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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최진실 죽음의 정치적 재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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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대학보 제1513호(2008-10-13)


이 직전 글에서 나는 “언론이 연예인 추문을 들추더라도 사적 부분만 낭자할 뿐, 정작 추문을 둘러싼 정치경제학적 배후, 권력구조를 건드리지는 않는다”고 썼다. 그 뒤 최진실 씨가 자살했다. 그리고, 난 내 발언을 수정(정확하게는 보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언론은 연예인에 관해 특정한 목적과 의도에 따라 정치경제학적 배후와 구조를 ‘연출’하기도 한다”고. 어쨌든 최진실 씨의 죽음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정치적’ 이슈다.

상업성으로 무장한 ‘조문 저널리즘’이 한바탕 휩쓸고 간 뒤, ‘사이버 모욕’을 둘러싼 정치적 조문 저널리즘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정부여당이 이른바 ‘최진실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이 법의 핵심은 고소·고발이 없어도 사법당국이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사이버 모욕죄 신설, 운영자의 댓글 삭제 권한 등을 강화한 인터넷 실명제 전면 확대, 두 가지로 추려진다. 일부 언론은 두 손 들어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최진실 씨의 상장례(喪葬禮) 전 과정을 샅샅이 생중계했던 것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듯이, 최진실법도 곧이곧대로 그녀의 넋을 달래기 위한 제도는 아니다. 공권력이 사이버 여론을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손에 쥠으로써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을 것이라는 우려와 반발이 거세다. 인터넷 실명제가 악성댓글을 줄이는 데 아무 효과가 없다는 반증도 제시되고 있다.

그럴수록 이 법을 도입하려는 쪽의 전략은 교묘하다. 최진실 씨의 죽음은 상업적 목적뿐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도 들춰진다. 그녀가 자기본위의 죽음을 선택했는지 사회적 타살을 당했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녀 죽음의 유일한 인과관계는 ‘악플(사이버 악성댓글)’로 단정된다. 그리고 그 악플이 ‘넘쳐나는’ 인터넷은 ‘좌파세력’의 공간으로 규정된다. 그녀는 이념투쟁 모리배에 희생된 순교자로 추념되고, 인터넷은 필연 정화 대상이 된다. (‘최진실법’의 다른 이름은 ‘인터넷 정화법’이다.)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쫓는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이르는 걸까.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 입을 빌려, 죽은 ‘국민 여배우’ 재활용법을 교묘히, 그러나 조금은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좌파 세력이 익명 뒤에 숨어 인터넷을 자신들의 선전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중략)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던 인터넷 괴담의 문제점과 부작용 등을 이번에 함께 개선해 보겠다. 민주당은 우리의 이런 의도가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을 확산시키는 공간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6일자 A8면 “‘최진실법 공방’ 이면엔 정치적 공방”)

안영춘 미디어스 편집장 jona01@media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