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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풍자냐 자살이냐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대통령 선거에서 1인칭이 구호로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발표 직후부터 본질과 상관없는 저작권 시비에 휩싸인 것이야말로 이 구호가 경쟁자들을 얼마나 긴장시키는지를 시사한다. 몇몇 정치인들의 저작권 시비에 비해 트위터 타임라인에 등장한 풍자는 쓰든 달든 쾌미를 주지만, 그렇다고 파괴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풍자는 상대에 대한 힘의 열위(劣位)를 드러내야 하는 표현 양식이다. 그 약자가 자신을 꼿꼿하면서도 허허롭게 타자화할 때 풍자는 일어서지만, 힘에 있어서 상대를 압도할 수는 없는 것이 또한 풍자의 숙명이기도 하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구호와 이에 대한 풍자는 보통의 그것들보다 훨씬 복잡한 관계를 구성한다. 문제의 구호는 유권자를 ‘국민’ 따위의 타자로 호명하지 않는다. 풍자하는 이가 자신을 타자화할 수 있는 입각점을 제거해버리는 형식이다. 이를테면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나 ‘국민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고 했으면 자신을 타자화(“난 국민이 아니다”)할 수 있지만,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비틀 수 있는 방법은 형식상 자기부정(“나는 내가 아니다”) 말고는 없다. 그러다보니 ‘박근혜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로 갈 수밖에 없고, 그것은 어쨌든 박근혜를 호명하는 일이다. 최소한 노이즈 마케팅이다.

그래서 문제의 구호에 대한 풍자는 박근혜 의원을 두남두는 축들에게 결코 위험하지 않다. 저작권 시비와 트위터 상의 풍자까지도, 그녀를 미래권력으로 점지한 주류 언론들에 의해 활발하게 인용되고 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오히려, 박 의원에 대한 풍자를 인용하는 것은 정치적 노림수뿐 아니라 상업적 노림수까지 채워주고 있다. 덜 영민한 일부 매체들은 1인칭(내 꿈)을 3인칭(국민의 꿈)으로 분칠해 보도했지만, 그네들의 충성심은 언제나 그렇게 뒷북이다. 그들 못지않게 박 의원의 여·야 경쟁자들은 자신의 저작권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항전하고, 자칭 타칭 진보 언론들도 구조적으로 취약한 풍자에만 매달리고 있다.

문제는 정치 마케팅 기술이 아니다. 유권자들을 향해 ‘나’를 호명할 수 없는 한계가 문제다. 상상력의 한계일 뿐 아니라, 유권자를 대하는 태도의 한계이기도 하다. 유권자를 계몽의 대상으로만 바라봐서는 유권자를 ‘나’로 호명할 수 없다. 그 한계가 단지 구호의 단계에만 그칠지, 아니면 구체적인 공약에까지 영향을 미칠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유권자들을 멍청한 수동자로만 바라보는 태도야말로 가장 낙후한 정치적 태도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풍자가 아니라 대안이 절실한 시기다.

※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