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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제작기가 더 극적인 쿠르드 영화, ‘욜’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자 국내 언론들은 “한국 영화의 쾌거”라고 썼다. 영화제가 국가대항전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번연한 사실을 극적으로 깨우치는 영화가 있다. <욜>은 1982년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터키 영화 사상 처음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만든 이을마즈 귀네이 감독은 트로피를 받지 못했다. 터키 군부가 그를 살해하려고 현지에 요원들을 보낸 탓이다. 봉준호 감독이 들으면 모골이 송연해질 이야기다.

<욜>은 영화 외적인 부분이 더 영화 같은 영화다. 귀네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교도소에서 집필했다. 촬영은 조감독 셰리프 괴렌에게 맡겼다. 편집은 다시 귀네이 감독 몫이었다. 그는 탈옥해 스위스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영화를 완성해 칸 영화제에 출품했다. 심사위원들이 작품성보다 그의 목숨 건 노력을 높이 사서 상을 줬을 거라는 뒷얘기도 있다. 귀네이 감독은 2년 뒤 암으로 숨을 거둔다.

<욜>의 모티프는 교도소에서 일주일짜리 가석방 휴가를 나온 수감자 5명의 귀향기다. 이들이 마주한 바깥의 현실은 정치적 억압과 봉건적 억압이 중첩돼 있다. 가령, 정부군과 반군이 싸우는 고향을 찾았더니 전날 교전에서 반군인 형이 숨졌고, 정혼자를 놔둔 채 관습에 따라 형수와 결혼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의 무대는 쿠르드족 지역이다. 귀네이 감독도 쿠르드족이다. 이는 그가 반체제 영화인으로서 긴 수감 생활을 거듭한 배경이기도 하다.

<욜>은 한국에서 1989년 개봉했고, 한국 관객들은 비로소 쿠르드족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러고도 30년. 쿠르드족의 처지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이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서 이들을 용병처럼 이용해 먹고 버리자, 기다렸다는 듯 터키가 시리아 북동부의 쿠르드족에 대한 군사공격을 개시했다. 쿠르드족 인구는 3천만명이 넘는다. 국가를 갖지 못한 민족 가운데 세계 최대다. 터키와 이란, 이라크, 시리아 접경지인 쿠르디스탄에서 주로 산다.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제국이 패한 뒤 서방이 멋대로 국경선을 만들면서 시작된 비극이 10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산물인 우리 민족의 분단 비극보다 30년 가까이 길다.

※ <한겨레> ‘유레카’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129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