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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리먼 브러더스’ 인수 하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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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대학보>에 이번 호부터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짧은 글쓰기를 하려니 쉽지가 않네요.
그나마 정기적으로 글쓰기 의무가 부과되니, 꼬박꼬박 쓰지 않을 재간이 없게 됐습니다.
이렇게라도 글을 쓸 수만 있다면 나쁘지는 않겠죠^^
   
 
신문이나 방송이 세상 요지경 속을 속속들이 다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수용자(독자/시청자)들이 진짜 알아야 할 건 언론이 쳐놓은 장막 뒤에 숨어있을 때가 많다. 연예인 추문을 들추더라도 사적 부분만 낭자할 뿐, 정작 추문을 둘러싼 정치경제학적 배후, 권력구조를 건드리지는 않는다. 언론에서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는 일은 좀처럼 드물다.

지금 한국 언론의 최대 이슈는 단연 ‘미국발 금융위기’다. 그동안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지속적으로 보도되긴 했어도, 언론에 등장한 이번 사태는 뜬금없는 재난처럼 느껴진다. 현실경제에서는 30년의 유구한 맥락(신자유주의) 속에서 나온 ‘산물’이지만, 언론에서는 그저 띄엄띄엄 ‘재현’돼온 개별적 ‘사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개별 사건들 사이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었을까?

“헐값에 세계 일류를 인수할 수 있는 기회다” “금융 세계화의 문이 열릴 것이다”…. 조선일보가 최근까지 산업은행의 리먼 브러더스(지난 14일 파산신청한 세계 4위 투자은행) 인수를 재촉하며 늘어놓은 언설들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이후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실질적인 종언을 뜻한다고 평가한다”는 보도(같은 신문 22일치 4면)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물론 조선일보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를 열심히 보도했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산업은행의 리먼 브러더스 인수는 이 신문에게 전혀 별개의 문제일 뿐이다. 산업은행 민영화와 이번 사태가 따로따로인 것도 물론이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과 산업은행 민영화는 별개다. 산은을 민영화해 투자은행으로 키워낸다는 계획도 충실한 대비책을 세워나가면 된다”-같은 신문 19일치 사설)

이런 보도 행태는 차라리 상업주의 언론의 본모습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든, 미국 금융체계 붕괴 위기든, 그들은 그때그때 상품화해 내다팔 위기가 필요할 뿐, 위기의 본질은 외면된다. 그리고 수용자가 하나의 위기에서 다른 위기로 소비대상을 옮겨가게 하려면 그 사이사이에 희망이라는 이름의 ‘망각’ 기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상업주의 언론은 냉탕-온탕-냉탕을 끝없이 오가게 된다.

언론에 등장하는 증권 전문가가 주가 폭락 사태에 대해 “이건 호러야”라고 외치는 법이 절대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늘 “지금이 주식을 살 적기”라고 말할 뿐이다.(“금융위기 큰 파도 지난 지금이 주식 살 때”-중앙일보 18일치 E6면) 그러나 진실은 “역사상 개미 투자자가 손해보지 않은 일은 없었고, 증권 전문가들이 자신의 빗나간 ‘예언’에 대해 사과한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은 어디에 있을까.

안영춘 미디어스 편집장 jona01@media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