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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냐 자살이냐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대통령 선거에서 1인칭이 구호로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발표 직후부터 본질과 상관없는 저작권 시비에 휩싸인 것이야말로 이 구호가 경쟁자들을 얼마나 긴장시키는지를 시사한다. 몇몇 정치인들의 저작권 시비에 비해 트위터 타임라인에 등장한 풍자는 쓰든 달든 쾌미를 주지만, 그렇다고 파괴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풍자는 상대에 대한 힘의 열위(劣位)를 드러내야 하는 표현 양식이다. 그 약자가 자신을 꼿꼿하면서도 허허롭게 타자화할 때 풍자는 일어서지만, 힘에 있어서 상대를 압도할 수는 없는 것이 또한 풍자의 숙명이기도 하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구호와 이에 대한 풍자는 보통의 그것들보다 훨씬 복잡한 관계를 구성한다. 문제의 구호는..
오빠와 감독님 우리말 가운데 쓰임새가 가장 넓고 다양한 건 ‘거시기’일 것이다. 전라도 분인 내 아버지는 1분간 전화 통화를 할 때 평균 6차례 “거시기”를 구사하는데, 곁에서 듣고 있노라면 도대체 어떻게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싶을 지경이다. 기호는 맥락 위에서 상호 교집합이 형성될 때 비로소 기능한다. 교집합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기호는 은어의 성격을 띠게 된다. 백제군이 구사하는 ‘거시기’는 신라군에겐 요령부득이다(영화 ). ‘거시기’ 다음은 ‘빨갱이’이지 싶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어르신들이 얼마 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집회를 했는데, 박근혜 의원에게 완전국민경선을 요구하는 이재오, 김문수, 정몽준 의원을 “빨갱이”라고 비난했다. 전향 우파인 이재오, 김문수 의원이야 과거를..
안보 상업주의의 음란함 막 개원한 19대 국회의 주인공은 단연 초선 비례대표 여성 의원 두 사람이다. 대통령 선거가 반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들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내로라하는 대권 주자들을 능히 압도한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마치 인기 연예인의 그것처럼 생중계된다. 연예인 보도와의 차이라면 당사자들이 철저히 악인으로 재현되고, 문제의 발단이 당내 비례대표 경선 부정이었든 취중 막말이었든 가리지 않고 오로지 색깔론으로 수렴된다는 점이다. 새 국회는 당분간 이들과 이들이 속한 두 야당의 색깔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이다. 벌써부터 일부 호사가들은 ‘북풍’이 12월 대선의 최대변수로 떠올랐다고 호들갑이다. 그러나 지금 색깔론에 열을 올리는 여당과 일부 언론들은 정작 딴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색깔론은 기선을 잡..
당권파를 재현하는 진보언론의 풍경 언론은 프리즘이다. 사회 현상은 언론을 투과하면서 분광해 지면이나 화면에서 다시 재현된다. 굴절각은 매체마다 편차가 있다. 하지만 각도가 비슷한 매체끼리는 서로 스크럼을 짜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그 결합도가 개별 매체 간 편차보다 훨씬 크다 보니 ‘조·중·동’과 ‘한·경’이라는 제3의 제호를 낳았다. ‘조·중·동’과 ‘한·경’의 대립적인 편차는 역으로 이들의 보도 행태 자체가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읽히도록 한다. 언론이 재현의 ‘주체’가 아니라 프리즘을 투과해 재현되는 ‘대상’이 되는 셈이다. 통합진보당 경선부정 사태는 언론이 재현의 대상이 되는 극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낯설다. 이번 사태의 보도 행태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단연 ‘크기’다. 어림짐작컨대, 진보 정당 운동 20년 역사 전체를 통틀어 보..
엽기적 개인은 왜 ‘탄생’하나 3차 저축은행 퇴출 사태는 지금 몇 문장짜리 가십 기사로 재현되고 있다. 저축은행 회장이라는 자가 고객 돈을 빼돌려 야밤에 밀항을 하려다 붙잡혔는데, 알고 보니 중졸 학력인 그는 젊어서 서울대 법대 출신 행세를 하며 가짜 졸업장으로 대기업에 입사를 했는가 하면, 나이 들어서는 신용불량자이면서도 저축은행 대주주 노릇까지 했다는 것이다. 신문과 방송들은 이 기인의 엽기적 일대기를 알리는 데만 몰입하고 있다. 비슷한 예는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08년 12월, 서브프라임 사태를 겪던 미국에서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 출신인 버나드 메이도프의 다단계 금융(폰지) 사기 사건이 터졌다. 피해액만 무려 650억 달러였다. 미국 언론들은 이 번듯해 보이는 금융가의 엽기적 사기 행각을 보도하기에 바빴다. 메이도프의..
프랑스 대선을 보는 정신승리법 ‘올해는 선거의 해’라는 말은 한국 언론에게는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한 해에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지는 것도 20년만의 일이니 지나친 호들갑이라고만은 할 수 없으나, 한국 언론은 딱 거기까지다. 올 한 해 국제 정세의 향방을 가를 외국의 굵직한 정치 이벤트가 한둘이 아니다. 최근만 해도 중국의 차기 권력이 시진핑으로 정해졌고, 러시아에서는 푸틴이 한 박자 쉬고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 사건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문·방송을 통해 알기는 쉽지 않다. 미국 대선 공화당 예비선거에는 오히려 과한 관심을 보이지만, 결코 경마중계식 보도를 넘어서는 법이 없다. 지난 22일, 프랑스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5월 6일 결선 투표가 치러진..
트위터, 그게 뭔교? 수도권 하위문화적 특성, 지방의 사회문화적 장벽 드러낸 트위터 “내 타임라인만 보면 제1당은 진보신당이다.” 고백하건대, 총선 전날 한 트친이 올린 이 판타스틱한 멘션을 보며, 나도 찰나 설렜더랬다. 그러나 곧바로 현실감이 역습해왔다. 실현 가능성이 ‘0’으로 무한 수렴된다는 점에서, 이 멘션이야말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관한 얼마나 역설적인 고백인가. 진보신당은 1.13%의 득표율로 정당 해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SNS가 정치적 취향이 같은 동호인들의 자족적인 놀이터에 머물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SNS는 무엇보다 강한 행동을 추동한다. SNS 선거운동 합법화 당시, 선거운동의 혁명을 내다보는 언설이 무성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SNS에서 ‘입진보’가 욕설로 통용된다는 사실도 이 수다..
내 친구의 사찰 피해를 바라보며 박용현은 내가 일하는 신문사의 동기이자 벗이다. 그는 얼마 전 폭로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불법 사찰 자료에 ‘ 편집장’이라는 직함과 함께 실명이 특정돼 등장했다. 보도가 나온 날 아침, 흡연 공간에서 그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그래, 사생활은 깨끗하냐?” 함께 웃긴 했지만, 뒤통수가 서늘해지면서, 어느새 머릿속은 이 정권 들어서 내가 노상방뇨를 몇 번이나 했는지 헤아리고 있었다. 언론들의 반응은 처음엔 뜨뜻미지근하다 이내 후끈해졌다. 특별세무조사를 받을 때(김대중 정권)나 기자실이 통폐합돼 합동 브리핑룸이 설치될 때(노무현 정권) “언론의 자유”를 외치며 조건반사적으로 떨쳐 일어섰던 그들이 이제 언론 자신과 관련한 사안에서도 신중해진 것일까. 지상파 3사와 조·중·동은 하루쯤 간을 보다..