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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국회의사당에 원전을 짓자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 1호기 앞 바닷가에 ‘지진해일 대피 안내판’이 서 있다. 경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는 수소전기차 충전소가 있다. 지난해 9월에 들어섰다. 수소전기차 충전소는 대표적인 기피시설이다. 정부의 목표는 지난해까지 전국 89곳에 설치하는 것이었으나, 주민 저항이 심해 여태 37곳에 머물러 있다.(8월 말 현재) 그런 기피시설이 지체 높은 국회 안에 설치돼 있으니 상징하는 바도 각별하다. 국회는 여염과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나랏일 하는 이들은 사사로운 이유를 앞세워 공공시설을 기피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지 않은가.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 세종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압도적 다수 여당의 뜻이니 실현 가능성이 작아 보이지 않는다.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대한민국 미래가 걸린 일인 만큼 국민의힘도 수소전기차 충전소 설치 때처럼 흔쾌히 수용하리라 믿는다. 기왕 할 거면 완전 이전이 좋겠다. 그래야 33만3553㎡에 이르는 드넓은 터에다 또 다른 국가 백년대계를 제대로 도모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존 건물에 대한 미련도 버렸으면 한다. 싹 밀고 새로 세우는 개발 방식이 우리 주특기 아닌가.

 

국민의힘의 협조로 국회가 이전한다면 여의도 터를 활용하는 데도 국민의힘을 배려하는 게 도의에 맞다고 본다. 국민의힘이 월성1호기 조기 폐쇄를 ‘원전 살해’라고 비탄하며 감사원 감사 청구에 이어 검찰 고발까지 한 데 마음이 쓰여, 그 순애보에 맞춤한 제안을 해본다. 국회에 원전을 짓자. 2년 일찍 폐쇄한 원전에도 그리 애달파하니, 이번에는 100년 가도 끄떡없게 지어보자. 국회의사당 지붕과 원전 지붕 둘 다 둥근 돔인 것도 우연이기만 할까.

 

여의도 국회 터가 원전의 입지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한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더구나 원전 전문가들이라면 그 천혜의 조건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게 의아할 따름이다. 한국과 일본의 원전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만은 예외다. 장 교수의 지론에다 내 짧은 식견을 보태서 설명해보면 이렇다.

 

원전 입지의 제1조건은 원자로를 식힐 수 있는 풍부한 수량. 여의도는 드넓은 한강을 끼고 있다. 민물로는 부족하다고? 라인강을 끼고 있는 프랑스 페세나임 원전의 전례를 보라. 민물은 강점이 더 많다. 지난여름 태풍에 바닷가 원전들이 줄줄이 멈춰 섰다. 강풍에 날아온 소금기에 내부 전력설비가 고장난 탓이다. 한강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다음은 지반의 안전성. 모래를 쌓아 만든 섬이라 지반이 약할 거라고 걱정하기 전에 고개를 돌려 주변에 즐비한 초고층 빌딩을 보라.

 

국회 원전의 미덕은 끝이 없다. 서울에서 전기를 생산해 서울에서 쓰니 원전 건설비용의 3분의 1이나 되는 송전설비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송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전력 유실 문제도 해결된다. 송전탑 반대 투쟁 같은 성가신 일도 없다. 무엇보다 전국 전력의 20% 가까이 쓰면서 자급률은 3%에 그치는 서울이 당당히 에너지 종속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꿈의 원전이 현실화할 기회를 걷어차서야 되겠나.

 

원전을 지을 땐 방폐장도 함께 짓자. 1986년 이래 방폐장 터 선정은 원전 터 선정보다 골치 아픈 문제였다. 지금도 월성에서는 주민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저들에겐 ‘공공성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시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자기 똥은 자기가 치우고, 정 안 되면 곁에 두고라도 사는 게 공공적 태도다. 아무리 방사성 폐기물 처리 기술이 없다 해도, ‘원전은 정화조 없는 화장실’이라는 조롱을 언제까지 듣게 할 건가.

 

서울의 노른자위에 신규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으니, 원전을 에워싸고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를 짓자. 입주 우선순위는 원전 사랑 순으로 하고, 무상 입주를 기본으로 하자.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1순위가 되겠지만, 지구온난화를 해결할 방법은 원전 말고는 없다고 부르대는 지식인과 언론인을 비롯한 원전 찬성론자들도 빠뜨리지 말자. 이들에게는 영구 입주와 세금 없는 자녀 상속을 보장하자. 후쿠시마에서 나는 신선한 해산물도 무상으로 공급하자. 다만, 그들의 고매한 이타성과 겸양까지 고려해 이 모든 것에 대한 사절을 전면 금지하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원전 반대로 돌아서는 이들은 지체 없이 퇴출시킨다.

 

노파심에 덧붙인다. 장 교수와 나는 입주 대상에 포함시키지 말아달라. 이 모든 건 풍자다.

* <한겨레> ‘아침 햇발’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0669.html

 

[아침 햇발] 국회의사당에 원전을 짓자 / 안영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는 수소전기차 충전소가 있다. 지난해 9월에 들어섰다. 수소전기차 충전소는 대표적인 기피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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