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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당권파를 재현하는 진보언론의 풍경

언론은 프리즘이다. 사회 현상은 언론을 투과하면서 분광해 지면이나 화면에서 다시 재현된다. 굴절각은 매체마다 편차가 있다. 하지만 각도가 비슷한 매체끼리는 서로 스크럼을 짜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그 결합도가 개별 매체 간 편차보다 훨씬 크다 보니 ‘조·중·동’과 ‘한·경’이라는 제3의 제호를 낳았다. ‘조·중·동’과 ‘한·경’의 대립적인 편차는 역으로 이들의 보도 행태 자체가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읽히도록 한다. 언론이 재현의 ‘주체’가 아니라 프리즘을 투과해 재현되는 ‘대상’이 되는 셈이다.

통합진보당 경선부정 사태는 언론이 재현의 대상이 되는 극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낯설다. 이번 사태의 보도 행태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단연 ‘크기’다. 어림짐작컨대, 진보 정당 운동 20년 역사 전체를 통틀어 보도된 양보다 경선부정 논란이 제기된 이후 보도된 양이 더 많을 것이다. 이는 조·중·동은 물론 한·경까지도 진보정당을 한국 제도정치의 정상적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진보 정당은 다만 사건·사고의 주어로 불현듯 출현했을 뿐, 두 매체 진영의 차이는 서얼에게 호부호형을 허했느냐 여부에 불과하다.

경선부정 사태 이후 양쪽의 보도는 한동안 서로 수렴되는 현상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 또한 특이한 양태이지만, 따지고 보면 매우 순리적이다. 대부분의 사안에서 뚜렷한 대립각을 세웠던 양쪽이 싱크로나이즈를 펼친 것은 이번 사태가 이들에게 전형적인 사건·사고였다는 얘기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중립적일 수 있는 보도 대상이 바로 단순 사건·사고이다. 도대체 경선부정을 저지른 정황 증거가 이토록 뚜렷한데도 온갖 궤변으로 뻗대기하는 당권파의 패악질에 단죄를 하는 것 말고 어떤 주석이 더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이가 커져가는 양쪽의 보도 행태는 이 사태의 기원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다시금 지시한다. 조·중·동은 특정 정파의 경선부정을 빌미로, 파편적 사실들을 편집해 진보 진영 전체에 색깔을 들씌우는 몽타주 기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진부한 연출에 갈수록 어정쩡해지는 것은 한·경이다. 조·중·동의 색깔론도 방어해야 하고, 당권파의 패악질도 단죄해야 하는 이중부담 탓도 있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한·경의 업보에 있다. 무지의 업보가 아니라 방조의 업보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당권파의 행태는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를 불러올 만큼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데도 이들 신문은 이 문제를 제대로 공론의 장으로 불러낸 적이 없었다. 그들을 감싸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애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포함한 진보 정당을 제도정치의 일원으로 온전히 인정하지 않은 채 그저 반(反) 여당의 이중대로 도구화함으로써 지독한 음지 식물을 배양한 셈이다. 기이한 풍경화이다.

 

※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