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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바꾸기의 위생학적 이해 이별하는 연인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몇 가지 통과의례 가운데 하나가 ‘말 바꾸기’다. “영원히 너만 사랑할 거야”라는 숱한 맹세는 그 통과의례를 거치는 순간 빈말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별을 눈앞에 두고 상대방 말의 일관성 없음을 문제 삼는 짝은 드물 것이다. 비록 악감정에 복받치더라도, 상대가 악질이 아닌 한, 지난 밀어의 진정성만큼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작업성’ 코멘트를 포함한) 사랑할 때의 언어와 (쿨함을 가장한) 이별할 때의 언어가 서로 어긋날지언정, 그들에게 두 언어는 모순 관계에 놓이지 않는다. 세상은 말을 바꾸는 행위를 흔히 윤리의 잣대로 재단하지만, 말 바꾸기 자체가 윤리성의 문제일 수는 없다. 말 바꾸기에 윤리를 적용하는 일이 조자룡의 헌칼 쓰기 같아서는 안 된다. 말을 바꾸..
미네르바 구속을 보는 글로벌 스탠더드 [미디어 바로보기] 아고라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은 한국사회의 ‘표현의 자유’에 관한 인지도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하는 지표적 사건이다. 한국 내부에서의 치열한 논쟁도 논쟁이지만,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드물게도 이 사건에 대한 관점의 대치선은 한국 내부뿐 아니라 한국 주류와 국제 주류 사이에서 선명하게 그어지고 있다. 는 “한국정부, 금융관련 ‘예언자’를 체포하다” 기사에서 “한국정부는 세계금융위기에 의해 아시아에서 가장 힘든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에 대해 점차 민감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 제목이나 본문보다 더 두드러진 건 기사분류다. 로이터의 이 기사 분류 항목은 ‘Oddly enough’였다. 의역하면 ‘황당 뉴스’, 즉 ‘사람이 개를 문 사건’쯤 될..
이병순·구본홍, 두 사장 인사권의 공통점 제도의 극한에서 휘두른 권력, 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간 선택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권력의 재생산은 회귀성 어류의 번식과도 같다. 거칠 것 없이 원양을 헤엄치다가도 깊은 산속 얕은 고향 계곡으로 돌아가야 세대를 이어갈 수 있는 연어처럼, 제아무리 중앙무대에서 날고뛰던 정치인도 포항이든 어디든 고향 지역구로 돌아가 심판을 받아야 다음 4년 금배지를 내다볼 수 있다. 연어가 원양에서 고향의 기억을 잃고 정력을 탕진하면 대가 끊길 것이고, 정치인이 중앙무대에서 힘자랑만 하다가는 고향에 돌아와도 반겨줄 이가 드물 것이다. 힘은 아껴서 잘 써야 한다. 제도화된 권력도 마찬가지다. 자동차가 최대 마력과 토크로만 주행할 수 없듯이, 권력도 제도가 허용하는 극한까지 힘을 쓰면 역풍..
뭇매 맞는 강기갑은 그대들의 미래다 ‘카르텔 맹종·자기존재 부정’한 자해공갈단의 씁쓸한 우화 ‘폭력배’라는 이름은 통제되지 않는 남성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다. 그래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깡마른 몸에 가해진 인두질은 지극히 키치적으로 다가온다. 김두한이 1966년 국회의사당 안에서 인분을 투척하는 장면 정도는 돼야 ‘연출’도 살고 ‘편집’도 산다. 김두한은 삼성의 사카린 밀수와 정부의 비호에 비분강개해 ‘거사’를 벌임으로써 국회의원에서 제명되는 비운을 맛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회가 대통령에게 예속돼 있던 박정희 1인 독재 치하 시절의 얘기다. 다시 그런 시대가 돌아왔는지를 두고 토론이 벌어지는 현실이 비감하지만,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 뭇매를 가하는 2009년 정초의 풍경은, 협객의 시대는 오래 전 가고 지금 우리..
언론노조 “8일 0시 총파업 잠정중단” 여야 ‘법안 합의처리 노력’ 결정 따라…”강행 시도 땐 재돌입”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이 총파업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언론노조는 6일 한나라당이 미디어 관련 5개 쟁점 법안을 강행처리하지 않고 시한을 두지 않고 합의처리에 노력하기로 야당과 합의함에 따라, 오는 8일 0시를 기해 파업 참가자 전원이 업무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업무 복귀는 파업 철회가 아닌 잠정 중단이라는 점을 분명히하며,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한나라당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다시 법안 처리를 시도할 경우 총파업을 재개하기로 했다. 여야는 6일 △방송법 △신문법 △인터넷 멀티미디어법 △지상파 텔레비전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방송의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 △정보..
안상태 기자는 그나마 솔직하다 객관주의 신화 속에 감춘 1인칭 주어는 ‘사익 은폐’의 주술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이 글은 제1523호(2009-01-05) ‘미디어 바로보기’에 발표한 글임을 밝힙니다. 방송 기자가 리포트를 하면서 “나는”으로 시작하는 주어를 쓸 수 있는 상황은 개그 설정(‘개콘’ 안상태 기자의 “나안~ 뿐이고”) 때뿐이다. 저널리즘 문법에서는 1인칭 또는 2인칭 주어가 금지돼 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저널리즘의 ‘객관주의’가 규범화된 결과다. 지난해 12월26일 SBS 에는 이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단신이 보도됐다. “SBS는 ‘현재 일부 노조원이 파업에 가담하고 있지만 대다수가 정상적으로 방송에 임하고 있어서 모든 방송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습니..
태극기 ‘간지’의 뻔뻔함 이명박 대통령 신년사 배경에 도열한 10개의 태극기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애국가 하면 경건함과 장중함을 떠올린다. 그러나 같은 애국가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1987년 6·10민주화항쟁 때 시민들이 거리에서 불렀던 애국가와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윤도현이 무대 위에서 불렀던 애국가의 차이를 떠올려보면 쉽다. 둘의 차이는 때와 장소의 차이, 그리고 그 선율을 타고 흐르는 맥락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그뿐 아니라 윤도현의 애국가는 ‘리메이크’라는 공정을 거치기도 했다. 2004년 3월 국회의 대통령 탄핵 결의안 가결 당시 사지가 들려 본회의장 밖으로 끌려나온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불렀던 애국가를 기억하는가. 그리고 1년(정확히 355일) 뒤 같은 ..
파업, 하고 싶어도 못하는 언론인들 KBS 기자들·MBC 시사구성 작가들 “언론 총파업 힘 보태겠다”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임기 초재기에 들어간 박승규 KBS 노조 위원장이 전국언론노동조합 총파업을 두고 “MBC 외에는 파업하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임기내내 ‘상상하는 것 이상’의 노동조합을 보여준 그가 하는 말이어서 마음 쓸 일은 아니지만…, 중앙일보는 옳다구나 싶었던지 고려대가 올 수시시험에서 특목고 출신에게 부여한 것보다 훨씬 큰 가중치를 부여해 29일치 1면에 대서특필했다. 아무리 실없는 허언이라지만, 그의 세치 혀끝에 상처받은 이들도 뜻밖에 많았다. 바로 ‘파업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2002년 이후 입사한 KBS 평기자 104명은 30일 실명으로 언론노조 파업 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