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표글

수어, 모두를 위한 손짓

코로나19가 ‘뉴노멀’(새로운 표준) 행세를 하는 탑탑한 현실 위로 또 하나의 청량한 뉴노멀 하나가 자리 잡았다. 수어 통역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 2월4일 브리핑 때부터 수어 통역을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19 정보에서 농인(청각장애인)이 소외와 차별을 받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뒤였다. 지금은 중앙정부는 물론, 광역과 기초 지자체의 어느 브리핑에서나 수어 통역을 볼 수 있다.

 

시각적으로도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지금은 수어 통역자가 발표자 옆에 나란히 선다. 과거에는 무대 바깥에 멀찍이 떨어져 섰다. 통역자의 대등해진 위상은 상징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화면 속 통역자의 손짓이 예전보다 훨씬 크게 보이게 됐다. 수어는 시각 언어다. 크게 보일수록 소통에 유리하다. 화면 한 귀퉁이에 더부살이하듯 비치는 통역자의 손짓은, 소리 언어로 치면 모깃소리로 속삭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수어 통역이 대중 앞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집회 현장이었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라는 단체가 2008년 노동자대회 때부터 크고 작은 집회에서 수어 통역을 하고 있다. 세월호 집회부터는 무대 스크린에도 통역을 띄운다. 2016년 4월 영국 런던 트래펄가 광장의 반세계화 집회 장면은 수어 통역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했다. 통역자와 발언자가 나란히 무대에 서고, 똑같은 크기로 스크린에 비친 것은 당시로선 충격이었다.

 

이제 우리도 그런 장면에 익숙해졌지만, 수어에 대한 청인의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수어의 세계는 소리 언어 못지않게 넓고 다양하다. 당연히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다. 농인들의 국제행사에서는 수어가 동시통역된다. 한 나라 안에도 여러 사투리가 존재한다. 차진 비속어와 은어도 풍부하다. 수어는 완벽하게 독립적이고 자기 완결적인 언어다.

 

농인 부모를 둔 청인 가운데 자신을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농인과 청인의 정체성이 한몸 안에서 교차하는 것에 대한 자기 긍정의 표현이다. 옹알이부터 수어로 배운 그들의 자긍심은 수어가 다양성과 공존성의 사회적 가치를 품은 언어라는 사실에서 나오는 듯하다. 수어는 모두의 언어는 아니지만, 모두를 위한 언어다.

* <한겨레> ‘유레카’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0932.html

 

[유레카] 수어, 모두를 위한 손짓 / 안영춘

코로나19가 ‘뉴노멀’(새로운 표준) 행세를 하는 탑탑한 현실 위로 또 하나의 청량한 뉴노멀 하나가 자리 잡았다. 수어 통역이...

ww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