대와 다른 을밀대여서는 아닐 것이다. 이 순례자들을 을밀대로 이끄는 것은 ‘기억’인 듯하다.

을밀대 냉면 맛은 가든 냉면에서 멀리 떠나온 맛이지만, 가든 냉면 맛의 기억을 차마 떨쳐내지 못한 맛이기도 하다. 그곳에 장사진을 친 이들에게 냉면 본디맛의 기억은 옛 평양냉면 맛이 아니라, 육식량 증가에 편승했던 가든 냉면이 남긴 강한 뒷맛은 아닐까. 최근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라는 노래를 틀어대며 프랜차이즈로 급신장하고 있는 ‘새마을식당’을 아시는가. 새마을식당에서 외쳐대는 “바로 이 맛이야”는 원조나 전통은커녕 1970년대의 맛조차 온전히 가리키지 못 한다. 지금 우리가 먹는 보리 산채 비빔밥이 옛 보릿고개 시절 즐겨(?) 먹던 꽁보리밥이 아니듯이. 을밀대 냉면이 환기의 마케팅으로 승부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냉면의 본디맛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냉면 하나 놓고 너무 강퍅하게 구는 건가? 하지만 ‘원조’는 전통주의자의 편집증적 숭배 대상이 아니다. 적어도 냉면에 있어서는 그러하다. 서울 장안의 사대천왕은 <MBC> 라디오 장수 프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유보다 훨씬 대중적이다. 필동면옥의 냉면 맛을 깨우치는 데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를 받아들이기 위한 득음의 각별한 훈련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다만 가든 냉면과는 전혀 기원이 다른 맛인 데다 우리의 입맛이 너무 맵짠 음식에 혹사당해 왔기에 처음 몇 번은 낯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조차 냉면의 본성이다. 냉면 맛은 즉자적인 맛도, 그렇다고 배우는 맛도 아니다. 저절로 알아지는 맛이다. 억압될지언정 차단될 수 없고, 훈육시키려 해도 조건반사로 이어지는 법이 없는 맛이다. 그것은 직유법이 아니다. 그렇다고 추상도 아니다. 선험적 오성(悟性)의 일부다.

가든 냉면의 기억과 퓨전 냉면에 대한 경로 의존에서 벗어나, 원조 전통 평양냉면과 조우해보라. 분광되지 않기에 설명되지 않는 그 어떤 맛이 거기에 있다. 그 맛은 차오르듯 침샘을 일깨운다. 잡글의 마침표를 찍는 지금 내 입안에서도.

※ <미디어스>에 실린 글입니다. 미디어스는 매주 토요일에 서울시내 냉면 명가 순례기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