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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경향 칼럼 사태로 본 언론자유의 변증법

“과거 언론 자유를 위협한 세력은 정치권력이었지만, 이제는 그보다 원천적이며 영구적 권력인 자본이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최대 세력으로 등장했다.”

언론인 김중배가 1991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그만두며 내뱉었던 일성이다. 언론의 자유를 언제든 경제적 이익과 엿 바꿔 먹을 수 있는 화폐쯤으로 여겨온 기회주의 언론들의 거대 자본에 대한 부역의 역사는 그렇게 20년이 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김중배의 경계(警戒)는 탄식으로 바뀌었다. <경향신문>이 김용철 변호사의 신간 <삼성을 생각한다>와 관련한 외부 필자 칼럼을 통째로 드러낸 사건은 이른바 진보언론을 자처하는 신문들까지 자본의 손아귀에 멱살 잡힌 현실을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게 한다.

부자 언론은 언론의 자유 따위엔 관심이 없고 가난한 언론은 자유가 거추장스러울 만큼 생존의 벼랑 끝에 몰려 있다. 한국만의 사정이 아니다. 진보적인 언론일수록 경영난이 심각한 것은 세계적 추세다. 프랑스 68혁명의 상징이자 사원 공동경영으로 유명했던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2007년 초 로스차일드은행이라는 금융 자본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그러나 <한겨레>나 <경향신문>의 소유권이 아직 자본에게 넘어가지 않은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과거 한국의 자본들이 신문을 소유하려고 했던 것은 비정상적인 기업 경영의 방패막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신문들은 자본들의 그런 욕망조차 자극하지 못할 만큼 위상이 피폐해 있다. 그리고 어떤 신문인들은 그런 현실에 더 낙담하지 않을까. 행여 삼성이 다시 광고를 줄지 모른다고 기대하며 신문 칼럼을 통째로 들어내는 것과 삼성에서 월급을 받으며 삼성의 나팔수가 되는 것 사이에서 언론 자유의 우위를 재는 건 무참하다. 한국 진보신문의 남루한 현주소를 의지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비관적으로 직시하는 것, 희망이 있다면 비로소 그 위에 있을 것이다.

언론인 홍세화에 따르면, 희망의 근거는 긴장(緊張) 위에 있다. 원칙을 지키되(緊), 도그마에 빠지거나 부러지지 않는 현실인식(張). ‘긴장’은 변증법의 언어다. 일회적인 언론의 자유를 행사하고 장렬하게 죽을 자유는 한국의 남루한 언론 지형에선 그나마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사치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한국의 진보신문은 자신의 긴장을 실천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를 연장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삼성 비판 칼럼은 잠시 유예되었을 뿐 삭제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유예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독자들이 움직여야 할 때다. 한국 진보신문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기적이 아니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에 필요한 더 많은 유료독자다.

※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