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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나로호 발사를 본다면

[안영춘/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 

 
아인슈타인은 평화주의자였다. 국제평화를 이루기 위해 각 국가들로부터 주권 일부를 양도받은 강력한 국제기구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러나 이 평화주의자의 물리학 방정식은 핵폭탄의 이론적 원리가 됐다. 그 스스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핵폭탄의 원리를 설명하며 개발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6년 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으로 20여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의 삶은 과학(자)의 야누스적 숙명을 보여준다.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만, 인간은 과학기술로 선/악의 가치를 구현한다.

     

▲ 25일 오후 5시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나로호가 화염을 내뿜으며 날아오르고 있다.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나로호 발사가 사실상 실패했다. 한국 언론들은 일제히 우주과학기술 강국의 꿈이 유예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다시금 ‘전의’를 불태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로호는 과학기술위성을 우주로 실어 나르는 발사체다. 과학의 얼굴을 띠고 있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발사 순간 “대한민국 만세”의 환호와 뒤이은 실망의 침묵은 나로호가 발사체의 붉은 불꽃만큼이나 강한 애국심을 탑재하고 있었음을 내비친다. 황우석 사태에서 보듯, 한국 언론의 과학기술 보도에는 국민을 호명해 국가주의를 환기시키는 뚜렷한 경향성이 있다.

순수과학과 무기기술의 경계는 흐릿하다. 발사체에 과학기술위성을 실으면 과학 발사체지만, 핵탄두를 장착하면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된다. 우문 같지만, 첩보 위성을 실은 발사체의 성격은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지난 4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을 때 세계 각국은 이 로켓을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규정했다. 당사자인 북한은 인공위성을 탑재한 우주발사체로 주장했지만, 국제사회는 북한의 로켓 발사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해 제재를 가했다. 양쪽의 차이는 ‘사실’의 차이일까 ‘관점’의 차이일까?

<워싱턴포스트>는 나로호 1차 발사를 앞둔 지난 18일(현지 시각) 전문가 등의 인터뷰를 인용해 “나로호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나를 수 있는 로켓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북한 외무성도 “6자 회담 참가국들이 남조선의 위성 발사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하는지 주시해볼 것”이라고 말했다(<프레시안>, ‘나로호 발사, 7분56초 전 전격 중단’ 강양구, 2009년 8월19일자 인용).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도 다른 나라들에 핵 비확산을 강압하는 미국과 핵무기를 체제 수호의 열쇠로 붙들고 있는 북한의 시각은 우리에게 복잡한 해석의 뒷맛을 남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 언론이 나로호의 이런 측면에는 침묵하거나 아예 무관심하다는 사실이다. 아인슈타인은 훗날 핵무기 개발 권고를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가 저지른 실수의 출발점은 나치 독일을 압도하려는 욕망, 그리고 과학기술 뒤에 숨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무지였다. 하물며, 20세기 과학천재가 그랬을진대….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1553호(2009-08-31)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