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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발표글

개혁물신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상상

-5·31 지방선거를 보고
 

  열린우리당의 5·31 지방선거 참패에 언론들이 내놓은 정치공학적인 설명은 대략 이렇다. 뿌리 깊은 지역주의 앞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지지 기반, 이를 만회하기 위한 보수적 정책 노선이 불러온 지지층의 이탈, 오만한 태도와 편가르기식 개혁에 대한 유권자들의 정서적 반감, 형편없는 경제지표…. 말하자면, 열린우리당의 참패는 ‘예정된 결과’였던 셈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모든 정치공학적 해석이 ‘그럴 줄 알았다’ 식인 게 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언론들은 이런 예정된 결과를 주권자인 국민이 열린우리당을 ‘심판’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럴듯한 얘기다. 선거 결과에는 분명 민심이 담긴다. 그렇더라도 ‘선거 결과는 민심의 반영’이라는 명제가 반드시 성립하는 건 아니다. 민심은 복잡한 ‘화학변화’를 거친 뒤라야 비로소 선거 결과로 나타난다. 그 과정이 단순할수록, 또 선택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일수록 민심이 반영된 ‘심판’에 가까울 것이다. 선거 결과의 ‘해석’에 이론이 없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신문들은 선거가 끝나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을 일제히 ‘여당 참패’로 달았다. ‘열린우리당 참패’와 ‘한나라당 싹쓸이’ 가운데 전자를 더 본질적인 것으로 해석한 셈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싹쓸이’가 본질에 더 가까운 것 아닐까? 무엇보다 특정 정당의 이런 싹쓸이 전례가 없는 데다, 그 결과가 암시하는 징후 또한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여기자 성추행, 공천 장사 같은 선거 악재가 모두 한나라당에서 불거져 나온 사실을 상기하면, 민심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열린우리당 참패=한나라당 압승’이라는 단순한 등식은 적어도 형식논리상 성립하지 않는다. 이들 두 당 말고, 이 나라에는 민주노동당이 있고 민주당, 국민중심당도 있다. 그런데도 이들 당은 본전치기 장사조차 못했다. 열린우리당의 원심력보다 한나라당의 구심력이 선거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왜 한나라당만 전대미문의 압승을 했는가? 열린우리당의 참패와 한나라당의 압승에는 단순한 등식 관계가 아닌, 매우 복잡한 고차방정식의 함수 관계가 숨어 있다.

  실마리는,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보수화 경향을 보여준 일관된 조사 결과들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 이는 열린우리당 이탈표가 민주노동당으로는 가지 않고 한나라당으로 거의 다 몰려간 사실을 설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통계적 단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왜 보수화되었을까? 그것도 보수정당에 사상 초유의 싹쓸이를 선물할 만큼. 그리고, 그 보수화의 실체는 무엇이며,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경제가 어려우면 유권자 의식이 보수화된다는 정치공학적 가설은 온전한 설명을 하기에 역부족으로 보인다. 반대의 사례가 드물지 않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과거 경제가 어려웠을 때에도 이런 싹쓸이 선거 결과가 나온 적은 없었다. 지난 대선과 총선도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치러졌지만, 젊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낭만적인 자유주의와 평등주의 정서가 열정적으로 퍼져 있었던 것만 봐도 그렇다.

  당시 분위기를 불과 2년 사이에 아득한 기억 너머로 증발시켜버린 강력한 힘은 무엇일까? 열린우리당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원심력이 보수화로 이어지고, 그리하여 마침내 한나라당에 초유의 압승을 거둘 수 있게 구심력으로 작용한 그것은 무엇일까? 진보든 보수든, 열린우리당에 대한 비판의 출발점이 모두 ‘개혁’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한쪽에서는 열린우리당의 개혁이 미온적이라고 비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개혁 타령에 나라가 거덜났다고 비난한다.

  열린우리당의 개혁에 대한 이런 상반된 주장 가운데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은 건 후자처럼 보인다. 열린우리당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과정에서 그들이 개혁 대안세력 대신 반개혁세력을 찾은 것은 개혁 자체에 환멸을 느껴서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열린우리당의 개혁 실패는 상당 부분 한나라당의 극단적인 저항 탓이다.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열린우리당도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그 책임이 온전히 열린우리당에 전가된 것은 ‘반개혁’보다 ‘무능’을 더 용서하지 못할 만큼 한국사회에 능력 지상의 신자유주의가 만연했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하지만 2년 사이에 반개혁과 무능의 가치가 전도될 정도로 한국사회의 가치관이 급변한 걸까? 그렇지 않다. 문제의 본질은 열린우리당이 개혁을 추진했다기 보다는 ‘개혁 물신화’의 무지에 빠져 있었던 데 있다. 개혁의 물신화란 무엇인가. 자신들의 행위를 모두 ‘개혁’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지난 2년을 되돌아보면 사례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키는 신자유주의적 개혁도, 개혁의 물신화에 빠진 자들의 눈에는 하나 같이 구국적 개혁으로만 보인다. 정치개혁 한다면서 색깔이 전혀 다른 한나라당과 연정을 시도하고, 정부투자기관을 개혁한다며 자기 사람 심는 반개혁마저 개혁의 연장선으로 보거나 개혁의 당위로 덮을 수 있는 작은 흠결로 치부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개혁의 전도사임을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는다.

  낭만적인 열정을 품고 있던 유권자들이 이런 행태를 지켜보면서 그 열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를 기대하는 건 도둑놈 심보다. 열정은 증발해버리고, 쓰고 짠 환멸의 소금가루만 남는다. 열린우리당은 유권자들의 지지만 잃은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음 속에 개혁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결과는 유권자의 보수화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실망과 개혁(물신주의)에 대한 혐오를 한나라당은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이것도 심판이라면 심판이다. 그것도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통해 이뤄졌으니, 승자는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고 하고, 패자는 “(안타깝지만)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누가 대권 후보의 입지를 강화하고 누가 정계진출을 노린다는 정도의 정치권 문제가 아니다. 보수 정당의 사상 초유의 판쓸이는 파시즘의 이끼가 자랄 수 있는 어둡고 습기찬 동굴을 연상시킨다.

  민주적 절차를 거친 선거 결과를 두고 파시즘을 떠올리는 것은 과대망상일까?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히틀러는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총칼로 집권한 게 아니다. 민주적인 선거를 거쳐 당당히 나치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그것도 독일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 파시즘의 이념과 행태는 반민주적이지만, 파시즘의 등장 과정은 너무도 민주적이다.

  근대 독일에 제도적으로 부르주와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국가경영능력이 취약했고,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시도하다 좌절하기도 했다. 외세에 줏대없이 시달렸고, 대공황의 충격으로 경제난도 심각했다. 박애 정신이 약화하고 약자에 대해 인색하거나 가해적인 사회 분위기가 높아갈 즈음, 바이마르 공화국은 몰락하고 나치가 집권했다.

  한국사회는 지금 어떤가. 우리는 파시즘에 너무 무지하고 무관심한 게 아닐까.

                                                                                                           (2006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