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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안보 상업주의의 음란함

막 개원한 19대 국회의 주인공은 단연 초선 비례대표 여성 의원 두 사람이다. 대통령 선거가 반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들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내로라하는 대권 주자들을 능히 압도한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마치 인기 연예인의 그것처럼 생중계된다. 연예인 보도와의 차이라면 당사자들이 철저히 악인으로 재현되고, 문제의 발단이 당내 비례대표 경선 부정이었든 취중 막말이었든 가리지 않고 오로지 색깔론으로 수렴된다는 점이다. 새 국회는 당분간 이들과 이들이 속한 두 야당의 색깔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이다. 벌써부터 일부 호사가들은 ‘북풍’이 12월 대선의 최대변수로 떠올랐다고 호들갑이다.

그러나 지금 색깔론에 열을 올리는 여당과 일부 언론들은 정작 딴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색깔론은 기선을 잡기 위한 잽일 뿐, 북풍으로 결정타를 날리려다 역풍을 맞은 지난 몇 차례의 경험을 그들은 잊지 않고 있다. 결정적 국면에서 북풍이 무기력한 이유는 유권자들이 한꺼번에 평화주의자로 변모해서가 아니다. 온갖 비리 의혹으로 얼룩진 기업 최고경영자 출신 후보를 압도적으로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에 주가 그래프부터 들여다본 이들이야말로 지금 한국 유권자들의 주류적 욕망을 대변한다. 그 욕망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바로 그 여당과 일부 언론이다.

술자리 말다툼 끝에 면전에서 모욕을 당한 탈북자의 인권을 아무리 강조한다 한들, 이들에게 탈북자는 이 사회의 정상성에서 배제된 수많은 호모 사케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 점에서 임수경 의원과 이들의 태도에는 큰 차이가 없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호명돼 세상에 전시되고는 곧바로 사회 밖으로 수거될 것이다. 이들의 특별한 목적은 매카시즘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이 보기에도 색깔론은 더는 위기론의 일종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노이즈 마케팅을 할 수 있는 민감한 상업적 성감대이다. 내성이 깊어진 사회의 세속적 욕망 앞에서 효과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 한계이지만.

그러다보니 이들의 색깔론은 변종으로 교묘히 진화하며 생명을 연장한다. 이를테면 김재연 의원의 옷차림을 두고 ‘김재연, 보라색 미니스커트 입은 까닭은’ 따위의 제목을 달아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유통시킨다. 이 경우 김 의원은 국회의원도 종북주의자도 아닌, 젊은 여성으로 ‘소비’된다. 반면 언론에 나오는 임수경 의원의 얼굴 사진은 더러 괴이한 표정을 짓고 있기까지 하다. 두 여성 의원 모두 이들에게 성적 타자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40대 중반인 임 의원은 규범적 여성의 범주에서마저 배제돼 ‘늙은 마녀’로 처형된다. 이처럼 안보 상업주의 저널리즘의 민낯은 무섭다기보다는 차라리 음란하다.

※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