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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살찐 고양이는 나누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살찐 고양이 법’은 고양이와 무관하다. 애묘인도 이해관계자가 아니다. 2016년 6월 심상정 의원(당시 정의당 상임대표)이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의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각각 30배와 10배로 제한하는 내용의 살찐 고양이 법(정식 명칭은 최고임금법)을 발의했다. 살찐 고양이는 서구 풍자만화에서 탐욕스러운 자본가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심 의원의 법안은 사실 벤치마킹이다. 2013년 스위스에서는 기업 내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12배로 제한하는 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결과는 부결. 하지만 경영진이 퇴직 때 거액의 보너스를 받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함께 발의돼 가결됐다. 2015년 유럽연합은 은행 임원의 보너스가 급여의 2배를 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앞서 2012년 프랑스는 공기업 최고임금이 최저임금의 20배를 넘을 수 없도록 법으로 못박았다.

 

이런 움직임은 근래 경영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소득 양극화가 그만큼 심각해졌음을 방증한다. 그러나 비슷한 시도는 100년도 더 전부터 있었다. 다른 나라도 아닌 ‘자본의 천국’ 미국에서다. 첫 제안자는 철학자 펠릭스 애들러였다. 일정 수준 이상 소득에 최고 100%까지 세금을 물리자는 글을 1880년 2월9일치 <뉴욕 타임스>에 실어 큰 호응을 얻었다.

 

1차대전 중에는 미국전비위원회가 연간 10만달러가 넘는 소득에 100% 과세를 제안하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5년 500만달러 이상의 연소득에 79%를 과세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2차대전 중이던 1942년엔 “전쟁 기간 연소득을 2만5천달러 이하로 제한”하는 안을 내놓기도 했다. 결국 미국 상원은 1944년 20만달러 이상 소득에 대한 과세율을 94%까지 끌어올렸다.

 

신자유주의 지배 체제를 거친 지금 보면 전설 같은 얘기다. 하지만 살찐 고양이 법은 개념적으로 진일보했다. 얼마 전 알바노조 등 젊은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최고임금의 10분의 1로 맞추는 ‘1 대 10 운동’을 제안했다.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가 한배를 타게 하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소득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두번째로 크다. 살찐 고양이 법은 20대 국회에 아직 계류 중이다.

 

※ <한겨레> 2019년 3월18일치 ‘유레카’에 실린 글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6232.html

 

[유레카] 살찐 고양이 법/ 안영춘

‘살찐 고양이 법’은 고양이와 무관하다. 애묘인도 이해관계자가 아니다. 2016년 6월 심상정 의원(당시 정의당 상임대표)이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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