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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병상에서 본 부산 화재참사 보도


일주일 남짓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 수술 부위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진통제 한 방을 더 맞느냐 마느냐가 실존적 선택의 문제였던 내게 병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비치는 뉴스는 ‘적당한’ 소격감을 줬다. 그 느낌은 세상사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미디어가 재현하는 스펙터클의 이면을 특수 안경을 끼고 들여다보는 것에 가까웠다. 세상은 한걸음 떨어져서 볼 때 보이지 않던 것도 병상에 누워서는 그렇게 잘 보이는가 보다.

입원 기간 내내 방송 뉴스 머리를 장식한 것은 부산 국제시장 화재 참사였다. 재난 사고는 본디 방송 뉴스가 무척 선호하는 아이템이다. 재난 사고에는 눈길을 끌 만한 ‘그림’들도, 감성을 자극할 만한 ‘사실’들도 모두 풍부하다. 거기까지는 특수 안경을 낄 필요도 없이, 평소 봤던 방송 뉴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방송 뉴스의 스펙터클보다 한 수 더 뜨는 호들갑스런 연출이 연일 펼쳐졌고, 언론은 이를 최대한 충실히 전달했다.

부산 국제시장으로 국무총리와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까지 한걸음에 달려간 모양새는 정부 9부2처2청 이전이 하루아침에 백지화된 행정복합도시의 현주소와 선연한 대조를 이뤘다. 국제정상회의에 참석한 대통령이 일본 총리에게 사과와 함께 진상규명을 다짐하고, 한국 총리는 일본인 유족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지난해 국감장에서 기자들에게 욕설을 날렸던 문화관광부 장관도 참사 직후 곡진한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민간인 오락시설의 화재 사고에 국가 차원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외교적 사죄를 하는 것은 예의의 문제를 넘어선다. 상호주의를 가파르게 들이대지 않더라도, 위안부 강제 동원이라는 국가 범죄를 민간인 보상으로 ‘땡처리’한 일본의 대응과는 너무 대조적이지 않은가. 36년 식민지 지배를 ‘통석의 염’이라는 모호한 한마디로 갈음한 일본 천왕과 “과거는 묻고 미래로 나아가자”며 광복절마저 건국절로 이름을 바꾼 이 나라 대통령은 어떤가.

정부의 이번 대응을 지난 2007년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때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은 오히려 무안하다. 이 나라 주권자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외국인 간의 형평성을 따지는 것조차 너무 참람한 노릇이다. 용산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경찰 강제진압 과정에서 불타 숨진 희생자들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고,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국가로부터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건국은 됐으되 광복은 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런데도, 온종일 켜놓은 텔레비전의 뉴스에서 이런 비판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것은 병상의 시선인가? 그렇다면 우리 방송도 다들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아야 할 만큼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1563호(2009-11-23)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