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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표창장이 필요한 사람들

‘조국 정국’을 대분류하면 절반은 ‘표창장 정국’이다. 논문 교신저자나 연구소 인턴 문제는 그 하위범주로 분류하면 된다. 핵심은 ‘조작’ 여부다. 대한민국 정치권과 검찰, 언론은 물론 온 국민까지 사생결단으로 이 문제에 매달려왔지만, 그 와중에 난 한갓지게 ‘표창장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고맙게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조국 장관 낙마 표창장’으로 고민을 덜어줬다. 표창장이란 본디 부조리거나, 역설이거나, 한바탕 소극이었다.

지난봄 드론으로 내려다본 영주댐 일대의 모습. 김명진 기자

표창장이 폭포수처럼 쏟아질 때가 더러 있다. 4대강 사업 유공자로 표창장을 받은 이는 1152명이다. 수자원공사, 국토부, 환경부, 국방부 등에서 녹봉을 먹는 이가 가장 많다. 강을 파헤치고 막으면 물이 맑아진다고 했던 학자들이 뒤를 잇는다. 영주댐 사업을 담합해 처벌받은 건설사의 간부도 여럿이다. 뒤늦게 담합이 적발된 게 아니다. 적발되고 4년이 지나 표창장을 줬다. 강이야 썩든 말든, 저들 대부분은 지금도 큰소리치며 잘 살고 있다.

저들의 표창장은 조작일까 아닐까. 도장을 위조했을 리는 없지만, 표창의 근거인 ‘공로’는 그렇지 않다. 빤히 내다보이는 부작용을 분식하고 사업 효과를 과장·왜곡한 것에 ‘조작’의 사전적 의미를 깐깐하게 들이댈 일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건 큰 조작이냐 작은 조작이냐다. 4대강 사업은 역사상 가장 큰 조작 가운데 하나다. 이명박에게 표창장은 그 조작을 감추려는 알리바이 조작이었다. 조작 크기만큼 포상자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었을 테다.

앞서 언급한 영주댐은 4대강의 마지막 사업이자 끝나지 않은 사업이다. 2016년 12월 거창하게 준공식을 치렀지만, 여태 준공 승인도 못 받았다. 댐은 총연장 100여㎞ 내성천 한중간을 토막 치고 들어서 있다. 낙동강 수계에서 수질이 가장 좋은 이곳에 본류 수질 개선에 쓸 물을 댄답시고 1조3천억원을 쏟아부은 것이다. 김소월 시를 재현한 듯 전 구간에 고운 모래만 가득했던 1급수 물길은 어느새 4급수와 자갈과 잡풀의 강으로 변했다.

수자원공사는 수질이 악화하고 댐의 안전에도 문제가 제기되자 1년 만에 담수를 포기했다. 그러다 지난 9월 다시 수문을 닫아걸었다. 목표 수위를 채워 댐 안전성과 수질 변화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겠다는 거였다. 이름하여 ‘시험 담수’다. 녹조를 잡겠다며 댐 바로 앞에 기포를 뿜어내는 장치를 촘촘히 박아 넣었고, 배들은 분주히 오가며 물 위에 황토를 뿌리고 있다. 그러나 여름이 가고 가을 단풍이 다 들도록 녹갈색 물의 탁도는 그대로다.

그렇다고 저들은 실망하는 법이 없다. 지금처럼 토건의 실패를 다시 토건으로 해결하려는 되먹임 구조가 작동하는 한, 토건의 꿈은 결과가 나쁠수록 크게 부풀어 오른다. 저들은 이제 수질 개선 사업에 1226억원을 쏟아붓겠다고 한다. 물론 조작은 토건에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다. 여기 최근 포착된 또 다른 조작 ‘의혹’을 공개할까 한다. 큰 조작인지 작은 조작인지는 독자 여러분이 판단해주기 바란다.

환경부는 최근 영주댐 사후환경영향조사서 9년치를 한꺼번에 ‘환경영향평가 정보지원 시스템’에 공개했다. 시민단체가 검찰에 고발하고 난 뒤였다. 환경영향평가법은 수자원공사가 조사 결과를 보고하면 환경부가 평가를 거쳐 7일 안에 이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법 규정은 깡그리 무시됐다. 이것은 환경부 잘못일까, 수자원공사 잘못일까. 혹은 둘 다의 잘못일까.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의혹은 더욱 부푼다. 가령 날짜와 위치 좌표는 같은데, 하나는 일련번호로, 다른 하나는 마을 이름으로 표기된 계절별 수질 데이터가 3년 동안 반복해서 발견된다. 더구나 두 측정치는 최대 2배 넘게 차이가 나면서도, 대체로 심산유곡 아니면 보기 어려운 수치들이다. 실제 위치는 2012년부터 물에서 악취가 나서 수자원공사가 페트병에 식수를 담아 주민에게 공급하던 곳이다. 이런 데이터는 도대체 어떻게 나왔을까.

조사서가 다루는 수치는 100만분의 1(ppm) 단위다. 그걸 조작했다면 큰 조작인가 작은 조작인가. 그 수치가 준공한 지 만 3년이 다 되도록 물을 담을지 말지도 결정하지 못한 댐의 미래를 연장하는 데 어떤 식으로든 쓰인다면 저들도 표창장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가. 표창장이란 본디 그런 것 아니던가.

 

※ <한겨레> ‘아침 햇발’에 쓴 글입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15358.html

 

[아침 햇발] 표창장이 필요한 사람들 / 안영춘

안영춘 논설위원 ‘조국 정국’을 대분류하면 절반은 ‘표창장 정국’이다. 논문 교신저자나 연구소 인턴 문제는 그 하위범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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