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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그들은 왜 검증에 나섰을까

낯선 선거였다. 이 글이 쓰인 시점과 발표되는 시점 사이에 서울시장 선거일이 끼어 있었지만,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왔든 선거 과정의 낯섦을 상쇄하지는 못한다. 야권 단일후보가 정당이 없는 무소속이었다는 사실부터가 이 낯선 선거의 서막이었는지 모르겠다. 정책 선거의 실종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저명한 시민운동가가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한 선거에서 어느 때보다 비방전이 난무한 것은 확실히 뜻밖이었다. 더욱이 그 비방전에서 여야의 ‘전통적’ 공수 역할이 뒤바뀜으로써, 이번 선거가 한국 선거사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짐작까지 하게 된다.

여권은 작심한 듯 초장부터 ‘검증’의 총공세를 펼쳤다. 학력, 병역, 재산 등 하나하나가 과거 야권의 단골 레퍼토리들이었다. 여권은 기성 정치세력도 아닌 시민 후보에게 그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가혹하게. 정책 선거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한 선제적인 네거티브 프레임 짜기였든, 시민 후보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청렴성의 이미지에 타격을 가하려는 의도였든, 짐작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부메랑이 될 줄 몰랐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타자와 견줘 인지하지 못한 채 상상계의 거울 속에 머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인지 지체는 외부 조건의 변화와 밀접하게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학자들이 ‘위기의 정당 정치’라고 부르는 그것은, 정확하게 표현하면 기성 정당들의 대의성의 위기가 전면화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여권은 그동안 정당을 통해 대표되지 못했던 이른바 시민세력과 정면으로 맞붙어 선거를 치러야 했다. 자유주의를 대변하는 시민세력의 가장 중요한 도덕률은 ‘투명성’이다. 투명성은, 여권이 알았든 몰랐든, 이번 선거에서의 기본조건이었고, 여권도 그곳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다음은 기획되지도 않았고, 종합할 수도 없는 외설적 상황의 잇단 출현이었다.

주류 언론의 보도도 같은 궤적을 그었다. 선거 운동 초기 ‘도덕성 검증’이라며 여권의 주장을 대서특필하던 그들은 야권 단일후보 쪽의 역검증 공세가 시작되자 멈칫하더니 어정쩡하게 ‘네거티브 공방’이라는 표현으로 선회하며 양쪽 주장을 중계했다. 심지어 나경원 후보가 부친의 학교법인 이사라는 사실이 폭로되었는데도, <KBS>는 나 후보 쪽의 해명이 없다는 이유로 아예 보도를 하지 않았다. 기획되지도 않았고, 종합할 수도 없는 사태 전개 앞에서 대한민국 영향력 1위 매체는 그렇게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나꼼수>라는 팟캐스트 방송이 선거를 주도했다. 어쨌든, 지금 여기가 우리 모두의 로두스이다.

※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