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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어느날 태성 골뱅이를 들어서며


9월30일 언론연대 후원의 밤에서 축시를 낭송했다.
축시는 다시 하지 않겠다던 지난해 2월 형진과 완이의 결혼식에서의 다짐은 무너졌다.
기분 좋은 자기배반이다.
너무 바빠 시상도 떠올리지 못하다가, 급한 김에 김수영 시인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오마주했다.


어느날 태성 골뱅이를 들어서며
- 시인 김수영의 작풍으로

안영춘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마천루에서 찍어대는 찌라시 대신에 찌라시의 요설 대신에
600원짜리 한겨레가 전단지 하나 없이 문앞에 널브러져 있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한겨레 능곡지국 나무늘보 같은 지국장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죽임 당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이명박 물러가라고 관제언론 처단하라고
서울광장에서 배내밀어 외치지 못하고
만오천원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전화하는 경향 지국장만 얼음처럼 대하고 있는가

옹종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힘깨나 쓴다는 기관의 기자실에 있을 때
그 힘깨나 쓴다는 기관놈들과 기자놈들이 뒤엉켜 룸살롱에 가는 걸
속이 안좋아 난 못가겠다고 둘러대고
야, 개자식들아! 그러고도 기자냐고 속으로만 삼키고
늦게 도착한 시내버스 기사에게
이러고도 시민의 발이냐고 따진 일이 있었다
과로에 지쳐 등이 구부정한 버스 기사에게

지금도 내가 신문밥을 먹는 것은
기자놈들에게 대걸이 못하고
버스 기사에게 시비 거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마트 배추값 보며 비명에 지고
이러시면 아이 대학 못간다는 학원 원장 협박에 진다
거리에 구르는 찌라시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길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지켜야 할 안락과 안위가 있다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막히는 길로만 돌아온 택시 기사에게
골뱅이가 듬성듬성한 안주접시를 들고 온 종업원에게
승냥이 같은 KBS MBC 사장놈에게는 못하고
백년 묵은 여우 같은 광고주놈에게는 못하고
우습지 않으냐 택시요금 오백원 때문에
골뱅이 몇 조각 때문에

언론연대여 나는 얼마큼 적으냐
준상아 영주야 영선아 혜선아 동찬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